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전 대통령(왼쪽).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 [동아DB]
尹, 최순실 국정농단 수사 이력 부각
이 시점에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자연스럽게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최순실 게이트 수사로 박 전 대통령 탄핵에 기여한 과거가 부각된다. 국민의힘 당내 옛 친박근혜(친박)계가 복권을 노리면서 윤 후보 주변의 옛 친이명박(친이)계와 주도권 다툼을 벌일 우려도 있다. 대구·경북(TK)의 옛 친박계 지지층이 윤석열 지지를 철회할 가능성도 높아질 것이다. 이번 특별사면은 적진 분열을 노린 카드 성격이 강하다.문 대통령이 특별사면을 주도했다는 것이 청와대 측 설명이다. 박수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수석은 2021년 12월 2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자신도 당일 아침에서야 기류를 인지했다고 설명했다. 박 수석은 “대통령이 참모들도 눈치를 못 채도록 혼자 고심하고 결단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특별사면 발표 직전이던 12월 24일 ‘동아일보’는 “문 대통령이 박 전 대통령을 특별사면한다”는 단독보도를 내놨다. ‘중앙일보’는 뒤이어 이철희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이 얼마 전 서울 여의도에서 민주당 송영길 대표 등 당 지도부와 만나 사면 문제를 두고 의견을 교환했다는 단독보도를 내놨다. 청와대와 송 대표 모두 관련 보도를 부인한 상태다.
박 수석은 앞선 인터뷰에서 “사실이 아닌 것으로 안다. 송 대표에게 그날 아침 전화했더니 그냥 웃었다. 잘 모르는 것 같았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12월 28일 YTN ‘뉴스Q’와 인터뷰에서 “최근 한 달 정도는 대통령이 답변이 없어서 거의 물 건너간 것으로 알고 있었다”며 “그날 아침 9시 이철희 정무수석이 전화를 해 알았다”고 말했다. 이번 특별사면에 정치적 고려도, 논의도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재명 후보도 몰랐다는 입장이다. 이 후보는 12월 24일 “문 대통령의 국민통합에 대한 고뇌를 이해하고 어려운 결정을 존중한다”고 밝힌 데 이어, 이틀 후 KBS ‘일요진단 라이브’에 출연해 “후폭풍이나 갈등 요소를 대통령 혼자 짊어지겠다고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사전 요청도, 교감도 없었다는 설명이지만 전직 대통령에 대한 특별사면을 임기 말에 여당 지도부나 대선 후보와 상의 없이 진행했다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다. 정권 재창출을 포기한 것이 아니라면 여당과 자당 대선 후보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이 우선이다. 정권 재창출에 도움이 된다는 확신 없이는 섣불리 결행할 수 없는 사안이기 때문이다.
사전 교감설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재차 해명했다. 청와대 한 고위 관계자는 12월 26일 ‘동아일보’와 통화에서 “박 전 대통령 사면이 보수 진영을 분열시키기 위한 목적이라는 주장에는 전혀 동의할 수 없다. 용납할 수 없는 해석”이라고 부인했다. 그럼에도 옛 친박계 움직임이 예사롭지 않다. 대구·경북 지역 민심 역시 요동치고 있다.
후보 교체론 꺼내 든 친박계
옛 친박계 중에서도 강성으로 꼽히는 우리공화당 조원진 대표는 12월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대구에서는 선수 교체 여론까지 나오고 있다”며 대선 후보 교체론을 꺼내 들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오마이뉴스’ 의뢰로 12월 19일부터 엿새간 전국 유권자 309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 대구·경북 지역에서 문 대통령에 대한 긍정평가는 전주 대비 7.8%p 상승했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1.8%p.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청와대와 민주당이 적진 분열을 의도했다면 효과가 이미 나타나고 있는 셈이다.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 이후 윤 후보는 한껏 몸을 낮췄다. 특별사면 직후인 12월 24일 기자회견을 열고 “늦었지만 환영한다”고 밝힌 데 이어, 12월 28일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는 “수사는 공직자로서 내 직분에 의한 일이었다 하더라도 정치적·정서적으로는 대단히 미안한 마음을 인간적으로 갖고 있다”고 말했다. 12월 29일과 30일에는 대구·경북 지역을 방문했다. 요동치는 지역 민심을 다잡기 위해서다.
윤 후보는 이 위기를 잘 헤쳐 나가 전화위복 계기로 만들 수 있을까. 이는 향후 옛 친박계 행보에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달렸다. 옛 친박계로서는 무엇보다 상실한 당내 주도권을 되찾고 싶을 것이다. 박 전 대통령 특별사면을 계기로 공세를 강화할 가능성이 높다. 후보 교체론도 약방의 감초처럼 활용할 테다. 박 전 대통령의 의지와 무관한 문제다. 자신들이 살아남기 위한 방편이기 때문이다.
요행수도 없진 않다. 특별사면에 대한 반발이 진보 지지층 내에서 심해지면서 오히려 문 대통령과 민주당이 역풍을 맞는 상황이다. 정의당 여영국 대표는 “국민은 ‘이재명 후보를 당선시키는 데 박 전 대통령이 협조하겠다’는 밀약을 한 것이 아닌가 의심한다”며 사전 교감설을 넘어선 사전 밀약설까지 제기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과 참여연대를 비롯한 1000여 개 시민사회단체도 사면 철회를 촉구 중이다. 대선에 미칠 장기적 여파는 그런 점에서 아직 예단이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