“탈당해라” “탁상공론” 줄줄이 난타
이재명 경기도지사. [뉴스1]
각고의 노력에도 방출 움직임이 본격화하자 이 지사는 2월 12일 페이스북에 “정치라는 일이 보람되고 영광스럽지만 때로 칼날 위를 걸으며 세상에 홀로 된 기분일 때가 많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사흘 전 “민주당은 자랑스러운 당원들의 정당이다. 선거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당이 잘할 때나 못할 때나, 그래도 우리가 지켜야 할 소중한 당이라며 온몸을 던져온 당원들이 있다. 그 눈물겨운 헌신을 배신하는 탈당이란, 저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는 내용의 글을 남기기도 했다. 이렇듯 탈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피력했지만 당원들이 탈당을 원한다면 그로서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일각에서는 당원투표로 이 지사 탈당 여부를 결정하자는 주장도 나온다.
1월 초 민주당 권리당원 게시판에서 진행된 이낙연 대표와 이 지사에 대한 퇴출 투표도 관심을 끈다. 1월 6일 오전 ‘당 대표 퇴진 요구 권리당원 찬반투표’ 글이 먼저 올라왔고, 오후에 ‘이재명 출당을 위한 권리당원 투표’ 글이 게시됐다. 이 지사를 지지하는 세력이 이 대표에 대해 선공을 했고, 이 대표를 지지하는 세력이 역공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결과는 이 지사의 참패다. 투표에 참여한 이들의 95%가 이 지사 탈당에 ‘찬성’했다. 전당원투표가 이뤄지면 이 지사가 불리하다는 것을 보여준 사건이다.
친문계는 지난 대선 때부터 이 지사에 대한 거부감을 쌓아왔다. 문재인 대통령에 감히 맞선 죄다. 차마 이를 전면에 내세울 수는 없어 이 지사 대표 공약 ‘기본소득’을 출당 명분으로 내걸었다. 당론과 일치하지 않는 공약이라는 이유다.
이낙연 대표가 가장 먼저 기본소득에 제동을 걸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재난지원금 지급 초기부터 두 사람은 대립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과 흡사한 전 국민 지급을 원했고 이 대표는 선별 지급을 주장했다. 이 대표는 2월 2일 “알래스카 빼고는 그것(기본소득)을 하는 곳이 없다. 기존 복지제도의 대체재가 될 수는 없다”고 비판했다.
정세균 국무총리도 다툼에 참전했다. 정 총리는 2월 19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금년에 우리가 100조 원의 국채를 발행한다. 지금은 재난지원금을 말할 때지, 기본소득을 이야기할 타이밍이 아니다. 아무리 좋은 것도 때가 맞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근 기본소득에 대한 공격에 가장 열심인 인물은 단연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다. 눈에 띄게 정치적 발언 횟수가 늘어난 임 전 실장은 2월 14일 페이스북에 “기초연금이나 기초생활수급제도, 실업수당과 아동수당 등을 유지하면서도 기본소득제도를 하자는 거라면 그건 ‘기본’없는 기본소득이거나 재원 대책이 없는 탁상공론으로 흐르게 될 것”이라며 “자산이나 소득에 상관없이 모두에게 균등하게 지급하자는 것은 정의롭지도 현실적이지도 않다”고 지적했다.
핵심 친문계로 꼽히는 김경수 경남도지사도 가세했다. 김 지사는 1차 재난지원금 지급 당시 이 지사와 같은 노선을 걸었다. ‘재난기본소득’을 ‘전국민’에게 지급하자고 주장한 것이다. 김 지사는 2월 18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지금 대한민국이 받아든 과제가 기본소득은 아니다. 이재명 경기지사가 ‘기승전 기본소득’만 계속 주장하면 정책 논의를 왜곡할 우려가 있다. 그 가능성을 걱정하고 있다”면서 태도를 바꿨다.
범친문계 임종석 전 비서실장과 핵심 친문계 김경수 지사까지 기본소득 비판에 나선 것은 논란이 다른 차원으로 진화함을 의미한다. 기본소득은 정책 이슈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이재명 비토 세력, 특히 친문계를 통합하는 키워드로 작동하는 것이다.
제3후보 육성 위해 ‘시간벌기’ 총력
친문계의 다음 과업은 경선 연기로 보인다. 최근 친문계 의원들 사이에서 경선연기론이 부쩍 힘을 얻어가고 있다. 당헌을 개정해 ‘대선 180일 전’ 후보를 선출하도록 한 규정을 ‘대선 120일 전’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코로나19 상황에 4월 보궐선거와 5월 전당대회까지 겹치면서 차기 대선 준비기간이 사실상 2~3개월 사라진다는 점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야당보다 앞서 후보를 결정하는 것이 전략적으로 불리하다는 주장은 물론 코로나19 집단면역 형성 이전인 여름에 전당대회를 치를 순 없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속내는 따로 있어 보인다. 친문계 제3후보를 키울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 아니냐는 것이다.차기 대선 구도가 이 지사 1강 체제로 재편된 상황이다. 친문계 제3후보가 양강구도를 형성할 정도로 성장하기에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경선 연기론은 지난해 민주당 전당대회 때부터 제기됐다. 전당대회준비위원회가 당헌을 개정해 대통령 후보 선출 시점을 ‘대선 100일 전’으로 바꾸고자 했다. ‘7개월짜리 대표가 될 운명’이었던 이낙연 대표를 의식한 움직임이었다. 다만 이해찬 당시 민주당 대표가 “먼저 대선후보를 확정했을 때 본선에서 승리했다”며 선을 그어 경선 연기는 성사되지 않았다.
최근 양상이 바뀌었다. 제3후보를 키울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친문계가 적극적으로 당헌 개정을 시도하고 있다. 전당원투표를 통한 당헌 개정은 친문계에 매우 익숙하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 후보자 공천 여부도 전당원투표를 통해 속전속결로 처리했다. 당헌 개정 역시 같은 방식으로 처리하면 며칠 내로 가능하다. 이 지사 측에서 “유불리에 따른 판 흔들기”라며 항변 중이지만 별로 소용이 없을 것이다.
친문계의 최종 과업은 누가 뭐래도 제3후보 육성이다. 최근 범친문계 대선주자들의 움직임이 활발하다. 정세균 국무총리,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 김두관 의원에 임종석 전 비서실장까지 뛰어든 형국이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김경수 지사 같은 핵심 친문계 대선주자들의 차기 대선 출마가 어려워졌다는 판단 때문이다. 핵심 친문계가 빠른 속도로 제3후보 만들기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지지율은 또 한순간”
이낙연 당시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후보(오른쪽)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지난해 7월 30일 경기 수원시 경기도청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동아DB]
이재명 죽이기는 결국 친문계 인사를 차기 대통령으로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기초 작업이다. 이 지사 역시 손놓고 있지만은 않을 것이다. 여론 향배도 중요하다. 인위적으로 누군가를 띄우려들수록 역효과가 발생할지 모른다. 윤석열 검찰총장의 경우처럼 오히려 이 지사의 지지율만 올려줄 수 있다. 대선주자 지지율 1위 구도 정도만 깨려고 했는데, 이 지사가 탈당을 결행하면서 야권 주자가 반사적 이익을 볼 가능성도 있다. 탈당한 이 지사 중심으로 급속하게 정계개편이 이뤄지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