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1일 서울 양재동 aT센터에서 열린 ‘2018 A팜쇼’에서 이낙연 국무총리(맨 앞)가 가상의 ‘농업 드론’을 조종하고 있다. [동아일보 최혁중 기자]
대학 퇴직 후 협회 부회장을 맡았다.
“2015년 9월 협회 창립 당시 ‘우리도 드론을 개발하자’고 해 참여했는데, 이듬해 부회장 자리를 맡게 됐다. 업체들이 협회를 이끌면 자사 이기주의에 빠질 수 있으니 중간자, 공적 역할을 할 사람이 필요했던 거 같다.”
협회에서 공적 역할은 어떤 게 있나.
“나는 한국 드론이 나아갈 방향을 안전성에서 찾는다. 협회사의 드론 매출 상승이 아니라 안전성을 통해 전체 드론시장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교수 시절부터 항공우주 드론에 대한 국가 표준이 필요하다고 인식했고, 이후 국가기술표준원과 무인기 국가 표준화 작업을 시작했다. 사실 표준화 작업은 돈은 안 되는데 해야 할 일과 까다로운 요구가 많아 누구도 나서지 않는 작업이다.(웃음) 몇몇 교수나 전문가에게 참여하라고 했더니 손사래를 치더라. 그래도 설득해 여러 전문가와 표준을 만들고 있다. 동시에 산업인력양성 교육과정도 개설해 현장 전문가를 키우고 있다.”
국내 드론 표준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뭔가.
“드론이 신산업으로 빨리 자리 잡으려면 정확한 기술과 함께 유인기(有人機)급의 안전성이 확보돼야 한다. 우리는 이 안전성에 대해선 간과하고 있다. 생각해보라. 추락 사고로 사람이 다쳤다는 뉴스를 접하면 구매 의욕이 생기겠나. 현재 기술로는 안전성은 턱없이 부족해 이를 담보할 기술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 배터리 기술이 발전하면 비행시간이 길어지는 만큼 사고 피해는 더욱 커질 테니까.”
가이드라인?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드론을 생산할 때 이 정도 기술력은 갖춰야 한다는 표준을 만드는 거다. 예를 들어 하늘에 띄운 드론이 지상 기지와 교신이 안 되면 스스로 이동을 멈추거나 서서히 내려앉도록 설계해야 사고를 막을 수 있다. 제조사가 설계할 때부터 이런 기능을 갖추게 해야 한다. 드론에 쓰이는 용어 규정부터 시스템 디자인, 프로펠러 안전성, 배터리 사용 등에 대한 기준을 만드는 거다. 일부 회사는 표준화 작업을 반대하기도 한다.”
“추락 사고 많으면 드론 사겠나”
[지호영 기자]
“일부 업체는 자신들이 이미 개발한 방식이 있는데 다른 기준을 만들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한국소비자원 자료를 보면 드론 사고율은 40%를 넘고, 배터리나 프로펠러로 인한 상해사고도 잇따르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 있는 거 아닌가. 글로벌 스탠더드 제품을 만들어야 시장은 더욱 커질 테고, 안전사고도 미리 예방할 수 있다. 현재 국제표준화기구(ISO) 정식 회원사로서 국제적인 기술 표준을 만드는 작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그의 말처럼, 한국소비자원은 지난해 7월 소비자 구매 빈도가 높은 취미·레저용 드론 20개 제품을 대상으로 배터리와 본체 안전성을 조사한 결과 8개 제품에서 배터리 폭발 위험성이 감지됐다고 밝혔다. 2015년 1월〜2017년 5월 한국소비자원에 접수된 드론 관련 위해 사례(40건)의 원인으로는 △충돌에 의한 상해(23건) △배터리 폭발·발화(9건) △추락(8건) 순이었다. 한국소비자원은 국가기술표준원에 드론 본체 및 리튬배터리에 대한 안전기준 마련을 건의했다.
드론 등 무인항공기 활용 범위는 군사용을 넘어 재난구조, 교통 관측, 농업, 환경, 물류 등 다양한 분야로 확대되고 있고, 4차 산업혁명의 대명사로 인식된다.
“4차 산업혁명은 말 그대로 혁명이자 패러다임의 변화이지, 산업 형태의 변화로 보면 안 된다. 제조업 분야가 발전하는 게 아니라 전체 산업의 운영 메커니즘이 바뀌는 거다. 19세기 초 영국 산업혁명 당시 수공업자들이 방적기를 파괴하는 러다이트 운동이 일어났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은 혁명을 견디지 못해 혼란기로 들어가는 거다.
4차 산업혁명도 마찬가지다. 우리도 이제 생각을 바꿔 대비해야 혼란을 겪지 않는다.”
‘드론 데이터’가 가져올 4차 산업혁명
6월 24일 KT 관계자들이 강원 원주시 KT그룹 인력개발원에서 드론 등 재난 안전 플랫폼을 활용해 조난자를 구조하는 모습을 시연하고 있다. [동아DB]
“지금까지 우리는 정보를 대부분 지상에서 얻으려 했다. 홍수가 나면 지방자치단체 소속 조사원이 피해 농가에 가 사진을 찍고 피해사실을 조사한 뒤 보상했다. 이때 조사원에 따라 피해 규모를 다르게 산정할 수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이라 오류가 있을 수 있고, 이것이 불필요한 민원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런데 드론을 띄워 촬영하면 센서로 분석해 피해 규모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이런 데이터가 축적되면 홍수에 따른 피해 규모를 예측할 수 있어 ‘프로페셔널 행정’에 적용이 가능하다. 평소 농작물 작황을 데이터화하면 가을 수확량과 농산물 물가를 예측할 수 있다. 작황이 좋으면 농산물 가공 공장을 추가 가동하는 등 미리 대처할 수 있어 애써 키운 농작물을 통째로 갈아엎는 일은 없을 거다. 드론에 분광기(물질이 방출 또는 흡수하는 빛의 스펙트럼을 계측하는 장치)를 달아 지표면을 관측하면 토양 성분을 알 수 있어 어떤 작물이 잘 자라는지 권고할 수도 있다. 바다에서도 어족자원에 대한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고, 해양경찰의 안전도 지킬 수 있다.”
드론으로 어족자원을 확인할 수 있지만 해양경찰은….
“드론을 바다에 띄워 어족자원의 이동 경로를 알면 어획량을 늘릴 수 있다. 이런 걸 생각해보자. 우리 영해를 침범해 조업하는 중국어선을 잡으려고 해양경찰은 목숨 걸고 임무를 수행한다. 이때 카메라 줌 기능을 장착한 드론이 배 이름과 인물을 확인해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전송하면 굳이 해양경찰이 나서 추격하지 않아도 중국 당국이 처벌할 수 있다. 당연히 영해 침범도 줄어들 테고. 이런 해양 감시와 데이터 전송 분야를 민간에 위탁하고 정보 건수별로 비용을 지급한다면 민간 기술이 발전하고 일자리도 창출할 수 있다. 비단 해양경찰뿐이겠나. 농업, 산림업, 수산업 등에서 데이터를 활용하는 분야는 무궁무진하고 이로 인한 패러다임 변화도 일어날 거다. 그러니 국가 데이터센터를 구축해 엄격하게 데이터를 관리하면서 적극 활용해야 한다. 드론산업 진흥을 위해서라도 드론이 바꿀 세계를 이해하고 대비해야 한다.”
정부와 공공기관 등도 소나무 재선충 방재, 국토 측량작업 등 드론을 활용한 다양한 차세대 행정 서비스를 준비 중인데.
“사실 산업 초기에는 공공기관이 나서야 하고 우리 드론도 군과 공공기관이 주로 구매한다. 다만 구매 방식은 개선해야 한다.”
어떻게 말인가.
“현재 정부 부처나 각 지방자치단체는 대당 400만~700만 원짜리 드론을 구매해 재선충 방재 작업이나 산불 및 송전선 감시 등에 활용한다. 저가 입찰을 하니 주로 중국산 드론을 구매하게 되는데, 기술력이 떨어져 사고 발생률이 높다. 송전탑 결함을 촬영하는 드론이 엉뚱하게 인근 비닐하우스에 카메라 초점을 맞추는 등 제품 결함도 빈번하다. 조종 능력이 떨어지는 공무원이 추락 사고를 내고는 창고에 방치해둔 드론도 많다. 이런 문제를 비교적 빠른 시간에 해결하려면 공공기관에서 무작위로 돈을 뿌리지 말고 어떤 기준을 정해 연차적으로 기술 개발을 유도해야 한다. 공무원 조종 기술도 높여야 하고.”
‘프랭크 왕’의 어프로치
지상에서 군집비행 드론을 통제하는 가상 소프트웨어. [동아DB]
공공기관은 국산 드론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로 ‘가격이 비싸서’(8건), ‘판매처·드론 정보 부족’(6건), ‘성능 및 기능 저하’(3건)를 꼽았다. 정부가 드론을 신성장산업으로 정하고 육성 정책을 추진하지만, 정작 국내 드론산업 마중물 구실을 해야 하는 공공기관은 외국산 드론을 구매하는 꼴이다. 물론 국내 드론업체의 기술력과 외국산 드론의 정보 유출 문제는 우리가 풀어야 할 숙제다.
세계 드론시장은 중국 업체, 그중 DJI가 70%가량 석권하고 있어 추격이 만만치 않을 거 같다.
“DJI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프랭크 왕(중국명 왕타오·汪滔)은 어린 시절 원격조종 헬기를 조종하다 ‘자동제어 헬기’에 관심을 갖게 됐다. 홍콩과학기술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해 원격조종 헬기의 비행 제어(Flight Controller) 시스템 연구에 매진, DJI 드론 사업의 초석을 다졌다. 그는 원격조종 모형항공기에 카메라를 달아 마케팅하려는 경영학적 관점에서 접근했고, 싼 임금과 중국 정부의 지원은 DJI를 세계적인 드론업체로 만들었다. 모터와 프로펠러 제조에는 아직 수많은 수작업이 필요한데, 중국 노동자들의 ‘인해전술’과 정부의 시설 지원이 한몫했다. 드론을 만들어놓고 ‘어디에 팔까’를 고민하는 우리와는 생산 여건이 다르고 접근 방식도 달라 성공한 것이다.”
국내 드론산업 기술력 향상을 위해선 공공기관이 저가 드론 완제품을 구매하는 대신 기술개발을 장려해야 한다는 말인가.
“그렇다. 현재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이 ‘3~4년 뒤 이런 드론을 만들어오면 사줄게’ 하는 식으로 구매한다. 그런데 기술 발전 속도가 얼마나 빠른가. 완제품이 나올 때쯤이면 이미 다른 기술이 저만치 앞서가 있어 구형 드론을 구매하게 된다. 따라서 산업을 진흥하려면 연구개발(R&D)을 전문가에게 맡겨야 한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이 달 탐사선을 만들 때도, 미국 국방부가 첨단기술 연구를 지원할 때도 ‘테크놀로지 브레이크 다운(Technology Break Down), 즉 예산 범위에서 여러 기술을 나눠 연구하게 하고 어느 정도 성과를 내면 다양한 혜택을 준다. 만약 소방청이 소방 드론이 필요하면 고온에 견디는 프로펠러, 화염이 이는 건물에서도 고출력을 내는 모터 장치 등 기술을 잘게 나눠 연구개발을 시키는 거다. 비슷한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있다면 공동연구를 권장하고. 그렇게 기술력을 끌어올리고 힘을 합쳐야 드론시장을 선점할 수 있다. 미국이 빠른 시간에 달나라에 간 것처럼….”
현재 우리나라 기술력은 세계 6~7위권으로 소개된다.
“세계 1위 업체와 확연히 차이가 나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나. 잠시 주춤하다가는 드론 껍데기만 만드는 나라로 전락할 수 있다. 드론 관련 소프트웨어를 개발한다면 누구나 참여하는 오픈 소스(Open Source·소프트웨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알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 ‘설계지도’인 소스코드를 무료 공개하는 것) 방식으로 개발하는 것도 적극 고려해야 한다. 이 가운데 우리가 필요한 기술만 뽑아내 별도로 개발할 수도 있고. 혁신을 넘어 혁명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