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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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 이용한 보조기구 개발 장애인에 자유 주는 꿈을 꿔요

연세대 스티븐 호킹 신형진 씨 “갇힌 몸이지만 사랑도, 결혼도 하고 싶죠”

  • 박훈상 기자 tigermask@donga.com

    입력2011-03-14 11:4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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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T 이용한 보조기구 개발 장애인에 자유 주는 꿈을 꿔요

    청중은 신형진 씨의 눈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그의 이야기에 깊이 빠졌다.

    “드디어 오늘로 9년여에 걸친 모든 대학수업이 끝났다. 이제 남은 것은 내일부터 시작되는 기말시험과 다음 주에 있을 플젝 발표뿐. 더 이상 강의실에서 수업 들을 일이 없을 거라 생각하니 좀 아쉬운 마음이 든다. (이 녀석~! 9년씩이나 다녔으면 됐지!!! 퍽~!)” 12월 14일 트위트 @jayuloy

    9년 만의 졸업은 시원섭섭했다. ‘연세대 스티븐 호킹’으로 알려진 신형진(28) 씨가 연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했다. 신씨는 신생아 때 척추성 근위축증에 걸려 목 아래를 쓰지 못한다. 척추성 근위축증, 일명 근육병에 걸리면 온몸의 근육이 천천히 마비되고 말라붙어 힘이 빠진다. 폐에 힘이 빠져 목소리는 입 가까이 귀를 대야 들릴 정도로 작다. 가능한 것은 오직 눈 깜빡임뿐이다.

    호킹을 만든 교육의 힘

    2002년 대학에 합격한 뒤 그는 어머니 이원옥(62) 씨의 도움을 받아 학교를 다녔다. 어머니는 개조한 9인승 승합차에 아들을 태워 매일 등교시켰고, 늘 강의실 문밖에서 산소호흡기를 들고 대기했다. 목 아래가 마비된 탓에 시험을 보거나 과제를 할 때는 안구 마우스를 사용했지만 전공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다. 학교 축제도 즐기고 동아리, 과 MT를 다녀올 정도로 활발하게 생활했다.

    신체적 한계를 이겨낸 신씨의 졸업은 대학뿐 아니라 전국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정작 그의 실제 ‘목소리’는 찾기 힘들었다. 기존 언론에 나온 인터뷰는 어머니 이씨가 몸이 불편한 신씨를 대신한 것들.



    신씨의 육성을 듣기 위해 이틀간 메신저와 e메일로 대화를 나누었고, 3일째인 3월 10일 서울 강남구 포스코빌딩 마이크로소프트사 강연에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그는 안구 마우스를 노트북에 연결해 눈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텍스트는 음성전환 소프트웨어를 이용해 컴퓨터 음성으로 읽었다.

    “제 목소리가 너무 작아서 어쩔 수 없이 컴퓨터 음성으로 발표하게 됐어요. 혹시 제 목소리를 듣고 싶으신 분은 강연 끝나고 개인적으로 찾아와주세요.”

    겸손함과 유머로 청중을 긴 시간 동안 즐겁게 한 이번 강연에서 그는 교육의 힘을 유독 강조했다. 신씨의 부모도 병원에서 아들이 오래 살지 못할 것이란 말을 듣고 초등학교 입학 때까지 한글을 가르치지 않았다. 이 탓에 신입생 때는 자신만 한글을 몰라 당황하기도 했다. 그러나 곧 한글을 익힌 그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건강이 나빠져 병원에 장기 입원하거나 수업 도중 숨이 막혀 죽을 뻔한 고비도 넘겼지만 공부를 포기하지 않았다. 어머니 이씨가 신씨를 업고 등교할 때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이 “왜 그렇게까지 고생하면서 학교에 보내느냐”였다. 사실 기자도 그게 궁금했다. 같은 질문을 또 던졌다.

    “아는 만큼 보입니다. 교육을 받아야 여러 가지 기회가 오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기회가 꼭 취업을 뜻하지는 않아요. 공부를 해 대학에 왔고 여기서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재택근무지만 아르바이트도 했어요. 공부를 안 하고 집에만 있었다면 이런 기회가 안 생겼을 겁니다.”

    교육은 꿈을 키워주었지만 다른 사람을 만나는 기회도 됐다. 그는 강연에서 “공부하고 싶은 마음도 컸지만 더 큰 이유는 사람을 만나고 싶었다. 또래와 이야기 나누고 좋은 선생님을 만나는 것이 인생의 가장 큰 즐거움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밖으로 자유롭게 돌아다니지 못하기에 인터넷을 통해 사람들과 교류를 늘렸다.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인터넷메신저, 미니홈피 등 하지 않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없을 정도. 근육병에 걸린 친구들과도 SNS로 자주 만나 힘들거나 괴로울 때 서로 위로하고 격려한다.

    신씨의 SNS를 살펴보기 전에는 그가 진지하게 책만 읽는 학자 타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다른 면도 많다. 친구들과 같이 새로운 만화 출간 날짜를 목이 빠져라 기다리고 재미있게 본 미국 드라마와 예능 프로그램에 대한 감상을 남긴다. SNS 프로필 사진은 만화 주인공 ‘코난’이다. 여자 아이돌 그룹 카라의 해체설이 터졌을 때는 ‘Orz(좌절, 절망을 뜻하는 이모티콘)’까지 써가며 안타까워했다. 그는 솔로 부대가 커플에게 보내는 저주(?)가 담긴 그림도 자신의 SNS에 옮겨두었다. 연애는 그에게 “호기심은 많이 가나 경험해보지 못한 영역”이다.

    “일어나라 솔로부대! 하하. 항상 어머니가 곁에 계시니 여성들이 접근하기 힘들겠죠. 그래서 그런 것이라 믿습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다가가기 힘들어 짝사랑만 몇 번 했어요. 게다가 성공한다고 해도 둘만 만나기 어렵잖아요. 늘 제 옆에는 어머니나 활동 보조인이 있어야 하니까요. 상대방에게도 부담이 되겠죠. 나중에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이런 것 저런 것 상관없을 거예요.”

    하지만 늘 그의 곁에는 어머니가 있다. 벗어나고 싶을 때는 없을까?

    “복잡한 감정이에요. 정말 늘 감사하죠. 저 때문에 고생하시니 어떻게든지 자립하고 싶어요. 하지만 어머니께 사생활이 공개되니 곤란할 때도 있어요. 그렇다고 어머니가 안 계시면 위험하니….”

    우리는 흔히 근육병 환자를 두고 ‘갇힌 몸’이란 표현을 쓴다. 신씨는 “손가락 하나도 못 움직이는 신세지만 세상엔 저보다 훨씬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이 많아요. 물론 저도 답답할 때가 있지만 비장애인도 답답할 때가 있기는 마찬가지 아닐까요. 원망할 수도 없고 저주를 퍼부을 수도 없고. 하하.”

    근육병 환자의 근육은 갈수록 힘이 빠진다. 폐를 움직이는 근육과 눈 근육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어렵게 물었다. 안구 마우스도 사용이 불가능해지면 어떻게 살 것인가?

    “저도 가끔 그 생각을 합니다. 만약 근육병이 더 악화돼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할까? 예전에 26개월 동안 병원생활을 할 때 호흡곤란 때문에 기관지 절개를 해 말도 할 수 없었고 병실이라 컴퓨터도 할 수 없었어요. 정말 의식만 깨어 있는 식물인간이 된 기분이었어요. 하지만 돌파구는 있었어요. 자음과 모음을 적어둔 글자판을 상대방이 하나씩 가리키면 눈을 깜빡이는 방법으로 글자를 만들어 대화를 할 수 있었습니다. 원하기만 하면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거예요.”

    애를 써서 숨 쉬다

    건강한 사람은 그냥 숨을 쉬며 살지만 그는 호흡에 관계된 근육의 힘이 약하기 때문에 매순간 힘을 들여 숨을 쉰다. 성경 말씀이 그에게 용기를 준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장 7절)

    졸업으로 그는 새 문을 열었다. 아직 정해진 일터는 없다. 신씨는 “컴퓨터 전공을 살려 일해보고 싶다. 하지만 중증 장애인이 한국에서 기업에 취업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한국 사회에 대한 당부도 잊지 않았다.

    “장애인도 충분한 교육을 받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근육병 환자가 지적 장애가 있는 것도 아닌데 대학은커녕 초등학교도 제대로 못 마칩니다. 가정 형편도 어렵지만 국가가 제대로 지원해주지 않기 때문이에요. 그 밑바탕에는 장애인은 고생해서 공부하느니 그냥 집에서 편히 쉬는 게 낫다는 인식이 깔려 있어요.”

    신씨의 꿈은 IT를 이용한 보조기구를 개발해 장애인이 신체적인 장애를 넘어 자유를 얻는 데 도움을 주는 것이다. 그는 ‘한국의 스티븐 호킹’이란 별칭이 “너무 과장된 것 같아 솔직히 부담스럽다”고 말했지만, 꿈을 이루기까지 먼 길을 갈 준비는 충분히 돼 있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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