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가 인사청문회 준비를 위해 9월 3일 서울 여의도 교육시설재난공제회로 출근하고 있다. [동아DB]
‘제19대 및 제20대 국회의원으로서,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위원과 간사로 수년간 활동하여 교육부의 조직과 업무 전반에 높은 이해도와 식견을 보유하고 있으며, 뛰어난 소통능력과 정무감각을 겸비하고 있다.’
유 후보자는 19대, 20대 국회에서 교육부를 관장하는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교문위) 위원으로 활동했다. 일반적으로 4년 임기의 국회의원은 전반기 임기 2년과 후반기 임기 2년 동안 상임위원회(상임위)를 바꿔가며 활동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유 후보자는 19대 국회는 물론, 20대 국회에서도 전·후반기 모두 같은 상임위에서 활약하고 있다.
교문위는 정무위원회, 국토교통위원회와 함께 지역구를 둔 의원이 선호하는 ‘알짜’ 상임위 가운데 하나. 그런 교문위에서 내리 7년째 활약한다는 것은 유 후보자가 해당 분야에 특별히 관심이 있거나 그 나름의 전문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란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 한 인사는 “19대 국회와 20대 국회 초반까지만 해도 우리 당은 야당이었다”며 “정부와 여당을 효과적으로 견제하고자 상임위별로 전문성을 갖춘 인사를 전진 배치했는데, 유 후보자는 교문위 간사를 맡을 만큼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유은혜 의원(가운데)이 2017년 2월 7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검정교과서 집필진과 함께 국·검정 혼용정책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뉴스1]
20대 국회에서는 대학 등록금을 신용카드 또는 현금으로 분할 납부토록 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 갑작스러운 실직과 폐업, 육아휴직 등으로 소득이 없는 채무자를 대상으로 상환유예를 적용하게 한 ‘취업 후 학자금 상환 특별법’ 개정안 등을 발의해 통과시켰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저지 특별위원장 역임
2016년 4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왼쪽에서 두 번째)가 경기 일산동구 중앙로 일산문화공원에서 열린 고양정 김현미(맨 왼쪽), 고양병 유은혜 후보 지원유세에 나서고 있다. [동아DB]
국회와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서 보여준 유 후보자의 활동은 그가 교육정책에 문외한이 아님을 보여주는 이력들이다. 또한 유 후보자는 지역구인 경기 고양시 일산동구(경기 고양병)의 44개 초중고교를 찾아다니며 학교순회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그는 2016년 펴낸 책 ‘유은혜의 낭독’에서 ‘교육정책에서부터 학교 교육환경 개선에 이르기까지 현장의 선생님과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국회 상임위 활동에서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문제들을 접하게 된다’며 ‘간담회에서 나온 제안을 의정활동에 반영하고 교육환경 개선을 위한 예산을 확보하다 보면 소통하며 일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된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상임위 활동과 학교순회간담회 등을 통해 교육정책을 지속적으로 다뤄왔지만 국민 여론은 유 후보자에게 호의적이지 않다. 청와대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는 그의 교육부 장관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이 제기된 지 일주일 만인 9월 5일 오후 6만여 명이 동참했다. 유 후보자에 대해 공직자로서 검증 차원을 넘어 지명 철회를 요구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이유는 뭘까. 청와대 청원 내용에 그 이유가 드러나 있다. 유 후보자가 2016년 11월 28일 대표 발의했던 ‘교육공무직원의 채용 및 처우에 관한 법률안’(교육공무직법) 때문이다.
‘유은혜 의원은 2016년 11월, 학교 공무직들의 처우 개선을 위한 법안을 대표 발의한 바 있습니다. 그 골자는 비정규직의 신분을 안정시키고, 교원자격증이 있는 공무직을 교사로 선발하는 데 우선권을 주며, 공무원으로서의 책임은 지지 않되 노동자로서 이익은 최대한 추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중략) 거센 반발로 발의는 철회됐지만, 3차까지 발의를 추진했던 일인데 교육부 장관이 되면 과연 어떨까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실현하라고 그 자리에 앉히는 것으로 읽히는 제가 너무 삐딱한 것인가요?’
교육공무직법은 발의 직후 교육계의 거센 반발을 샀다. 가장 논란이 됐던 조항은 부칙 제2조 4항 ‘교육공무직원 중에서 교사의 자격을 갖춘 직원은 (중략) 교사로 채용하도록 노력하여야 한다’는 대목. 이 조항이 공개경쟁시험이라는 공무원 임용 절차에 예외를 만들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법안 발의 이후 반발이 거셌다. 한 누리꾼은 해당 법안을 반대하는 이유로 “단순히 학교 현장에서 오래 일했다는 이유로 공정하지 않은 절차를 통해 교원 임용을 한다는 것은 교원임용시험 및 공무원시험 자체를 부정하는 처사이며, 명백한 역차별”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교원임용시험을 통과해 어렵사리 교사로 임용된 교사와 교육행정직 등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안겨줄 수 있다는 것.
유 후보자는 11월 28일 법안 대표 발의 이후 여론의 반발에 부딪히자 12월 8, 10, 13, 15, 17일 모두 다섯 차례에 걸쳐 법안에 쏟아진 비판 여론에 대해 상세히 설명했다. 그리고 12월 19일 발의 22일 만에 결국 법안을 철회했다. 여론의 밀려 철회했던 법안이 1년 8개월이 지난 지금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유 후보자의 발목을 또다시 잡고 있는 것이다.
유 후보자를 비판하는 쪽에서는 ‘불완전한 법안 발의로 큰 물의를 일으킨 만큼 교육부 수장으로 적절치 않다’고 비판한다. 반면, 옹호하는 쪽에서는 교육공무직법 철회 과정에서 비판 여론에도 적극적으로 귀 기울이던 그의 모습을 예로 들며 소통 및 공감 능력을 강조하기도 한다. 유 후보자는 교육공무직법을 철회하면서 다음과 같이 입장을 밝혔다.
‘저는 학교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청년들과 학교에서 이미 일하고 계시는 모든 교육 주체 분들에게 힘이 되는 정치인이기를 꿈꿉니다. 그중에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도 있는 것입니다. 학교에서 일하는 모든 교육 주체들의 노동이 존중받고, 제도로 인한 차별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왔고, 앞으로도 이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을 것입니다. 이번 진통 과정을 통해 깊게 심사숙고했습니다. 법안 철회 결정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이 있다면 시정하고, 더 나은 길로 나아가야 합니다. 학교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최선을 다해 하겠습니다.’
교육공무직법 논란이 교육부 수장으로서 직무 수행에 대한 우려를 낳고 있다면, 피감기관 건물에 지역구 사무실을 내고, 아들이 ‘불안정성대관절’(십자인대 파열)로 병역 면제를 받았으며, 딸 진학을 위해 위장전입했다는 의혹 등은 도덕성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도덕성 논란 부른 세 가지 의혹
더불어민주당 유은혜(왼쪽), 도종환 의원이 2017년 1월 31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정교과서 강행 중단을 촉구하고 있다. [동아DB]
한편 유 후보자의 아들이 2016년 신체검사에서 불안정성대관절로 5급 판정을 받고 병역 면제를 받은 사실도 여론의 도마에 올랐다. 유 후보자 측은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과 관련해 “만 14세이던 2011년 동네 체육관에서 유도 연습을 하다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가 파열돼 수술을 받았고, 만 17세이던 2014년 학교에서 축구를 하던 중 같은 부위를 다쳐 다시 수술을 받았다”며 불법적 병역 기피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불안정성대관절은 병역 판정 때 중점관리질환으로 관리돼 병역 감면 목적이 의심되면 대상자로부터 경위서를 제출받고 특별사법경찰관이 수사하는 등 엄격히 처리되는 만큼 불법적 병역 기피는 불가능하다는 의견도 덧붙였다. 아들의 병역 면제 과정에 ‘고의’가 없었고 ‘불법’도 아님을 강조한 것이다.
아들이 병역 면제 의혹에 휩싸였다면 딸은 초교 입학을 위해 위장전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유 후보자는 1986년 결혼 직후 3년간 경찰 수배를 피해 남편과 함께 지방을 전전했다. 수배가 해제된 89년 서울로 올라와 시부모와 함께 서대문구 북아현동에 거주했다. 그러다 딸의 초등학교 입학 시점인 97년을 앞두고 잠시 중구 정동으로 전입신고를 한 것. 유 후보자는 “둘째 출산을 앞두고 엄마로서 아이를 세심하게 돌볼 수 없는 상황에서 딸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같은 유치원에 다니던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진학시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해명했다. 즉 덕수초교병설유치원에 다니던 딸이 친구들과 같은 학교에 진학할 수 있도록 위장전입을 했다고 시인한 것이다.
과거 공직후보자들이 받았던 위장전입 의혹이 주로 강남 8학군 등 명문학군으로 진학하거나 부동산 투기 목적으로 이뤄진 데 반해, 유 후보자의 딸은 ‘보육’을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는 점을 강조하고 나선 것이다.
9월 4일 유 후보자는 교육부 인사청문회준비팀 설명자료를 통해 ‘아들이 부상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고, 신중한 판단을 하지 못해 딸의 보육 문제로 위장전입을 한 것에 대해 공직자로서 국민 여러분께 송구스럽다’며 고개를 숙였다.
도시농부로 변신한 남편 장안식 씨
[장안식 facebook]
두 사람이 결혼할 때는 장씨가 시위 주동 혐의로 경찰의 수배를 받던 중이라 식장에서 윤석빈이란 가명을 썼다. 결혼식 사진에 ‘신랑 장안식’ 대신 ‘신랑 윤석빈’이라고 적힌 것을 본 아들이 “이 남자 누구야. 엄마, 혹시 두 번 결혼한 것 아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시위 주동, 수배가 일상이던 당시 아픈 기억이 부부의 결혼식 사진에 남아 있는 셈이다.
1990년대 장씨는 원격으로 자동차의 시동을 걸고 문도 여닫을 수 있는 제품을 생산하는 명인전자를 운영하기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는 휴대전화 도매업 등 사업에 손을 댔지만 큰 재미를 보지 못했다.
[장안식 facebook]
부인인 유은혜 의원이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에 지명된 소감을 묻자, 그는 “어머니(유 후보자의 시어머니)께서 걱정이 크시다”고 말했다.
유은혜 후보자가 지금까지 왕성하게 사회활동, 정치활동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은 남편 장씨의 적극적인 외조도 한몫했지만, 시어머니의 적극적인 지원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유 후보자는 2012년 펴낸 책 ‘어머니의 이름으로’ 서문에서 시어머니에 대한 고마움과 미안함을 이렇게 기록했다.
‘내게는 내 일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는 어머니가 있다. 며느리가 부정과 불의, 불공정으로 얼룩진 이 사회를 바로잡겠다고 마이크 앞에 서서 논평을 하고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동안, 어머니는 아이들을 돌보고 살림을 챙겨야 하는 내 역할을 대신해오고 있다. 80평생을 그렇게 살아온 것처럼 지금도 여전히. 며느리가 만들고자 하는 세상이 당신 역시 꿈꾸는 세상이라면서. 낯 두꺼운 며느리는 이래서 갚아야 할 빚 하나가 더 늘었다.’
곁에서 지켜본 유은혜
2008년 18대 총선 때 김근태 후보 지원 유세에 나선 유은혜 부대변인(맨 오른쪽). 그의 왼쪽은 참여정부 초대 법무부 장관을 지낸 강금실 전 장관. [사진 제공 · 유은혜 의원실]
김대중 전 대통령을 탄생시킨 동교동계가 누구를 지지하느냐에 따라 당의 권력지형이 크게 바뀔 수 있는 상황이었다. 당시 동교동계는 이인제 후보 지지로 돌아선 권노갑 고문을 위시한 구주류와 한화갑 전 의원을 중심으로 한 동교동 신주류가 팽팽하게 기싸움을 했다. 그 틈바구니에서 차기를 노리는 정동영, 김근태 의원 등 신진 인사들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양수산부 장관으로 입각한 상태였다.
그때 유은혜 후보자는 ‘국회의원 김근태 후원회’의 사무국장이었다. 서울 여의도 국회 앞 모 빌딩 2층에 있던 사무실에서 후원회를 매개로 지지세력 규합에 한창이었다. 유 후보자의 남편 장안식 씨도 당시에는 김근태 캠프(GT캠프) 외곽에서 전국 조직화 작업을 함께했다. 장씨는 정세 및 판세 분석에 능했다. 기자는 두 사람을 GT캠프의 핵심 인사 정도로만 생각했고, 나중에야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책임의식, 그리고 부드러운 리더십
GT캠프는 2000년 전당대회 이후 지지세 확장을 위해 후원회를 ‘한반도재단’으로 확대 개편했다. 당시 김근태 의원 보좌관이던 유 후보자는 한반도재단 사무국장을 맡았다. 유 후보자가 본격적으로 정치무대에 데뷔한 것은 2004년 열린우리당 창당 이후다. 공채 1기로 당 여성국 부국장으로 입성한 후 한 달여 만에 부대변인으로 발탁돼 내리 6년을 부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열린우리당 시절 국회 본청 기자실 앞에 마련된 ‘공보실’에 가면 언제든 상근부대변인이던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당시 공보실은 열린우리당 취재기자들의 사랑방과도 같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중반이던 2005년 8월 야당에 대연정을 제안한 이후 열린우리당에 대한 국민 여론은 싸늘하게 식어갔다. 기존 지지층마저 등을 돌리면서 정당 지지율은 물론, 대통령 지지율까지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대통령 때리기가 국민스포츠가 됐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여당과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좋지 못했을 때다.
당시 여당을 출입하던 기자들의 날카로운 질문 공세는 오롯이 상근부대변인이던 유 후보자의 몫이었다. 유 후보자는 곤혹스러운 상황에서도 웃는 낯으로 성실히 해명했다. 그는 술이 약하진 않지만 한 잔만 먹어도 얼굴이 빨개지는 스타일이었는데, 대변인이 술을 잘 못 먹으면 대신 나서 마시곤 했다. 그런 그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지켜본 기자들은 후일 유 후보자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당 문제에 관한 한 자신의 정치 이해와 상관없이 매진하는 책임의식은 정치인이기에 앞서 사람의 도리라는 측면에서 항상 그를 눈여겨보게 된다.’
‘국회와 정당에서 빛나지 않는 일, 그러나 누군가는 꼭 해야 하는 일이 많다. 유은혜 부대변인은 그런 일을 잘 찾아서 하는 사람이다.’
‘유은혜는 품격 있다. 부드럽고 품위 있는 리더십, 부대변인이라는 다른 정당과의 첨예한 대립의 장에 서 있으면서도 늘 품위와 웃음을 잃지 않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의 소유자이다.’
유 후보자는 2012년 펴낸 책에서 자신의 삶을 이렇게 평가했다.
‘철이 든 뒤로 내 삶은 줄곧 정의롭지 못하고 불공정한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노력의 연속이었다. 20대에는 그야말로 이성의 가르침에 따라 행동하던 시기였다. 이념과 가치관만이 내 삶의 잣대였고 그 잣대에 부끄럽지 않고 어긋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뛰어든 것은 바로 그런 이유에서다. 그러다가 쫓기는 신세도 되어보고 눈물의 결혼식을 올리기도 했다. 20대의 삶은 떨어뜨리면 산산조각이 날 투박한 도자기 같았다.
아이를 낳고 기르기 시작하면서 생활인으로서의 삶과, 평소 그토록 금과옥조처럼 여기던 가치관에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내가 굳이 신분을 감춰가면서까지 돕고 싶었던 노동자와 서민의 삶이 남이 아닌 곧 내 처지더라는 인식, 그러면서도 며느리로서 아내로서 엄마로서의 역할 또한 포기할 수 없기에 생활 속에서 다양한 모색을 하던 시기가 30대였다.
40대는 그런 과정을 통해 세상 밖으로 나와 내게 맞는 역할을 찾았고 그 역할을 검증하는 시기였다. 삐뚤어진 세상을 바로잡는 일은 누가 챙겨주는 것도 아니고 오로지 내가 주인공이 되어 그 일을 해낼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은 것도 이 시기였다.
이제 새로운 50대의 문 앞에 서 있다. 어떻게 세상을 바로잡을 것인가 하는 모색도 끝났고, 그 속에서 내 몫은 무엇인가 하는 검증도 마쳤다.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의 모색과 검증을 현실 정치인으로서 펼쳐보여야 하는 과제가 주어진 것이다.’
그는 재선의원이 됐고, 이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다시 국민 앞에 섰다. 자유한국당은 인사청문회에서 유 후보자의 도덕성과 전문성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예고하고 있다. 자유한국당 김용태 사무총장은 9월 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지난 국회의 잘못된 관행이던 의원끼리 봐주기 식 청문회, 의원불패 신화를 반드시 깨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 후보자가 국회 인사검증을 무사히 통과하고 백년대계를 바로잡을 수 있을까. 그의 정치적 스승과도 같은 김근태 전 한반도재단 이사장은 그를 이렇게 평했다.
‘오랜 세월 가까이에서 지켜본 유은혜는 미소가 맑고 고운 사람이다. 그리고 한결같은 사람이다. 한결같이 밝고 친절하며, 한결같이 배려하고 겸손하며, 한결같이 정의로움과 올바름을 추구하는 속이 깊고 깊은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