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 23일 이명박 대통령이 국민경제자문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이 대통령은 당선자 시절부터 시장 친화적 전략을 실행에 옮겼다. 2007년 12월 말 전국경제인연합회를 방문해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약속했다. ‘대한민국 747’은 이명박 정부의 성장 전략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연 7% 경제성장으로 300만 개의 일자리를 만들고 10년 내 4만 달러 소득을 달성해 10년 내 7대 강국으로 올라선다는 것이다.
과정보다 목표 달성 결과 중시
이 대통령은 또 취임 초 규제 완화에 대한 의지를 강하게 드러냈다. 그 대표적인 게‘대불공단 전봇대’ 발언이다. 이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인 2008년 1월 “전남 대불공단 전봇대를 옮기는 것도 몇 달이 지나도록 안 됐다”고 질책하자 유관기관에선 전봇대를 찾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이 대통령은 2008년 4월 28일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민관합동회의라는 이름으로 대기업 총수들을 청와대로 불러 투자를 촉구하면서 규제 법령을 연말까지 손보겠다고 공언했다. 경제5단체 대표와 정몽구 현대·기아자동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을 비롯한 4대 그룹 대표 등 기업인 28명이 참석했다. 이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솔직히 기업인들이 투자를 많이 하는 게 제일 반갑다”며 “대신 정부는 투자하는 데 불편한 여러 가지를 해소하는 것을 아주 효과적으로 하겠다”고 말했다.
2008년 하반기 터진 글로벌 금융위기는 국제적으로 이 대통령의 리더십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이 대통령이 G20 정상회의를 통해 주장한 ‘스탠드 스틸’(보호무역 조치 동결), 과감한 재정 투입, 선제적 투자 등은 국제사회에 일정 정도 호소력이 있었다. 특히 G20 정상회의의 서울 유치가 한국의 글로벌 리더십을 확보하는 계기가 됐다는 데 대해선 큰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신자유주의 정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일자리 창출, 소득분배 개선, 사회통합 제고 같은 문제점을 해소할 수 없었다. 이는 결국 2010년 6월 지방선거에서 여당이 참패하는 단초를 제공했다는 게 청와대 참모들의 분석이다.
6·2지방선거 패배는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노선 수정을 가져왔다. 성장 위주 정책에서 분배와 복지에도 관심을 돌렸고, 대기업 중심 정책에서 중소기업의 경쟁력 기반 조성에 초점을 맞추는 것으로 무게중심을 옮겼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광복절 경축사에서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한다”며 “이는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라고 규정했다. 이후 공정사회는 현 정부의 국정운영 핵심 기조가 됐다.
대기업-중소기업 상생이란 화두가 나오자 경제부처는 온통 이를 구체화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대기업 조사를 위한 칼을 빼들었고 2개월 뒤엔 동반성장 대책을 내놓았다. 2010년 9월 29일엔 청와대에서 이 대통령 주재로 30대 그룹 최고경영자와 1∼3차 중소협력사 대표 60여 명, 5대 경제단체장, 국무위원 및 대통령 수석비서관급 이상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대·중소기업 동반성장 전략회의’가 열렸다.
이 대통령은 새해 들어서도 대기업 총수들 및 중소기업인들과 잇따라 간담회를 갖고 동반 성장을 강조했다. 집권 4년 차에도 동반 성장은 이명박 정부의 중심 화두가 될 전망이다.
‘CEO형 리더십’은 이 대통령의 ‘트레이드마크’다. 집권 초·중반 일관되게 관통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CEO형 리더십은 목표 달성이란 결과를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 때문에 효율성은 높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결과에 도달하는 과정을 경시한다. 경영학에선 △지시적 △지원적 △참여적 △성취지향적 등으로 리더십 유형을 나누는데, 이 대통령은 지시적, 성취지향적 성향이 두드러진다고 전문가들은 분석한다. 대통령이 직접 정책 아이디어를 내놓고 집행 지시까지 한다는 점에서 그렇다. 취임 초 공직사회의 기강 해이를 질타하며 위기의식을 불어넣은 것은 지시적, 성취지향적 성향의 단적인 예다.
그러다 보니 미시적인 부분까지 시시콜콜 관여해 결국 ‘시어머니형 리더십’이란 달갑지 않은 평가도 얻었다. 현안에 대해 ‘불쑥 한마디’ 식으로 언급해 관료사회와 시장을 발칵 뒤집어놓곤 했다. 관료사회의 무사안일을 깨우쳐준다는 긍정적 평가와 대통령이 시장경제까지 미시적으로 간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교차한다.
경제정책이 충성 경쟁 아닌데…
이 대통령의 호통성 발언으로 공직사회와 민간기업을 바짝 긴장하도록 한 사례는 적지 않다. 새해 들어 “기름값을 보면 주유소 등의 행태가 묘하다. 기름값이 적정 수준인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해 정유사들이 전전긍긍하고 있다. 또 이 대통령이 “(조직개편에 따른 잉여인력을) 태스크포스(TF)로 편법 관리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하자 각 부처는 TF팀을 대거 해체하기도 했다. “농협은 돈을 몇조 원씩 벌어 사고나 치고…”라는 질책은 농협 개혁을 촉발했다. “생활필수품 50개 품목의 물가를 관리하라”는 지시가 있자 과천 관가는 50개가 정확히 무슨 품목을 의미하는지 파악하느라 소동을 벌였다.
지난해 7월 미소금융 서울 강서구지점을 방문했을 때 이 대통령이 “큰 재벌에서 일수 이자 받듯이 하는 것은 사회정의상 안 맞지 않느냐. 대기업이 하는 캐피털이 이렇게 이자를 많이 받으면 나쁘다”고 지적하면서 거센 시장 개입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이 대통령의 이런 ‘즉흥적 화법’에 대해 대통령실 관계자는 “책상머리에만 있지 말고 현장을 잘 살펴 선제적인 대응을 하라고 숱하게 지시했지만 제대로 먹혀들지 않아 답답함을 표출하는 이 대통령 특유의 발언 방식”이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이에 대한 비판이 적지 않다. “강력한 대통령 중심제 국가에서 대통령의 말 한마디는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치는데 정부 부처 직원들이 해야 할 일까지 신경을 쓰는 게 과연 바람직하냐”는 것이다. 시장과 경제주체들에게 혼란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무엇보다 장기적 안목을 갖고 추진해야 할 경제정책이 대통령에게 충성 경쟁하듯 진행되고 있다는 점에서 부작용이 예상된다.
아주대 현진권 교수는 “가격 금리 등 시장에서 결정해야 하는 것까지 대통령이 관여하면 반짝 효과는 있을지 모르지만 가격 왜곡을 비롯한 많은 부작용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숙명여대 신도철 교수도 “대통령은 큰 방향을 제시해야지 시장의 수요·공급에 따라 결정되는 미시적인 가격까지 언급하면 현장 실무자들이 시장 자율과 관치 사이에서 혼선을 겪는다”고 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소장은 “시장 친화적이긴 하지만 시장에 시시콜콜 간섭하는 모순된 모습”이라고 했다. 대기업 총수들을 다섯 번이나 청와대로 불러 투자를 강요하는 것 자체가 ‘신관치’의 전형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 대통령은 물가 불안, 유가 급등, 전세난 등 연초부터 난관에 부닥쳤다. 선거가 없는 올해엔 일만 하겠다고 다짐했지만 어느 하나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다. CEO형, 시어머니형 리더십이 과연 언제까지 통할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