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 2TV 주말드라마 ‘같이 살래요’에서 실감 나는 치매 연기를 하고 있는 장미희 씨.(왼쪽) [사진 제공 · KBS, shutterstock]
“꼼꼼하고 정확하던 우리 아버지가 왜 그런지 모르겠어요.”
지금도 필자의 머릿속에 남아 있는 말이다. 어느 날 병원을 방문한 한 중년 부부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부인의 친정아버지는 ‘알츠하이머병에서의 치매’(알츠하이머병 치매)를 앓고 있었다. 80대 나이에도 정정하다는 얘기를 들을 만큼 건강하던 아버지는 1년 전부터 서서히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한다. 처음에는 물건을 어디에 뒀는지 깜빡깜빡하더니, 점차 자기가 한 일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날이 많아졌다. 가족은 으레 ‘그러려니’ 하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찾지 못했고, 그 후 이상한 증상들이 계속 나타났다. 옷 단추를 잘 채우지 못하거나 딸 전화번호를 기억하지 못하고, 밤중에 집 안을 왔다 갔다 하는 일이 잦아졌다. 그제야 가족은 아버지와 병원을 찾았다. 다행히 초기 치매라 인지기능을 개선하는 약제를 복약하기 시작했다.
의학 발전에 힘입어 인간의 수명은 과거에 비해 많이 늘어났다. 우리나라도 노인인구가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그만큼 노인성 치매도 많아지는 추세다. 65세 이상 노인의 약 10%가 치매 환자로, 10명 중 1명은 매우 높은 발병률이라 할 수 있다. 과거에는 주로 ‘노망’ ‘망령’으로 불린 치매는 뇌의 기질적 손상이나 파괴로 지능, 학습, 언어 등 인지기능과 추론, 판단, 작업수행 등 고차원적 정신기능이 감퇴하는 임상증후군을 말한다.
65세 이상 10명 중 1명 치매 환자
2017년 9월 19일 치매 환자 시설인 서울 마포구 창전데이케어센터에서 작업치료사가 환자들에게 치매 극복 프로그램을 진행 중이다. [동아DB]
또 하나의 대표적 치매는 ‘혈관성 치매’다.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심장질환, 고지혈증 등에 뇌혈관 질환(뇌졸중) 위험 인자까지 있는 환자가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경우 생긴다. 치매는 거의 만성이며, 대부분 비가역성이다. 따라서 완전한 치료법은 없지만, 증세를 완화하거나 진행을 늦추는 약물들은 개발돼 있다. 최근 치매 연구가 세계적으로 이뤄지고 있어 더 좋은 약물들이 개발될 전망이다. 치매는 초기에 발견해 빨리 치료를 시작해야 증상 악화를 막을 수 있다.
그렇다면 치매를 예방할 수는 없을까. 치매를 예방하는 데는 평소 생활습관이 중요하다. ①식사는 영양 균형을 고려해 먹을 수 있는 양의 80%가량으로 유지(비만 방지) ②꾸준하고 적절한 운동 ③과음 및 흡연 금지 ④기억 감퇴, 언어능력 저하가 있을 경우 지체 없이 검사 ⑤고혈압 및 당뇨 적극 치료 ⑥혈액검사를 통해 콜레스테롤 수치 점검 ⑦심장병은 초기에 발견해 치료 ⑧두뇌를 많이 쓰고 긍정적 태도 유지 ⑨우울증 적극 치료 ⑩노후대책 마련 등이다.
“나도 존엄한 인간이라고!”
물론 생활습관을 바꾸고 노후대책을 단단히 해놓아도 100% 치매에 걸리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인간의 의지와 노력을 벗어나는 영역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치매에 걸린 노인을 보면서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치부하곤 하지만, 그들도 무엇인가를 느끼고 판단한다. 필자는 노인요양센터 촉탁의사로도 일하고 있는데, 한 달에 두 번 방문해 어르신들을 살펴본다. 중증 치매 환자가 많아 분위기가 매우 가라앉은 편이다. 처음엔 ‘과연 내가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회진을 하면서 “안녕하세요. 저는 촉탁의사입니다”라고 인사하고, 간호사도 옆에서 “어르신, 의사선생님 오셨어요”라고 말하자 관심 가는 눈빛으로 필자를 쳐다봤다. ‘호모 커뮤니쿠스(Homo Communicus·소통하는 인간)’ 아닌가. 필자는 더욱 용기를 내 그들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르신들이 힘을 주면서 내 손을 잡았다. 비록 말을 못하고 제대로 알아듣지도 못하지만 필자 손을 꽉 잡는 손에서 ‘나는 아직도 살아 있어. 그리고 나는 분명한 사람이야. 존엄한 인간이라고!’ 하는 외침을 느낄 수 있었다.말 못하는 어린아이를 엄마가 안아줄 때 더욱 매달리는 모습이 연상됐다. 치매라는 어둡고 긴 터널을 지나면서 어르신들은 어린아이 같은 모습으로 퇴행한 것이다. 생존을 위해 양육자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고 무언가를 얻기 위해 떼를 쓰면서 울거나 방긋 웃는 아이처럼, 그들도 생의 마지막 단계에서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마지막 몸부림을 하는 것일 테다.
우리는 그들의 마지막 몸부림을 결코 외면해서는 안 된다. 가시적인 치료 효과가 당장 나타나지 않더라도 그들을 위한 보살핌과 진료를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 회진할 때 한 어르신은 웃으면서 “우리 남편이 회사 사장인데 나를 묶어놓고 때렸어요”라고 말한 뒤 “의사선생님은 미남이세요. 뻥이에요”라고 덧붙여 필자를 울고 웃게 했다. 비록 치매를 앓아도 트라우마(trauma·심리적 외상)를 기억하고 있었고, 유머 감각도 그대로였다. 다른 사람의 침대에 누워 “여기가 내 자리야”라고 우기던 또 다른 어르신은 몇 주가 지나자 자신의 침대에 곱게 누워 더는 떼쓰지 않았으니 병세가 호전된 것이다. 필자를 볼 때마다 악수를 청하며 “잘 부탁합니다”라고 말하던 어르신은 무척 사교적인 신사였다.
우리나라는 급속도로 고령화사회로 달려가고 있다. 과거 경제적으로 어렵고 아이를 많이 출산하던 시대에는 감염에 의한 영·유아 사망이 큰 사회적 문제였지만, 지금은 고령화로 인한 노인성 치매의 증가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우리의 의학기술이 치매를 완전히 정복하는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