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 살배기 태석이 놈은 수선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온 집안을 휘저어 놓는가 하면 어린 동생들을 올라타고 쥐어박고 밀치곤 한다. 작은엄마나 제 어미한테 그렇게 눈치를 먹어도 막무가내다. 감정을 숨기지 않고 행동하는 이런 짓거리가 보기에 참 좋다.
태석이를 데리고 슈퍼에 간다. 과자를 한 봉지 담고 골목길을 들어선다.
“할아버지 다리 아파” 하고 주저앉는 고놈을 등에 업는다. 제 몸을 내 등짝에 찰싹 붙이고는 양다리를 까불면서 양볼을 부벼댄다. “누구 손자?”
“강아지 손자” 하고는 깔깔 웃어댄다.
“이놈 내려라” 하면 “할아버지 손자” 한다. “귀여운 내 손자” 엉덩짝을 두드려주다 보면 어느덧 대문 앞에 선다. 팔이 뻐근하고 숨이 차도 내려놓기가 싫다.
나는 태석이가 되어 옛날 내 할아버지 등에 업혀 슈퍼에 다녀오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그 순간이 어떤지를 모른다. 상상이 되지 않는다. 내가 태어나기도 전 할아버지 내외분은 돌아가셨다. 막내로 태어난 나는 열세살적에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라는 이름들이 모여 나에겐 눈물이 된다. 아니 바다가 되었다.
일요일이 오면 태석이 손을 잡고 슈퍼에 가는 뜻은 고놈을 내 등에 엎기 위해서, 내가 손자가 되어, 막내아들이 되어, 할아버지 아버지 등짝에 엎혀서 양다리를 까불어 보는 환상에 빠지기 위해서인지도 모른다.
일요일이 가고 나면 적적함과 외로움이 본래대로 제자리를 잡는다.
그러나 일요일이 다시 오면 내 주름진 양볼에는 행복이 충만한 미소로 볼그스레 물이 든다. 일요일이 오면 난 부자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