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인류가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경고를 실감나게 한다. 세계 2대 강국이라는 중국이 발원지로 지목되면서 국가적 위신에 큰 상처를 입었음은 말할 것도 없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 최대 강국이라는 미국이 급증하는 사망자 앞에서 쩔쩔 매고 있고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 유럽 주요 국가들도 예외가 아니다. 아시아 최대 강국이라는 일본 역시 완전에 가까운 무기력을 나타내고 있을 뿐이다. 헨리 키신저가 말했듯, 코로나19 사태로 국제정치의 지배구조에 큰 변동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다 해도 사활을 건 전쟁이 일어났을 때 동원될 가능성이 큰 핵무기는 그 엄청난 파괴력을 생각하면 여전히 인류사회에 위협적 존재라 해도 결코 지나치지 않다. 특히 북한의 핵 위협이 실존하는 한반도의 경우 말해 무엇 하랴! 그런데도 1990년대 이후 3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자주 들어 만성이 됐고, 특히 코로나19 사태에 묻혀 북핵에 대한 우려는 잠재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 동아일보사 부설 화정평화재단의 산하기관인 21세기평화연구소는 ‘북핵 볼모 대한민국’을 펴냈다. 매우 시기적절하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화정평화재단이 2017년 7월 13일부터 2020년 1월 20일까지 2년 6개월 동안 30회에 걸쳐 진행한 ‘화정 국가대전략 월례강좌’에서 발표된 논문과 그것을 둘러싼 토론, 그리고 이 강좌와 별도로 초청한 두 전문가의 발표 및 그것을 둘러싼 토론을 시기별로 묶은 것이다. 강연자 명단에서 필자를 빼놓고 보면 “어쩜 이렇게 잘 선정할 수 있었나”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외교 책임자, 예컨대 한승주(전 외무부 장관), 윤영관(전 외교통상부 장관), 송민순(전 외교통상부 장관), 조태용(전 외교통상부 차관), 김성한(전 외교통상부 차관) 등에서 시작해 국방 책임자들, 즉 김태영(전 국방부 장관), 김병관(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사령관), 신원식(전 국방부 합동참모본부 차장)은 물론, 북한 정보를 총괄하는 이종찬(전 국가정보원 원장)과 대북협상 책임자인 현인택(전 통일부 장관), 이종석(전 통일부 장관)도 포함됐다. 이어 청와대에서 외교안보를 총괄했던 천영우(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비서관) 등이 있고, 외교 일선에서 활동한 안호영(전 주미대사), 최상용(전 주일대사), 남주홍(전 주캐나다대사) 등이 포함됐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문정인(대통령 통일외교안보특보)이 발표자로 나섰다.
시야를 밖으로 돌려 유엔에서 북핵 문제는 물론이고 세계 핵문제를 다룬 반기문(전 유엔 사무총장)이 포함됐으며, 주한 미국대사대리와 주한 중국대사 등 외교 사절도 눈에 띈다. 주영 북한공사로 김정일, 김정은 정권의 핵 외교를 꿰뚫고 있다 한국으로 망명한 태영호(태구민)를 포함시킨 것은 말 그대로 백미에 속한다.
지면의 제한으로, 발표자들의 통찰력 높은 관찰을 하나하나 소개할 수 없어 유감이다. 각 의견에 편차가 있음을 인정하면서 그저 뭉뚱그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북한 조선중앙TV는 3월 22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평북 선천 일대의 전술 유도무기 시범 사격 현장을 현지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조선중앙TV 캡처]
북한 김정은 정권은 공개적으로 여러 차례 한국 정부를, 그리고 때로는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행정부를 모욕하곤 했다. 그렇게 할 수 있는 배경에는 바로 북한이 핵개발 분야에서 큰 도약을 이룬 현실이 있었던 것이다. 쉽게 말해 미국을 위협할 핵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자신감, 그리고 한국을 ‘볼모’로 잡아놓아 한국에게는 다른 선택지가 없다는 자신감이 김정은 정권으로 하여금 도가 지나친 발언을 계속하게 만들지 않았겠는가.
2017년 1월 취임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처음에는 싱가포르에 이어 베트남 하노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가졌고 이후 판문점에서 김정은, 문재인 대통령과 잠시 회동했다. 2017년 5월 취임한 문 대통령은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고 몸을 낮춘 것은 물론, 남북통일이 곧 올 것 같은 그림을 보여줬다. 그러나 발표자들의 관찰에서 주류를 형성하는 것은 북핵이 제기하는 현실적 위험은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매우 어렵다는 판단이다.
북한은 한국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있다. 오로지 미국하고만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그것도 자신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선에서 협상하겠다는 의도인데, 미국으로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테다. 이렇게 볼 때 북핵을 협상을 통해 해결하기 어렵다는 판단은 비관적이지만 현실적이라 두려움을 떨치기 어렵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을 갖기보다 오히려 현실을 직시하는 용기를 발휘해 사즉생(死卽生)의 결의로 대처한다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다수의 발표자가 권고했듯 미국과의 동맹관계를 굳게 유지하는 것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는 4·15 총선의 승리를 발판 삼아 남북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려 할지 모른다. ‘연방’은 아니라 해도 ‘국가연합’을 향한 어떤 움직임을 구상하고 있을 수도 있다. 발표자 가운데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은 “지금은 통일을 말할 때가 아니며 남북 평화 공존을 구현할 때”라고 했다. 아주 적절한 지적이라고 본다.
이제까지 북한이 보여준 것은 ‘속임수의 정치’였다고 대다수 발표자는 지적했다. 북핵을 다룰 때 잊지 말아야 할 교훈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