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 운동의 ‘대부’에서 정치가로 변모한 민주당 서영훈대표가 취임한지 100일을 넘겼다. 지난 1월20일 창당된 민주당의 얼굴을 맡아 16대 총선을 치른 서대표에 대한 정치권 안팎의 평가는 양론이 교차한다. ‘참신한 이미지’의 서대표가 간판으로 기용됨으로써 민주당이 개혁 정당으로 자리잡을 수 있었다는 긍정론과, 당내 실세 그룹에 밀려서 ‘허세 대표’로 지낸다는 비판론이 맞서 있다.
양쪽 시각 중 어느 쪽이 옳다고 한 마디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정치 아마추어가 권력투쟁과 음모가 꿈틀대는 정치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처신과 생존은 쉽지 않게 마련이다. 당초 생각대로 힘을 쓰기도 어렵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프로 정치판’ 생존투쟁서 살아남아
정당판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란 상대하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치인 서영훈’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런 측면을 고려해서 공과를 매겨야 하는 게 순리다. 성공한 시민운동가라는 프리미엄을 인정해줄지 여부는 또다른 사안이다.
따라서 ‘서영훈 대표론’은 그의 정치권 진입 이유에서 논의를 출발시켜야 한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기꺼이 자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역할의 성공적 수행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대표는 5월6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권 진입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 국민이 정치권과 정치문화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했었다. 당대 당의 지나친 대결, 권력 싸움, 후진적 선거 문화, 음해와 중상모략이 판을 치는 정치 풍토 등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을 고치는데 미력이나마 보태 기여하기를 바라서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주장해온 세력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반세기만에 정권 교체까지 이뤄냈다. 그런 정당의 정당성과 정통성마저 부인당하고 있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러던 참에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했다.”
서대표가 강조한 입당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문화의 변혁에 앞장서겠다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민주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대표적 정치세력임을 인정받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서대표의 설명대로라면 그의 정치권 진출은 비교적 성공작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정쟁 지양을 강조해왔고 실제로 여야간의 소모적 정치공세는 상당 폭 줄어가는 듯한 추세다. 물론 이런 추세를 모두 그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여-야정당의 자구책이라는 측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집권당의 수장으로서 분위기를 조성해나간 것은 사실이다.
서대표가 지향했던 두번째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확실하게 ‘개혁정당’의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대변해왔던 정치 세력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인정받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서대표가 민주당 내에서 실세냐 허세냐는 식의 논란은 다소 무의미해진다. 그가 당초 입당한 목표가 ‘권력 장악’에 있지 않는 한 파워 게임에 토대를 둔 잣대는 들이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당내 파워 게임에 독특한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 당에는 30, 40년씩 투쟁하다가 감옥살이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고 당원들과도 친하다. 총재도 따로 있다. 여기에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자유당, 공화당시절부터 고생하던 사람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정체성이다. 더욱이 당헌상 모두 총재가 임명하게 돼 있다. 이만하면 총재(김대중대통령)하고 사이도 괜찮다. 나는 총재 대행일 뿐이다. 밑에 실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그들이) 월권은 하지 않는다. 나는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당내 파워 게임에 관한 한 자신은 거리두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당내 핵심그룹인 동교동계 등의 기득권과 영향력은 명분있는 ‘현실’로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논법이다.
그렇다면 서대표는 명분의 정치에 힘을 쏟을 뿐이고 파워 게임에는 시종 초연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아닌 듯싶다. 적어도 ‘허약한 대표’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4·13총선’ 직후 서대표는 일부 기자들이 여권 핵심 관계자의 ‘소폭 당정개편’ 발언에 대해 질문하자 “아니다. 내가 김대통령을 만나서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그랬다. 그 사람이 뭘 알겠느냐”고 자신있게 부인했다. 소폭 당정개편은 정말 단행되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도 서대표가 김대통령과 ‘깊숙한 교감’을 갖는 관계임이 확인됐다. 서대표는 4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안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며 “베이징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총선이 끝나면 정부가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대표의 발언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부적절한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며칠 뒤에 ‘진실’임이 확인됐다. 김대통령이나 여권 핵심인사가 극비사항인 ‘남북정상회담’ 성사 사실을 그에게 사전 통보해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대표를 둘러싸고 ‘허세 대표’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가 여권내 정보채널에서 소외됐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주요 정보가 즉각 그에게 보고되지 않고 소수 실세 그룹 사이에서만 유통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그는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서대표에게는 이제 4개월여의 잔여 임기가 남아 있다. 김대통령은 오는 9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중 한명을 대표로 지명할 방침이다. 서대표 본인도 “내 임기는 9월 전당대회 전까지다”고 밝혔다. 그는 남은 임기에도 그 간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김대통령의 집권 중반기 개혁 추진을 뒷받침하는 명분의 정치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했다.
“개혁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세력이 많은 것이 하나의 극복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의견도 민의이므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나의 당 장악력 문제도 초연하게 대처하겠다. 남처럼 튀면서 신문에 오르내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계파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당 생활을 한 사람들이 활약을 많이 하고 당권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당내 민주화를 위해) 좋은 것 아니냐.”
양쪽 시각 중 어느 쪽이 옳다고 한 마디로 결론 내리기는 어렵다. 정치 아마추어가 권력투쟁과 음모가 꿈틀대는 정치판에 들어가게 되면 그 처신과 생존은 쉽지 않게 마련이다. 당초 생각대로 힘을 쓰기도 어렵고 이상과 현실 사이의 심각한 괴리를 절감할 수밖에 없다.
‘프로 정치판’ 생존투쟁서 살아남아
정당판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들이란 상대하기도 호락호락하지 않다. ‘정치인 서영훈’에 대한 객관적 평가는 이런 측면을 고려해서 공과를 매겨야 하는 게 순리다. 성공한 시민운동가라는 프리미엄을 인정해줄지 여부는 또다른 사안이다.
따라서 ‘서영훈 대표론’은 그의 정치권 진입 이유에서 논의를 출발시켜야 한다. 집권 여당의 대표를 기꺼이 자임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따라 역할의 성공적 수행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서대표는 5월6일 기자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치권 진입의 변을 이렇게 밝혔다. “우리 국민이 정치권과 정치문화에 대해서 염증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항상 고민했었다. 당대 당의 지나친 대결, 권력 싸움, 후진적 선거 문화, 음해와 중상모략이 판을 치는 정치 풍토 등이 그 원인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 것들을 고치는데 미력이나마 보태 기여하기를 바라서 민주당에 입당한 것이다. 특히 민주당은 역대 권위주의 정권에 맞서 민주주의라는 보편적 가치를 주장해온 세력들이 주도하는 정당이다. 국민의 선택에 의해 반세기만에 정권 교체까지 이뤄냈다. 그런 정당의 정당성과 정통성마저 부인당하고 있어 이래서는 안되겠다 싶었다. 그러던 참에 도와달라고 해서 참여했다.”
서대표가 강조한 입당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정치문화의 변혁에 앞장서겠다는 것이고, 또다른 하나는 민주당이야말로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한 대표적 정치세력임을 인정받도록 하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서대표의 설명대로라면 그의 정치권 진출은 비교적 성공작이었다는 평가가 가능하다. 그는 취임 이후 줄곧 정쟁 지양을 강조해왔고 실제로 여야간의 소모적 정치공세는 상당 폭 줄어가는 듯한 추세다. 물론 이런 추세를 모두 그의 공으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정치의 부정적인 측면에 대한 국민적 비판 여론을 의식한 여-야정당의 자구책이라는 측면도 적지 않다. 하지만 그가 집권당의 수장으로서 분위기를 조성해나간 것은 사실이다.
서대표가 지향했던 두번째 목표도 어느 정도 달성됐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이 이번 총선에서 확실하게 ‘개혁정당’의 입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민주주의를 대변해왔던 정치 세력이라는 점을 국민에게 인정받는데 성공한 셈이다.
이렇게 보면 서대표가 민주당 내에서 실세냐 허세냐는 식의 논란은 다소 무의미해진다. 그가 당초 입당한 목표가 ‘권력 장악’에 있지 않는 한 파워 게임에 토대를 둔 잣대는 들이댈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서대표는 인터뷰를 통해 당내 파워 게임에 독특한 견해를 피력했다. “우리 당에는 30, 40년씩 투쟁하다가 감옥살이하던 사람들이 살아 있고 당원들과도 친하다. 총재도 따로 있다. 여기에는 오랜 투쟁의 역사가 있는 것이다. 자유당, 공화당시절부터 고생하던 사람들이 중요한 위치에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역사적 정체성이다. 더욱이 당헌상 모두 총재가 임명하게 돼 있다. 이만하면 총재(김대중대통령)하고 사이도 괜찮다. 나는 총재 대행일 뿐이다. 밑에 실세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그들이) 월권은 하지 않는다. 나는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는 게 중요하다.” 당내 파워 게임에 관한 한 자신은 거리두기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는 뉘앙스다. 당내 핵심그룹인 동교동계 등의 기득권과 영향력은 명분있는 ‘현실’로서 인정해 줘야 한다는 논법이다.
그렇다면 서대표는 명분의 정치에 힘을 쏟을 뿐이고 파워 게임에는 시종 초연한 것일까. 반드시 그렇지만은 아닌 듯싶다. 적어도 ‘허약한 대표’라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은 분위기다. ‘4·13총선’ 직후 서대표는 일부 기자들이 여권 핵심 관계자의 ‘소폭 당정개편’ 발언에 대해 질문하자 “아니다. 내가 김대통령을 만나서 물어봤는데 아니라고 그랬다. 그 사람이 뭘 알겠느냐”고 자신있게 부인했다. 소폭 당정개편은 정말 단행되지 않았다.
남북정상회담 성사 과정에서도 서대표가 김대통령과 ‘깊숙한 교감’을 갖는 관계임이 확인됐다. 서대표는 4월2일 기자간담회에서 “올해안에 남북정상회담이 가능할 것”이라며 “베이징에서 만나는 것으로 알고 있고 총선이 끝나면 정부가 발표할 것”이라고 밝혔다. 당시 서대표의 발언은 총선을 앞둔 시점에서 부적절한 태도라는 비판을 받았으나 며칠 뒤에 ‘진실’임이 확인됐다. 김대통령이나 여권 핵심인사가 극비사항인 ‘남북정상회담’ 성사 사실을 그에게 사전 통보해줬다는 추론이 가능하다.
서대표를 둘러싸고 ‘허세 대표’얘기가 나오는 것은 그가 여권내 정보채널에서 소외됐다는 가설에 근거한다. 주요 정보가 즉각 그에게 보고되지 않고 소수 실세 그룹 사이에서만 유통된다는 지적이다. 그러나 그런 지적이 제기될 때마다 그는 “나는 간단한 사람이 아니다”고 강조한다.
서대표에게는 이제 4개월여의 잔여 임기가 남아 있다. 김대통령은 오는 9월 전당대회에서 선출된 최고위원 중 한명을 대표로 지명할 방침이다. 서대표 본인도 “내 임기는 9월 전당대회 전까지다”고 밝혔다. 그는 남은 임기에도 그 간의 스타일을 바꿀 생각은 없는 것 같다. 김대통령의 집권 중반기 개혁 추진을 뒷받침하는 명분의 정치에 전념하겠다는 입장이 분명했다.
“개혁에 대해 불안감을 느끼는 세력이 많은 것이 하나의 극복 과제가 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의견도 민의이므로 대화와 설득을 통해 풀어나가야 한다. 나의 당 장악력 문제도 초연하게 대처하겠다. 남처럼 튀면서 신문에 오르내리기를 바라지 않는다. 계파라는 게 있는지 없는지 모르지만 오랫동안 당 생활을 한 사람들이 활약을 많이 하고 당권 경쟁하는 사람들이 많으면 (당내 민주화를 위해) 좋은 것 아니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