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0년 전 고대 그리스의 소피스트들은 ‘인간이 만물의 척도(尺度)’라고 주장했다. 말인즉슨, 모든 사람에게 적용될 수 있는 객관적 진리란 존재할 수 없으며, 각자가 판단하기 나름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좋고 나쁨이나 옳고 그름이라는 것도 사람마다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이러한 인식론을 광정(匡正)하기 위해 분투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한국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문자’ 중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기회만 되면 이것을 읊어가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러면서 ‘말 따로 행동 따로’라고, 자신들도 그런 ‘불륜’을 아무 부끄럼 없이 해댄다. 다수당의 국회 날치기 통과를 소리 높여 비난하던 정당이 어느 순간 그런 폭거를 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지난 주 야당이 교원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3년 전 수의 우세를 앞세워 표결을 강행했던 여당이 ‘의회 독재’라며 여론몰이를 시도하는 것도 국민 눈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짓이다. 소피스트가 시도 때도 없이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따지자면 교원 정년을 별안간 3년씩이나 단축시킨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교육 개혁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런 극약처방이 난마같이 얽힌 현안들의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전혀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현실에 바탕을 둔 접근이 전제되지 않은 설익은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더구나 ‘교육’ 아닌가. 5000만 국민 전부가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는가. 돌팔이 의사가 함부로 칼을 들이대듯, 연습장에 기분 내키는 대로 낙서하듯, 개혁을 앞세워 그렇게 쉽사리 덤벼들 일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로 머리를 맞대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추진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성사시켜야 한다. 교육을 정치 게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교육 문제만은 권력 다툼의 장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위는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교원 정년 연장 문제를 철저하게 정치적인 계산 아래 밀어붙인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 정년을 63세로 늘리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처리는 ‘교육적’이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주장한다. 정치 논리에 교육이 희생됐다고 역설한다. 그러면 자신들은 얼마나 심각한 고민 끝에 표결을 강행하였는가?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에 흠집을 내고, 자민련과의 선택적 공조를 실험해 보고, 그리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겠다는 정략적 암수(暗數)의 산물이라는 비판에 대해 얼마나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
교원 정년 연장 용납 못해… ‘권력’ 제대로 사용해야
국민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거야(巨野), 심지어 ‘집권 야당’으로까지 불리는 한나라당이 교육을 포함한 국가 경영 전반에 관해 도대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배경이 이질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까닭에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집권 후 제시할 국정 개혁의 청사진을 다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밤새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 형국인데,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猝富)가 어디다 돈을 써야 할지 몰라 허둥대듯, 권력의 맛에 도취된 나머지 ‘깨춤’ 추듯 해서야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요술반지가 있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소피스트들은 ‘여자를 취하고 권력을 잡아 한 세상 즐겁게 사는 것 이상 더 좋은 것이 무엇 있겠느냐’고 흰소리를 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역사는 플라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 모처럼 다가온 권력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한국 정치인들이 애용하는 ‘문자’ 중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말이 있다. 기회만 되면 이것을 읊어가며 상대방을 공격한다. 그러면서 ‘말 따로 행동 따로’라고, 자신들도 그런 ‘불륜’을 아무 부끄럼 없이 해댄다. 다수당의 국회 날치기 통과를 소리 높여 비난하던 정당이 어느 순간 그런 폭거를 자행하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궤변을 늘어놓는 것이 대표적인 예가 될 것이다. 지난 주 야당이 교원정년을 연장하는 법안을 통과시키자, 3년 전 수의 우세를 앞세워 표결을 강행했던 여당이 ‘의회 독재’라며 여론몰이를 시도하는 것도 국민 눈에는 우습기 짝이 없는 짓이다. 소피스트가 시도 때도 없이 부활하고 있는 셈이다.
굳이 따지자면 교원 정년을 별안간 3년씩이나 단축시킨 것은 옳지 않은 일이다. 교육 개혁이라는 거창한 명분을 내세웠지만, 그런 극약처방이 난마같이 얽힌 현안들의 해결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전혀 믿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의 본질에 대한 진지한 고민과 현실에 바탕을 둔 접근이 전제되지 않은 설익은 개혁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더구나 ‘교육’ 아닌가. 5000만 국민 전부가 이 문제로 얼마나 심각한 상처를 받고 있는가. 돌팔이 의사가 함부로 칼을 들이대듯, 연습장에 기분 내키는 대로 낙서하듯, 개혁을 앞세워 그렇게 쉽사리 덤벼들 일은 절대 아니다. 적어도 교육 문제에 관한 한 여야가 따로 있을 수 없다. 서로 머리를 맞대서 정권이 바뀌더라도 변함없이 추진할 수 있는 장기 계획을 성사시켜야 한다. 교육을 정치 게임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다른 것은 몰라도 적어도 교육 문제만은 권력 다툼의 장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그런 행위는 국민의 이름으로 응징받아야 마땅하다.
따라서 한나라당이 교원 정년 연장 문제를 철저하게 정치적인 계산 아래 밀어붙인 처사는 용납할 수 없다. 정년을 63세로 늘리는 문제 자체에 대해서는 얼마든지 논의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정치적 처리는 ‘교육적’이어야 한다. 한나라당은 여당이 처음부터 단추를 잘못 꿰었다고 주장한다. 정치 논리에 교육이 희생됐다고 역설한다. 그러면 자신들은 얼마나 심각한 고민 끝에 표결을 강행하였는가? 김대중 정권의 개혁정책에 흠집을 내고, 자민련과의 선택적 공조를 실험해 보고, 그리하여 정국의 주도권을 확실하게 틀어쥐겠다는 정략적 암수(暗數)의 산물이라는 비판에 대해 얼마나 떳떳하게 대응할 수 있는가?
교원 정년 연장 용납 못해… ‘권력’ 제대로 사용해야
국민들은 걱정이 태산 같다. 거야(巨野), 심지어 ‘집권 야당’으로까지 불리는 한나라당이 교육을 포함한 국가 경영 전반에 관해 도대체 어떤 비전을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생각과 배경이 이질적인 인사들로 구성된 까닭에 내년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를 거둘 경우 산으로 갈지 바다로 갈지 가늠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한나라당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라도 집권 후 제시할 국정 개혁의 청사진을 다듬는 일에 총력을 기울여야 한다. 밤새워 매달려도 시간이 모자랄 형국인데, 하루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졸부(猝富)가 어디다 돈을 써야 할지 몰라 허둥대듯, 권력의 맛에 도취된 나머지 ‘깨춤’ 추듯 해서야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드는 요술반지가 있다면 무엇을 먼저 할 것인가? 소피스트들은 ‘여자를 취하고 권력을 잡아 한 세상 즐겁게 사는 것 이상 더 좋은 것이 무엇 있겠느냐’고 흰소리를 했다. 그러나 플라톤은 그런 식으로 세상을 살면 재앙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엄중 경고했다. 역사는 플라톤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한나라당은 조신하게 행동해야 한다. 모처럼 다가온 권력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마음은 언제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