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1월 17일 서울 장충동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참여당 창당대회에서 이재정 대표가 손을 들어 환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4월 8일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서 열린 평화민주당 창당대회에서 대표로 선출된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대표직 수락연설을 하고 있다.
공명에게 번번이 혼쭐난 중달은 수성(守城)만 하다가 공명의 죽음을 알고 공격에 나선다. 그런데 공명이 수레 위에 앉아 학우선(鶴羽扇)을 부치며 군사를 지휘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놀란 중달은 곧바로 퇴각했고, 나중에 진짜 공명이 아니라 ‘목각인형 공명’이었다는 사실을 알고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를 두고 나관중과 후세 사람들은 ‘죽은 공명이 산 중달을 내쫓다(死孔明走生仲達)’며 비웃었다.
6·2지방선거가 다가오면서 정치권에서도 ‘목각인형 공명’을 앞세워 선거전에 뛰어드는 정당이 등장하고 있다. 고인이 된 유명 정치인을 전면에 내세운 신생 정당이 얼굴을 내밀고 있는 것. ‘김대중(DJ),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정신 계승’을 기치로 내건 정당이 등장했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국민대통합 유업을 잇는다’는 기치를 내건, 다소 생소한 의미의 ‘친박(친박정희)연합’도 출현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4월 8일 한화갑 전 민주당 대표가 평화민주당 중앙당 창당대회를 열고 ‘DJ의 정신 계승’을 주창하며 정치 전면에 재등장했다. 김경재, 최재승, 한영애 전 민주당 의원도 최고위원으로 ‘컴백’했다. 평화민주당은 김 전 대통령이 1987년 13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만든 당이 아니던가. 23년 뒤 ‘리틀 DJ’가 재창당한 모양새다.
‘리틀 DJ’ 한화갑 23년 만에 재창당
창당선언문에서 “좌우 극단의 이념정치를 지양하고 대화와 타협에 기초한 국민 통합정치, 민생 중심의 생활정치, 상생과 소통의 정치를 추구한다”고 강조했지만 “DJ 정통세력에게 지방선거의 기회를 줄 것”이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주목적이 ‘지방선거’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1월 17일에는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을 앞세운 국민참여당이 공식 출범했다. ‘참여정부’ 시절 통일부 장관을 지낸 이재정 전 의원이 당 대표를 맡고 유시민, 천호선, 이백만 등 ‘노무현 사단’이 대거 합류했다. 이들은 민주당 등 야당과 시민단체가 선거연합을 위한 ‘5+4 회의’를 통해 야권 단일화를 이루고, 선거 열흘 전이 노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5월 23일)인 만큼 ‘노무현 바람’으로 전국 정당으로 거듭나겠다는 계획이다.
야권 신당이 김, 노 전 대통령을 앞세웠다면, 여권 신당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을 앞세운다. 2008년 18대 총선에서 13%의 정당 지지도에 힘입어 14명(비례대표 8명)의 의원을 당선시킨 돌풍의 주역 ‘친박연대’는 당시 ‘박근혜 타이틀’을 앞세웠다. 특정 정치인을 창당 정신으로 삼은 첫 정당이라는 점에서 보면 ‘목각인형 공명’을 가장 먼저 활용한 선배 격이다. 친박연대는 미래희망연대로 당명을 바꾸고 6·2지방선거에 대비했지만 서청원 전 대표의 ‘옥중 서신’으로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추인했다. 그러나 합당 결정에 반발한 이규택 대표 등 비주류 측이 4월 6일 가칭 ‘미래연합’을 만들어 탈당, 지방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세우기로 결정했다. 친박연대가 그랬듯, 미래연합도 2002년 박 전 대표가 한나라당을 탈당했을 때 만들었던 ‘한국미래연합’을 연상시킨다. 박근혜 향수가 짙게 배어 있다.
(왼쪽)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오른쪽)와 축하 사절로 참석한 이규택 미래희망연대 대표(현 미래연합 대표)가 3월 25일 국민중심연합 창당대회에서 손을 들어 환호하고 있다. (오른쪽)4월 2일 서울 여의도 국회 헌정기념관에서 열린 미래희망연대 전당대회에서 노철래 원내대표가 당기를 흔들고 있다. 이날 희망연대는 한나라당과의 합당을 선언했고, 탈당한 이규택 대표 등은 나흘 뒤 미래연합을 창당했다.
“이에 대해 친박연합은 적반하장이라는 반응이다. 이용휘 사무총장은 “지금까지 박준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의 유업인 녹화사업을 위해 17년간 환경단체를 이끌었다. 박 전 대표를 이용한 적이 없다. 박 전 대통령의 나머지 유업인 국민대통합을 위해 나아가는 것이다. 2006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급조된 정당도 아니다. 정확히 써달라”고 말했다. ‘친박(親朴)’의 ‘박(朴)’은 박정희의 ‘박’이라는 것인데, ‘친박’이란 명칭이 정치권에서는 ‘친박근혜’의 의미로 통하는 만큼 친박연대의 흥행을 노렸다는 해석을 낳기에 충분하다.
그렇다면 이들 신생 정당은 왜 저마다 ‘목각인형 공명’을 앞세웠을까. 대부분의 전문가는 “유명 정치인의 후광을 빌려 짧은 기간 내에 많은 득표를 노리겠다는 의도이지만, 선거 영향력은 미약할 것”이라고 평가한다. “카리스마가 약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김일성 사후 3년간 아버지의 후광을 활용한 유훈(遺訓)통치와 다를 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숭실대 정외과 강원택 교수의 분석이다.
낙천한 후보 영입…여야 박빙 지역엔 변수
“(유명 정치인을 앞세운) 신생 정당은 개인 이름으로는 안 되니까 정치적 욕심을 유명 정치인의 이름으로 포장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과거 국민의 지지를 받았던 정치인의 이름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것이다. 그런 만큼 선거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할 전망이다. 국민참여당의 유시민 전 장관과 무소속 김두관 전 장관 정도가 그나마 주목받는 이유는 참여당의 지지 때문이 아니라 개인적인 이름값 때문이다.”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이철희 컨설팅본부장의 분석도 비슷하다. “이미 유권자들은 친박연대를 한 번 경험했다. 여기에 선거를 앞두고 급조된 정당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선거판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할 것이다.”
큰 줄기는 그렇다 쳐도, 현실 정당 관계자들은 ‘변수’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관계자의 설명이다.
“신생 정당들은 출마자들의 해방구 구실을 한다. 그러면서 ‘낙천 후보 주워 담기’를 통해 외연 확장을 모색한다. 인지도가 높은 거물 정치인이 낙천하면 슬그머니 영입해 출마시키는 것이다. 호남에서는 평민당, 영남에서는 ‘친박’ 타이틀이 통하기 때문인데, 특히 시골지역일수록 당 성향이 비슷하면 인지도가 높은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경향이 있다. 여야 후보 지지율이 박빙인 수도권에서는 신생 정당 후보가 5% 정도만 득표율을 잠식해도 선거판이 바뀐다. 광역단체장은 어렵더라도 기초단체장과 비례대표 몇 석은 가능하다.”
그래서일까. 미래연합과 친박연합 측은 공공연히 “한나라당 낙천 인사가 대거 몰릴 것”이라고 자신한다. 4월 14일 민주당은 “지방선거 김해시 의원으로 민주당 경선에 참여해 탈락한 후보를 국민참여당이 입당시켰다”며 참여당의 ‘낙천 후보 주워 담기’를 비난했다.
신생 정당의 출현이 결국 ‘당 대 당 통합’을 위한 지분 확보 차원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 공익연구기관 연구원(정치학 박사)의 말이다.
(왼쪽부터)박정희, 김대중, 노무현, 박근혜
정치인이 정치적 주장에 따라 정당을 만들고 국민의 심판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정치가 양당제로 가야 할 이유도 없다. 그러나 선거 때마다 정체도 모를 정당을 급조했다가 선거가 끝나면 곧바로 해체하는 행태는 고스란히 국민 혼란과 민의 왜곡으로 이어진다. 결국 이들 정당이 저마다 앞세운 ‘공명’이 6월 2일 학우선을 펼칠지, 백기를 흔들지에 따라 신생 정당의 운명도 갈릴 것이다. 일은 사람이 꾸미나 성공은 하늘이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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