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띠에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 [Getty Images/Timelife, Archives Cartier © Cartier]
경매가 시작될 때 가격은 20만 달러였다. 한동안 격렬하게 입찰이 오간 끝에 다이아몬드 거래 역사상 처음으로 100만 달러가 넘는 105만 달러에 낙찰됐다. 다이아몬드 구입자는 바로 프랑스 주얼리 회사 까르띠에(Cartier)였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를 사가는 사람이 낙찰 받은 다이아몬드에 자신의 이름을 붙일 것으로 여겼다. 그래서 이 다이아몬드는 구입자 이름을 따 ‘까르띠에 다이아몬드’로 불리게 됐다.
그런데 이 다이아몬드를 꼭 손에 넣고자 하는 남자가 있었다. 배우 리처드 버튼(1925~1984)이었다. 리처드 버튼은 경매 전부터 큰 관심을 보였고 경매에도 참석했다. 경매가 진행되면서 호가가 65만 달러에 이르자 까르띠에와 버튼, 2명의 입찰자만 남았다. 하지만 100만 달러에 이르자 버튼은 포기했고 결국 105만 달러에 까르띠에가 낙찰 받았다.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
1969년 경매 포스터(왼쪽).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40번째 생일 파티에 참석한 엘리자베스 테일러. [구글이미지, 그레이스켈리 페이스북 캡처]
마침내 그는 까르띠에를 설득해 69.42캐럿의 다이아몬드를 110만 달러에 구입할 수 있었다. 단, 까르띠에는 뉴욕 5번가에 위치한 매장에 다이아몬드를 며칠간 진열해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조건을 걸었고, 리처드 버튼은 이를 수용했다.
그 후 며칠간 수천 명이 까르띠에 매장에 몰려들어 굉장한 이야기를 담은 다이아몬드를 구경했다. 다들 이 다이아몬드가 전설적인 별이 될 것이라 믿었다.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이 다이아몬드가 반지로 끼기에는 너무 커서 까르띠에 측에 목걸이 펜던트로 만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까르띠에는 펜던트나 반지에 끼었다 뺐다 할 수 있도록 디자인했다. 결국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세상에서 가장 큰 다이아몬드 중 하나인 69.43캐럿짜리 페어 셰이프(Pear Shape·서양의 배 모양) 다이아몬드를 남편으로부터 선물 받은 것이다.
엘리자베스 테일러가 처음으로 이 목걸이를 하고 나타난 행사는 그레이스 켈리 모나코 왕비의 40번째 생일 파티였다. 보랏빛 눈을 지닌, ‘세기의 미인’으로 불린 여배우의 가슴 위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이 다이아몬드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와 리처드 버튼이 불태운 열정을 상징하게 됐다.
이런 이유로 이 다이아몬드에는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보석 역사의 한 장을 기록한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는 이렇게 탄생했다.
까르띠에와 세기의 로맨스
약혼반지를 착용한 그레이스 켈리가 주연을 맡은 영화 ‘상류 사회’의 장면들과, 10.48캐럿의 약혼반지. [© Dennis Stock/Magnum Photos , © MGM, coll Sunset Boulevard, © Cartier]
리처드 버튼과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러브 스토리는 ‘세기의 로맨스’라고 할 정도로 화제가 됐다. 이혼과 재결합, 또 한 번의 이혼에도 두 사람의 사랑이 열정적이었음을 부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테일러는 생전에 자신이 죽으면 “전남편인 리처드 버튼의 고향에 뿌려달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런 열정적인 사랑의 매개가 바로 까르띠에 다이아몬드인 셈이다.
결혼식날 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를 착용한 캠브리지 공작 부인, 케이트 미들턴(왼쪽).까르띠에 헤일로 티아라. [© Dan Kitwood/Getty Images, © Cartier]
약혼반지에서부터 결혼 예물, 웨딩 티아라에 이르기까지 신화와도 같은 커플의 로맨스를 더욱 빛나게 한 것이 까르띠에다.
173년 전통의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레드박스에 담긴 다이아몬드 반지. [© Cartier]
다이아몬드가 가장 빛나는 세팅을 창조하고자 루이 까르띠에는 실버 소재 대신 플래티넘으로 반지를 만드는 작업을 했고, 결국 플래티넘을 웨딩 링의 완벽한 재료로 변화시켰다. 또한 그는 다이아몬드를 안전하게 고정할 수 있는 정도로만 가장자리를 에워싸는 금속발(prong) 또는 물림쇠(claw)를 사용한 세팅을 고안해냈다. 이러한 마운트는 가장 단순한 버전으로 축소돼 장식적인 모티프들은 뒤로 물러난 반면, 다이아몬드 빛의 반사가 가장 중요한 요소가 된 것이다. 오직 다이아몬드만을 위한 이 특별한 스타일과 표현법은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스타일에 대한 이러한 깊은 탐구는 각기 다른 세팅을 창조하게 만들었으며, 173년 동안 다이아몬드 주얼리의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고 있다.
까르띠에 다이아몬드 링
솔리테어 1895 파베 링(왼쪽). 까르띠에 데스티네 솔리테어 링. [© Cartier]
대표 솔리테어링과 어울리는 갈랑트리 드 까르띠에 네클리스, 이어링(메건 마클이 실제로 착용한 이어링). [© Cartier]
보석·주얼리에 대한 사랑이 대단했던 엘리자베스 테일러는 ‘내 보석과의 사랑 이야기(My Love Affair with Jewelry)’라는 책을 출간했다. 책을 보면 그는 까르띠에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의 주인이자 보석·주얼리 애호가였을 뿐 아니라, 빛나는 보석이 진정한 가치를 찾을 수 있도록 몸소 실천한 인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된 그는 생전에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보석을 사랑할 수 있지만 그것을 소유할 수는 없다. 보석이 나에게 준 환희와 감동 때문에 잠시 감상할 뿐이다.”
하지만 그는 책에서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를 몇 년 후 팔아야 해 지금도 마음이 아프다고 밝혔다. 1979년 그는 버튼으로부터 선물 받은 다이아몬드를 뉴욕 한 보석상에게 팔았다. 가격은 무려 500만 달러(약 61억 원). 하지만 다이아몬드를 판 이유가 있었다. 남아프리카 보츠와나에 병원을 건립할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8번의 결혼 편력과 화려한 미모에 가려져 있었지만 그는 수십 년간 사회사업가로 살았다.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테일러 에이즈 재단’을 설립해 자선 활동을 펼쳤으며, 그해 12월 영국 왕실로부터 남성의 기사(knight) 작위에 해당하는 데임(dame) 작위를 받았다. ‘버튼-테일러 다이아몬드’는 그렇게 수많은 생명을 구하는 데 쓰인 전설적인 별이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