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곡 ‘ELEVEN(일레븐)’으로 인기 급상승 중인 걸그룹 ‘아이브(IVE)’. [사진 제공 · 스타쉽엔터테인먼트]
데뷔곡 ‘ELEVEN(일레븐)’은 케이팝 경력이 비교적 적은 외국인 작곡가들과 다부진 걸그룹 곡으로 정평이 난 케이팝 작곡가 라이언 전이 팀을 이뤄 완성했다. 비트의 긴장이 점차 레이어를 더해가다 시원하게 폭발한다. 가늘고 고운 음색과 속삭이듯 은근한 발성이 교차하며 역동을 만들어낸다. 후렴에서는 선명하고 선 굵은 리드보컬로 확실한 폭발력을 담보한다. 멤버들은 같은 파트를 번갈아 담당하며 각자의 캐릭터를 드러내면서도 곡의 반복되는 역동에 따라 두어 가지 목소리를 선보인다. 물론 이 자체가 새롭지는 않다. 케이팝 양식에 충실한, 이를 잘 해내는 웰메이드 댄스팝이라고 볼 수 있다.
고운 음색, 격하고 시원한 안무 매력
‘ELEVEN’은 특이한 곡이기도 하다. 군무는 기하학적 형상으로 조형미를 추구하는 한편, 구상적인 동작들이 매우 인상적이다. “잘 봐”라는 가사와 함께 손으로 눈동자를 가리키거나, 가사 속 “7”에 맞춰 손으로 7자를 그리며 얼굴을 찌푸린 채 엄지를 깨무는 동작들이다. ‘눈’이 중요 모티프로 사용된다는 점도 신비주의 취향을 드러낸다. 대중문화에서 익숙한 신비 코드인 오드아이(양쪽 색깔이 다른 눈)도 언급된다. 미니멀한 비트에 집요하게 엇박자로 이어지는 멜로디의 긴장감도 그렇다. 뮤직비디오 속 조형물들도 고대 유물 느낌을 내거나 아르누보 스타일을 차용해 신비한 인상을 준다.후렴 직전 과감하게 템포를 늦추는 대목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이어지는 후렴의 격한 힘을 이끌어내는데, 많은 이가 지적하듯 ‘틱톡’ 같은 소셜플랫폼에서 활용되기 좋은 장치라 생각된다. 더 재미있는 것은 이때의 랩 “난 몰랐어 내 맘이 이리 다채로운지”가 격하고 날카로운 목소리로 연출된다는 점이다. 사랑에 눈뜨면서 자신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는 내용은 걸그룹 노래에서 클리셰 중 클리셰다. 그러나 ‘ELEVEN’ 속 화자는 첫사랑에 당황한 순진한 소녀로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새로운 감정의 발견에 짜릿함을 느끼는 인물처럼 보인다. 이는 격한 동작의 시원스러운 안무, 거침없는 비트로도 느낄 수 있다. 눈이라는 모티프도 같은 맥락이다. 화자는 상대 눈빛에 설렌다거나 눈을 피하지 않는다. 상대 눈이 언급되는 건 오히려 결론부의 “그 눈에 비친 나를 사랑하게 됐거든”이다.
‘ELEVEN’이 디테일하고 집중력 있게 구현하는 것은 자신감 넘치고 자기만족적인, 그래서 빛나는 인물이다. 우리가 스타에게서 흔히 떠올리는 모습이다. 때론 그 이상의 다른 것들을 기대하기도 한다. 인형 같은 외모, 겸손함, 팬 서비스, 복잡한 세계관, 달콤한 구애 같은 것 말이다. 물론 이런 것들이 아이브에게서 누락됐다는 건 아니다. 아이브가 보여주는 건 결국 아이돌이 스타로서 빛날 때 가장 멋지다는 인식, 그리고 아이돌은 기획과 연출로 만들어내는 산업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