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6일 서울 여의도 국민의힘 당사에서 윤석열 대선 후보의 부인 김건희 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허위 경력 의혹에 대해 사과하고 있다. [동아DB]
의혹의 요지는 2001~2016년 5개 대학 시간강사·겸임교원 임용 과정에서 제출한 서류에 △초중고교 교생실습 경력을 ‘정교사’로, 한국폴리텍1대 시간강사 경력을 ‘부교수(겸임)’로 각각 기재했고 △한국게임산업협회·에이치컬쳐 재직 기간 및 직위를 오기했으며 △애니메이션 공모전 수상 실적을 허위로 적었다는 것이다.
“너무 감성에 치우쳤다”
기자회견에서 김 씨는 “일과 학업을 함께하는 과정에서 잘못이 있었다. 잘 보이려고 경력을 부풀리고 잘못 적은 것도 있었다.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돌이켜보니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하면서도 구체적으로 어떤 이력을 잘못 기재했는지 밝히진 않았다. 김 씨의 사과 직후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선대위) 측이 A4 용지 14쪽 분량 자료를 내고 추가 해명을 했다. “이력서를 혼동에 따라 잘못 기재”했고 “오인할 수 있는 표기를 한 것은 송구하다”는 것이 뼈대다.김 씨가 기자회견에서 구체적으로 해명하지 않은 이유는 ‘석고대죄식’ 사과가 소구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자칫 대국민 사과가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다는 우려에 김 씨는 기자회견 전 제3자 코칭도 사양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국민 사과의 효과를 극대화함으로써 허위 경력 논란을 이번 기회에 잠재우고 윤 후보의 대선 가도에 더는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선거캠프 측 의도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씨의 기자회견은 또 다른 논란을 불러왔다. ‘해명 없는 사과’라는 비판과 함께 “국민보다 남편 윤 후보에 대한 사죄로 읽힌다”는 지적이 대표적이다. 김 씨는 약 7분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결혼 후 남편이 겪은 모든 고통이 다 내 탓이라고 생각했다. 국민을 향한 남편의 뜻에 내가 얼룩이 될까 늘 조마조마하다”며 국민이 아닌 윤 후보에게 ‘사과’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
박상병 인하대 정책대학원 초빙교수는 “김 씨의 사과에는 무엇을 잘못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해명이 없고 사과 내용이 너무 감성에 치우쳐 있다”며 “시간강사 경력을 부교수로 기재하는 것이 상식적으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국민 공감을 받기 어려워 보인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이어 “‘사랑하고 존경하는 남편’ 얘기를 주로 했는데 자신에 대한 의혹을 해명하는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다”라며 “팩트를 숨기고 동정심을 얻으려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정치학자는 “국민이 아닌 남편 윤 후보에게 사과한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묘한 내용”이라면서 “경력을 허위 기재한 것은 누군가의 아내가 아닌, 대학 교원으로서 책임지고 사과할 일인데 그러한 문제의식이 보이지 않는다”고 평했다.
반면 해명보다 사과를 앞세운 전략이 주효했다는 평가도 있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과 메시지는 감성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효과적이라는 점에선 큰 문제없는 사과였다고 본다”며 “다만 사과 시점이 좀 더 빨랐어야 했다”고 말했다. 한 시사평론가는 “현 상황에서 김 씨의 허위 이력 논란은 법적 처벌 대상으로 보기 어렵다”며 “그렇기에 구구절절 해명하기보다 일단 잘못했다고 사과하는 것이 급선무인데, 논리적 해명과 달리 사과는 감성적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고 평했다. 이어 그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 측이 김 씨의 이력 논란에 대해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것도 이번 기자회견 효과가 나쁘지 않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향후 대선 국면에서 김 씨의 사과가 윤 후보의 ‘배우자 리스크’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길리서치가 ‘아주경제’ 의뢰로 12월 25~27일 전국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차기 대통령 지지도 여론조사에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42.4%)가 윤 후보(34.9%)를 7.5%p 앞섰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배우자의 대국민 사과에도 이 후보 지지율이 윤 후보를 앞선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전문가들은 김 씨의 허위 경력 논란이 윤 후보가 내세운 ‘공정’ 가치에 타격을 준 결과라고 분석한다. 신율 교수는 “윤 후보를 향했던 중도층 표심이 최근 이탈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이 후보 지지로 선회한 것은 아니기에 이번 이슈로 이 후보가 반사이익을 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윤 후보에게 악재가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기자회견 이튿날인 12월 27일 김 씨의 석사학위 논문 표절 의혹이 추가로 제기됐다. 12월 29일엔 서울경찰청 반부패·공공범죄수사대가 김 씨를 사기와 사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한 시민단체 관계자를 불러 고발인 조사를 했다. 경찰 조사 결과에 따라 허위 경력 논란의 불똥이 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역풍 우려해 짧은 입장문 낸 李
그렇지만 허위 경력 논란을 둘러싼 민심의 향배를 최종 가늠하기는 아직 이르다는 의견도 있다. 한 여론조사 전문가는 “각 후보나 주변 인물이 일정한 메시지를 냈다고 해서 다음 날 바로 여론에 어떻게 반영됐는지 분석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최근 조사에서 윤 후보의 지속적인 지지도 하향 국면이 관찰되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자회견 이후 제대로 된 여론조사 결과는 2022년 1월 2일이 지나서야 나온다는 이유에서다.김 씨가 사과한 날 민주당 선대위는 “그동안 제기된 김건희 씨 문제에 대한 국민 의혹이 해소되지 않았다”며 “오늘의 사과가 윤석열 후보 부부의 진심이기를 기대한다”는 짧은 입장문을 냈다. 이튿날 이 후보도 “평가는 국민에게 맡기는 게 도리”라고 말했다. 박상병 교수는 이 후보의 논평에 대해 “상대 후보 가족 문제에 공격적 대응을 자제하겠다는 태도로 읽힌다”며 “자신도 아들의 불법도박 의혹과 관련한 리스크를 떠안은 상태이기에 역풍 가능성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 씨의 사과로 본인의 가족 리스크가 함께 부각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다는 분석이다. 이 후보 선거캠프 관계자는 “김 씨 허위 경력 의혹과 이 후보 아들의 논란은 별도 문제다. 가족 문제에서 책임질 것은 책임지고 허위 사실은 명백하게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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