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12월 9일 국회를 통과했지만 그다음 날 서울 광화문광장에 모인 촛불의 화력은 줄어들지 않았다. 10일 저녁 70만 촛불(경찰 추산 16만6000명)의 목소리는 여전히 “박근혜는 퇴진하라, 박근혜를 구속하라”고 했지만 ‘즉각’이라는 수식어가 어느 때보다 강조됐다. 국회 탄핵소추안 가결을 자축하는 축제 분위기에 더해 헌법재판소(헌재)가 촛불 민심을 제대로 읽는지 끝까지 감시하겠다는 기류가 형성됐다.
집회에 참가한 시민은 주최 측이 준비한 공연을 보며 음식을 나눠 먹거나 풍물패를 따라 춤추며 행진했다. 일부 단체는 축제 분위기를 틈타 대통령 탄핵과 관계없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옛 통합진보당 세력이 결성한 원외 정당 ‘민중연합당’은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의 석방을 주장했다. 한편 같은 날 맞불집회를 진행한 보수단체 회원 가운데 일부가 촛불집회가 열리는 광화문광장으로 찾아와 난동을 부리기도 했다.
12월 10일 광화문광장 인근은 점심시간 때부터 축제 분위기였다. 대낮이라 촛불은 켜지 않았지만 광화문광장을 지나는 사람 상당수가 ‘박근혜 대통령 퇴진’이라고 쓰인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교복을 입은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3일 6차 촛불집회와 마찬가지로 이날도 내자동과 청운동 일대가 광화문광장보다 먼저 붐볐다.
“헌재가 탄핵안 인용하는 그날까지…”
경복궁 담장을 따라 걷던 정모(26) 씨는 “11월 5일 2차 촛불집회 때부터 매주 여자친구와 집회에 참가해왔다. 집회현장에 올 때마다 자리에서 내려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 대통령과 지지부진한 정치권 때문에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이번 집회는 다르다. 우리가 함께 들었던 촛불이 시국을 조금은 바꾼 것 같아 기분이 좋다”며 “오늘은 매주 토요일 저녁 촛불을 들고 걷던 청운동 거리가 어떻게 생겼는지 궁금해 조금 일찍 나왔다. 집회가 시작되면 양쪽으로 경찰차벽이 세워지고 인파에 휩쓸려 주위를 둘러볼 틈이 없었다. 그래서 오늘은 일찍 나와 우리가 구호를 외치며 걸었던 거리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족과 함께 집회에 참가한 경기 용인시의 권예진(17) 양은 “그동안 집회에 참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기말고사 준비로 나오지 못해 TV로 현장을 지켜봤다. 촛불을 든 국민의 힘으로 탄핵소추안이 가결되고 대통령 퇴진이 한 발짝 다가온 만큼, 역사적 현장에 함께 있고 싶었다. 혼자 나오려 했지만 부모님이 위험하다며 반대해 온 가족이 함께 집회에 나왔다”고 밝혔다.
오후 6시가 되자 광화문광장 무대에서 촛불집회 본행사가 시작됐다. 그러나 내자동과 청운동 일대에 더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광화문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는 여느 주말 오후만큼 사람이 모였지만, 청와대 인근인 내자동과 청운동 일대에는 주말 저녁 명동 거리처럼 빽빽하게 촛불이 들어찼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가 오히려 더 커졌다. 헌재가 얼마만큼 빨리, 제대로 결정할지 끝까지 지켜보겠다는 시민이 대다수였다.
서울 성동구의 이정아(26·여) 씨는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는 국민 요구사항의 전제일 뿐이다. 헌재의 빠른 결정으로 대통령 탄핵이 마무리돼야 한다. 그 후 대통령이 집권 기간 저지른 잘못에 대한 확실한 수사와 처벌이 뒤따라야 비로소 매주 광장에 모이던 국민이 촛불을 내려놓을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헌재의 탄핵소추안 인용이 있을 때까지 촛불을 끄지 않겠다는 시민도 있었다. 서울 광진구의 한모(43·여) 씨는 “광화문광장에 100만 가까운 인파가 모여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촛불집회가 앞으로도 매주 계속된다면 헌재도 탄핵소추안을 인용할 것 같다. 박근혜 대통령의 완전한 퇴진을 위해 촛불을 들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6차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은 대부분 정치권에 대한 비토로 가득 찼다. 국회가 대통령 탄핵 문제를 두고 오락가락하는 통에 탄핵소추안 통과가 그만큼 늦춰졌기 때문이다.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비판의 화살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집중됐다. 헌재 결정까지 기다리지 말고 하루빨리 대통령직에서 물러나라는 게 민심의 실체다. 한마디로 ‘너의 죄를 네가 아니 즉각 퇴진해 수사를 제대로 받으라’는 것.
이날 촛불집회에서 자유발언자는 대부분 대통령의 집권 기간 실정이나 문제점을 꼬집었다. 이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을 얻은 것이 ‘세월호’ 문제였다. 자유발언을 듣던 경기 김포시의 손모(20·여) 씨는 “언론보도를 보니 세월호 참사 당일 7시간 동안 대통령이 머리 손질을 하고 관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고 하더라. 한 나라의 대통령이라는 사람이 어린 학생 수백 명이 해난사고에 휘말렸다는 보고를 받고도 머리 손질을 할 생각을 했다는 데 소름이 돋는다. 결국 대통령의 직무 태만 탓에 저 많은 생명이 희생된 것 같아 마음이 아프다”며 답답해했다.
호응 잃은 민중연합당과 보수단체의 구호
일부 단체는 대통령의 실정을 비판하는 분위기에 편승해 자신들의 구호를 외치기도 했다. 민중연합당은 경복궁 앞과 내자동 거리에서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이석기 전 의원과 불법시위 주도 혐의로 구속된 한상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을 석방하라는 구호를 외치며 자유발언을 이어갔다. 그러나 이 구호를 따라 하는 시민은 많지 않았다. 서울 강남구의 장모(51·여) 씨는 “아들이 의경(의무경찰)으로 근무 중이라 걱정돼 집회에 나왔다. 간혹 급진적인 구호를 외치는 사람이 있어 처음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걱정이 컸지만 막상 보니 구호를 따라 하는 사람이 적고 집회도 폭력적인 분위기와는 거리가 멀어 안심이 된다”고 말했다.
한편 촛불집회가 시작된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보수단체 회원 20명 남짓이 태극기를 흔들면서 내자동과 청운동 일대를 행진했다. 이들은 “탄핵 무효, 국회 해산”을 외치며 촛불 사이로 작은 행렬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들의 맞불은 실패했다. 촛불집회 참가자들의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구호에 이들의 목소리가 완전히 묻혀버린 것. 일부 보수단체 회원은 촛불집회 참가자와 몸싸움을 벌이기도 했지만 촛불을 든 시민들이 금세 제지해 큰 다툼은 일어나지 않았다.
맞불집회 참가자들은 경찰차벽에 도착하자 손에 든 태극기를 가방과 주머니에 말아 넣었다. 그사이 촛불집회 참가자는 더 많이 늘어 있었다. 그만큼 ‘대통령 즉각 퇴진’을 외치는 목소리는 커졌고, 맞불집회 참가자의 소리는 작아졌다. 이윽고 맞불집회 참가자들은 짐을 싸 경복궁역으로 이동했고 역에 이를 때까지 침묵하더니 비교적 한산한 역내에 들어서자 “탄핵 무효”를 외치기 시작했다. 가방에 넣었던 태극기를 하나 둘 꺼내 들며 다시 목소리가 커졌다. 한산한 지하철 역내에서 “탄핵 무효” 구호가 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