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통합당의 자살골 퍼레이드

압도적 지지받은 더불어민주당, 뜨거운 양철지붕 위 고양이와 비슷한 처지

  • 이종훈 시사평론가 rheehoon@naver.com

    입력2020-04-16 16:1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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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변은 없었다. 이번엔 여론조사 결과도 적중했다. 출구조사 결과도 마찬가지다. 있을지 모른다던 샤이 보수층도 없었다. 덩달아 선거 예측지수도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총선 결과는 대다수 전문가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집권 여당의 압승으로 끝났다. 왜 이런 결과가 나왔을까. 문재인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 잘해서일까, 아니면 미래통합당이 잘못 해서일까. 두 가지가 결합된 결과다.

    포지티브 전략과 코로나 마케팅의 승리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4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가 4월 1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대한민국미래준비선거대책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더불어민주당은 당초 야당심판론을 들고 나왔다. 하지만 공식 선거 국면에 접어들면서 정부지원론으로 변경했다. 네거티브 전략에서 포지티브 전략으로 전환한 것이다. 이와 더불어 집중한 것이 ‘코로나 마케팅’이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에 대한 전 세계의 긍정적 평가에 편승하는 전략이다.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주효했다. 

    반면 미래통합당은 처음부터 끝까지 정권심판론에 주력했다. 전통적인 야당 전략이다. 하지만 전통적이기에 구태의연한 전략이기도 하다. 더욱이 네거티브 전략이다. 그런 점에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미래통합당은 역풍을 맞았다. 심판하겠다는 정당이 심판당할 일만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선거 막판 막말 파동이 대표적이다. 

    대표적인 막말 사례의 주인공인 차명진 후보를 처리하는 과정에서도 황교안 전 대표와 미래통합당은 한계를 노출했다. 제명을 고려했다 탈당 권유로 선회했고, 논란이 이어지자 그때서야 긴급 최고위원회에서 제명을 의결했다. 이조차 법원이 절차상 문제로 무효화하면서 차 후보가 완주하는 웃지 못할 상황도 벌어졌다. 위기관리 능력이 이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에 보수 지지층 사이에서도 한숨이 터져 나왔다. 

    그 직전 불거진 공천 파동 역시 만만치 않은 후폭풍을 낳았다. 미래한국당 비례대표 후보에 친황(친황교안)계를 밀어넣는 과정에서 한선교 전 대표가 반발하며 사퇴했다. 김종인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을 영입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공천 관련 이견으로 김형오 전 공천관리위원장도 사퇴했다. 그런 와중에도 황 전 대표는 친황계 살리기에 주력했다. 그래서 목표를 일부 달성했지만 내부의 적이 이미 늘어난 뒤였다. 



    공천 파동이 이어지면서 공천 정당성을 문제 삼는 이들도 증가했다. 그들 가운데 일부는 무소속 출마를 강행했다.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한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경남도지사 같은 인물도 있지만, 표심을 분산해 본인도 낙선하고 미래통합당 후보도 낙선시킨 경우도 없지 않았다. 자살골은 넣은 것이다. 

    지역구 당선인 수는 차이가 큰 반면, 정당투표 득표에서는 의외로 여야 간 차이가 크지 않다. 이는 곧 격전지가 많았다는 뜻이다. 동시에 공천 파동에 따른 표심 분리가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처럼 황 전 대표는 총선 기간 내내 뺄셈 정치로 일관했다. 그래서 다시금 황교안 리스크에 대한 우려가 고조됐지만, 선수 교체를 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상황이었다.

    ‘미래’도 ‘통합’도 없었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4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김종인 미래통합당 총괄 선거대책위원장이 4월 16일 오전 국회에서 21대 총선 결과와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뉴시스]

    미래통합당이라는 당명에도 불구하고 ‘미래’도 없고 ‘통합’도 없었다는 문제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네거티브 전략에 주력하면서 황 전 대표와 미래통합당 지도부는 반대를 위한 반대로 일관했다. 미래 비전과 대안을 제시하며 수권정당으로서 역량을 보여줘야 했지만, 그러지 못했다. 

    이슈도 오히려 더불어민주당이 선점했다. 대표적인 것이 재난기본소득이다.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필두로 이재명 경기도지사 등이 선제적으로 제안하고 나오는 사이 황 전 대표와 미래통합당은 방향을 명확히 잡지 못한 채 우왕좌왕했다. 문 대통령이 소득 하위 70%에 대한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안을 제시했을 때도 한동안 현금 퍼주기 내지 매표 행위라며 비판만 했다. 뒤늦게 국민 모두에게 지급하자고 입장을 황급히 바꾸긴 했지만, 표심은 이미 떠난 뒤였다. 

    김종인 위원장 영입으로 미래 비전 제시를 시도했지만 이 또한 너무 늦었다. 김 위원장은 ‘경제 코로나’가 밀려올 것이라며 올해 예산 512조 원 중 20%인 약 100조 원에 대해 항목을 변경하는 대통령 긴급재정명령을 발동해 코로나 대책 재원으로 삼자고 주장했다. 역코로나 마케팅을 시도한 것이다. 설명이 꽤나 필요한 이 대안이 국민에게 온전히 전달되기도 전 총선이 끝났다. 

    황 전 대표와 김 위원장의 엇박자, 그리고 바른미래당 유승민 전 대표(현 미래통합당)와 황 전 대표의 엇박자도 갈 길 바쁜 미래통합당의 발목을 잡는 요인이었다. 황 전 대표는 사퇴 기자회견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통합당은 수년간 분열과 반목을 극복하고 산고 끝에 늦게나마 통합을 이뤘지만 화학적 결합할 시간이 부족했다.” 

    황 전 대표는 한선교 전 대표하고도, 김형오 전 위원장하고도 화학적 결합을 하지 못했다. 리더십이 뛰어난 정치인은 시간 탓을 하지 않는다. 

    통합이 미완에 그친 것도 패인 가운데 하나다. 보수 대통합을 기치로 내걸었지만 도로 새누리당에 그쳤다.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통합도 성사시키지 못했다. 친박(친박근혜)계 청산도 물론 이뤄내지 못했다. 오히려 일부 친박계를 친황계로 끌어들이기조차 했다. 결과적으로 혁신은 물 건너가버렸다. 이런 요인들이 결합돼 오히려 반사적 이익을 여당에 안겨주고 말았다.

    도로 새누리당에 그친 보수 대통합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4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당 당사에 마련된 21대 총선 개표상황실을 찾아 출구조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가 4월 15일 서울 마포구 서울시당 당사에 마련된 21대 총선 개표상황실을 찾아 출구조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뉴스1]

    총선 이후 여야 모두 빠른 속도로 대선체제로 전환해나갈 전망이다. 총선 패배 직후 황 대표는 사퇴했다. 또 다시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갈지, 아니면 조기 전당대회로 갈지 두고 봐야 하지만, 후자의 가능성이 좀 더 높아 보인다. 자유한국당과 새로운보수당이 통합 추진 당시 이미 전당대회 실시에 합의했기 때문이다. 

    미래통합당 당헌·당규에 따르면 대권주자는 대선 1년 6개월 전부터는 당직을 맡을 수 없다. 그래서 대권주자들이 대리인을 내세울 것으로 보인다. 당장은 경쟁이 치열할 전망이다. 이번 총선 완패의 의미 가운데 하나는 친박계로는 더는 어렵다는 것이다. 이를 확인한 이상 친박계 대표를 내세우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 점에서 ‘비박(비박근혜)계’ 대권주자 중 한 명의 대리인이 새 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비박계 대권주자 가운데 우선 관심의 대상이 되는 인물은 유승민 전 대표다. 미래통합당 지지층 사이에서 배신자로 낙인찍힌 그이지만, 대선 승리라는 대전제하에서는 그를 용인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래통합당 창당 과정에서 합류한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같은 맥락에서 경쟁에 뛰어들 개연성이 높다. 개혁 이미지를 지닌 몇 안 되는 보수 진영 인물이기 때문이다. 

    중도로 외연을 확대할 필요성이 제기된 만큼 국민의당과의 통합 문제도 다시 제기될 것이다. 안철수계 일부는 이미 미래통합당에 합류했고 공천까지 받았다. 안 대표는 이 점을 고려해 지역구 후보자까지 내지 않았다. 사실상 선거연대를 시작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통합의 토대는 마련됐다고 봐야 한다. 합당이 이뤄질 경우 안 대표도 미래통합당 대권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편입될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총선 투표일 직전인 4월 14일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미래통합당과 함께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공수처법)을 개정할 것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국민의당 공약이 공수처법 개정이다.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일에 동참한다면 어떤 당이라도 함께 손잡고 법을 통과시키는 게 당연한 일이다.” 이미 통합에 반쯤 몸을 들여놓은 게 아닌가 싶다. 

    무소속으로 당선해 곧 돌아올 홍준표 전 대표와 김태호 전 지사도 당연히 대권주자로서 입지를 키우려들 것이다. 누구의 대리인이 당권을 잡느냐에 따라 당의 혁신 성격과 수준도 결정될 전망이다. 또다시 정치력과 리더십이 부족한 누군가가 당권을 잡는다면 차기 대선에도 적신호가 켜질 테다. 홍 전 대표는 이미 한 차례 검증을 거쳤다.

    지역주의와 이념 대립의 결합

    이번 압승에 더불어민주당도 많이 놀랐을 것이다. 오히려 절반 의석을 조금 넘는 정도가 덜 부담스러웠을지도 모른다. 사실상 이번 총선을 주도한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은 이렇게 말했다. “총선 결과가 너무 무섭고 두렵지만, 당선된 분들이 국민들께 한없이 낮은 자세로 문재인 대통령님과 함께 국난 극복에 헌신해주시리라 믿는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 국민적 여망에 부응하지 못할 경우 거품처럼 순식간에 꺼질 수 있는 것이 지지율이다. 그런 점에서 더불어민주당은 ‘뜨거운 양철지붕 위 고양이’다. 

    총선 과정에서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는 이번 총선이 자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소임이라고 밝혔다. 그래서 총선 후 사퇴론이 제기됐지만 더불어민주당 측은 일단 부인했다. 이 대표가 당장 사퇴하지 않더라도 전당대회는 8월에 열릴 것이다. 더불어민주당 당헌·당규는 대권주자의 경우 1년 전부터 당직을 맡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미래통합당과 달리 차기 대권주자들이 직접 대표에 도전할 가능성이 크다. 

    이번 총선에서 압승하는 데 원동력이 된 것은 호남의 몰표다. 이낙연 전 총리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된 결과다.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오랜만에 뜨고 있는 호남의 대선후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이 전 총리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고 본다. 문 대통령의 사저가 있는 경남 양산을에서 당선한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도 다시금 대권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그 역시 당권에 직접 도전할 확률이 높다. 

    180석 예언을 독박 쓸 뻔했지만 오히려 대박을 터뜨린 유시민 사람사는세상 노무현재단 이사장도 이번에는 뛰어들지 모른다. 그 여부에 따라 유 이사장의 대선 불출마에 대한 진정성도 자연스럽게 확인될 전망이다. 김부겸 의원도 대표 후보 가운데 한 명이다. 김 의원은 이미 총선 과정에서 대통령으로서 나라를 확실히 개혁하는 길을 가겠다며 대권 도전 의지를 밝힌 상태다. 낙선에도 불구하고 보수 텃밭 대구·경북에 깃발을 꽂은 전설의 여운은 쉽게 사라지지 않을 테다. 

    핵심 친문(친문재인)계 가운데 여전히 관심의 대상은 조국 전 법무부 장관이다. 조국 수호에 앞장선 이들이 당선하면서 그의 정치적 복권도 초읽기에 들어간 느낌이다. 그가 당대표에 도전하는 상황도 배제하기 어렵다. 86세대도 뒷짐만 지고 있지는 않을 것이다. 우상호 전 원내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그리고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등이 그들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 대통령의 당선에 기여한 그들은 이제 자신들 차례라고 생각할 것이다. 

    총선 직후 곧바로 대선체제로 접어들면서 여야의 극한대립은 더 심해질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이 압도적인 의석수를 앞세워 개혁 입법에 드라이브를 걸면서 싸울 일도 더 늘어날 것이 분명하다. 바닥까지 떨어져 더 잃을 게 없는 미래통합당은 이에 맞서 배수진을 칠 것이라고 봐야 한다. 

    지역주의가 다시 고조되고 있는 현상도 불에 기름을 끼얹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나라는 지역주의와 이념 대립이 결합돼 있다. 당연히 진영논리도 다시 기승을 부릴 테다. 중도 성향의 소수정당이 고사한 상황이라 중재할 주체도 마땅치 않다. 당연히 협치 구조를 만드는 일도 더 어려울 전망이다. 역설적으로 더불어민주당이 ‘4+1 협의체’ 시절을 그리워할 날이 올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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