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가 정통성과 존엄성을 갖기 위해서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희생한 선열들을 제대로 예우하고 그 후손들이 조상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느끼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경향신문’과 ‘민족문제연구소’가 공동 조사한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독립유공자 후손의 10명 중 6명은 고졸 이하 학력의 무직자로서 가난에 시달리며 살고 있다. “독립운동을 하면 3대가 망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닌 것이다. 친일파는 해방 뒤에도 권력과 부를 독차지했으며 그 후손들마저 여태까지 떵떵거리며 살고 있다. 반면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가난과 냉대 속에서 고통받고 있으니 이를 과연 제대로 된 나라라고 할 수 있을까.
독립유공자 자녀 가운데 그나마 직업이 있는 이들도 농업 종사자가 가장 많다.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들은 가족의 생계나 교육을 포기한 채 자신의 재산을 바치고 직업을 버리면서까지 오직 조국 광복에 몸을 던졌다. 일본이 실시한 창씨개명을 거부한 까닭에 자식을 호적에 올리지 못한 이들도 있고, 그로 인해 자녀가 초등학교에조차 입학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희생과 애국정신이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고 조국 광복의 기틀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고귀한 선열의 뜻 이어야 국가 정통성 바로 서
그러나 그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마치 극빈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쥐꼬리만한 보상금과 자녀의 대학입학 특전 등이 전부다. 이는 유공자 후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대한 냉소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광복 이후 독재정권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한 채 친일세력을 정권의 요직에 등용했다.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심사하고 포상하는 일조차 친일세력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귀국에 소극적인 것은 이 나라가 독립운동가 후손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해외 망명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하지 못한 애국지사 및 그 후손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나마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레 살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직접 독립유공자 조사 및 실태 파악에 나서지 않고, 본인이나 후손의 신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주원인이다. 독립유공자 및 후손이 직접 독립활동 관련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아예 국적을 포기하고 마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89년 시작한 정부의 독립유공자 영구귀국 사업에 따라 2003년 3월까지 귀국한 독립유공자 가족은 55세대 227명뿐이다. 또 해외 거주 유공자 후손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 등 국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유공자 후손들의 생활이 가장 비참한 것으로 조사됐다.
얼마 전 불법 취업을 이유로 강제 추방을 앞둔 한 조선족 동포가 우리를 향해 한 절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데, 대한민국이 나를 버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유공자들의 후손들이 고국에 대해 느끼는 ‘배반감’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 후손이 고국에 와서 그냥 손을 벌리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는 시중에서 이런 말을 쉽게 듣는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잘사는 거 봤나?”
“못 봤다.”
“매국노 후손이 못사는 것 봤나?”
“못 봤다.”
프랑스는 나치 정권에 부역한 사람들을 지금도 잡아들여 처벌하고 있고, 레지스탕스(프랑스 지하 독립운동조직) 운동 등에 몸담았던 이들의 후손을 지극히 예우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프랑스가 세계적 선진국이며 국가의 자존심이 높은 이유다. 지금도 해마다 수천명의 주부가 ‘원정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가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 호주 등지로 이민을 가는 꿈을 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 정통성과 자존심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 그 한 이유일 게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 애국 국민은 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독립유공자들의 뜻을 바르게 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와 발자취를 찾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후손들에게도 길이 남길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자긍심과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
독립유공자 자녀 가운데 그나마 직업이 있는 이들도 농업 종사자가 가장 많다. 제대로 교육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독립유공자들은 가족의 생계나 교육을 포기한 채 자신의 재산을 바치고 직업을 버리면서까지 오직 조국 광복에 몸을 던졌다. 일본이 실시한 창씨개명을 거부한 까닭에 자식을 호적에 올리지 못한 이들도 있고, 그로 인해 자녀가 초등학교에조차 입학하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그런 희생과 애국정신이 대한민국의 뿌리가 되고 조국 광복의 기틀이 되었음은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고귀한 선열의 뜻 이어야 국가 정통성 바로 서
그러나 그런 독립유공자들에 대한 국가의 보상은 마치 극빈자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쥐꼬리만한 보상금과 자녀의 대학입학 특전 등이 전부다. 이는 유공자 후손들의 자긍심을 높여주기는커녕, 오히려 사회에 대한 냉소만 불러일으키고 있다.
광복 이후 독재정권은 독립운동가들을 배제한 채 친일세력을 정권의 요직에 등용했다. 독립운동가의 행적을 심사하고 포상하는 일조차 친일세력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다. 정부가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독립운동가 후손의 귀국에 소극적인 것은 이 나라가 독립운동가 후손을 어떻게 대접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해외 망명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귀국하지 못한 애국지사 및 그 후손들의 삶은 참으로 비참하다. 그나마의 보상도 받지 못한 채 고통스레 살고 있다. 이는 정부가 직접 독립유공자 조사 및 실태 파악에 나서지 않고, 본인이나 후손의 신청에 의존하고 있는 것이 주원인이다. 독립유공자 및 후손이 직접 독립활동 관련 자료를 찾기도 쉽지 않거니와 비용 또한 만만치 않아 아예 국적을 포기하고 마는 사례도 적지 않다.
1989년 시작한 정부의 독립유공자 영구귀국 사업에 따라 2003년 3월까지 귀국한 독립유공자 가족은 55세대 227명뿐이다. 또 해외 거주 유공자 후손들은 한국 국적이 아니라는 이유로 연금 등 국가의 혜택을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만주를 중심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던 유공자 후손들의 생활이 가장 비참한 것으로 조사됐다.
얼마 전 불법 취업을 이유로 강제 추방을 앞둔 한 조선족 동포가 우리를 향해 한 절규가 아직도 귀에 생생하다.
“나는 독립운동가의 후손인데, 대한민국이 나를 버리면 나는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
만주지역에서 독립운동에 나섰던 유공자들의 후손들이 고국에 대해 느끼는 ‘배반감’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하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그 후손이 고국에 와서 그냥 손을 벌리는 것도 아니고 정당하게 일해서 돈을 벌겠다고 하는데 우리는 그마저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우리는 시중에서 이런 말을 쉽게 듣는다.
“독립유공자 후손이 잘사는 거 봤나?”
“못 봤다.”
“매국노 후손이 못사는 것 봤나?”
“못 봤다.”
프랑스는 나치 정권에 부역한 사람들을 지금도 잡아들여 처벌하고 있고, 레지스탕스(프랑스 지하 독립운동조직) 운동 등에 몸담았던 이들의 후손을 지극히 예우하고 있다. 이런 정신이야말로 프랑스가 세계적 선진국이며 국가의 자존심이 높은 이유다. 지금도 해마다 수천명의 주부가 ‘원정 출산’을 위해 미국으로 가고, 경제적 여유가 있는 사람들 중에는 미국 호주 등지로 이민을 가는 꿈을 꾸는 이들이 적지 않다. 국가 정통성과 자존심을 살려내지 못한 것이 그 한 이유일 게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 애국 국민은 이 나라를 위해 몸과 마음을 바친 독립유공자들의 뜻을 바르게 이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독립운동가에 관한 자료와 발자취를 찾기 위한 정부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며, 이를 후손들에게도 길이 남길 수 있도록 법과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조국 광복을 위해 애쓴 독립운동가의 후손들이 자긍심과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