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 홍대 앞에 9월 20일까지 문을 여는 KT의 팝업스토어 ‘ON식당’.
한 선배가 ‘KT가 8월 28일부터 1초당 1.98원에 음식을 무제한으로 제공하는 ‘ON(온)식당’을 연다’는 내용의 기사를 건네줬다. 아니, KT가 뷔페식당을 연다고? 무제한 뷔페 이용료가 30분에 3565원, 60분에 7130원밖에 안 한다고? 회사 근처 식당에서 곰탕 한 그릇이 9000원, 육개장 한 그릇이 8500원인데 뷔페가 저 가격이라니. KT는 왜 이런 ‘무리수’ 가격을 책정한 걸까. 남는 건 뭘까. 궁금해서 사진기자와 식당이 있다는 서울 홍대 앞으로 향했다.
강호동의 ‘강식당’, 윤여정의 ‘윤식당’처럼 KT가 서울 마포구 홍익대 인근에 차린 ON식당은 KT가 올해 론칭한 ‘데이터ON’ 요금제를 주제로 한 팝업스토어다. ‘무제한 제공’과 ‘저렴한 요금’이라는 데이터ON 요금제의 장점을 식당으로 구체화했다는 게 KT 관계자의 설명. 데이터ON 요금제의 속성(1초에 1.98원, 무제한)을 콘셉트화한 것이다. 물가가 비싼 서울에서 1만 원도 안 되는 가격으로 배불리 먹고 디저트까지 즐길 수 있다니. 기자처럼 밥을 빨리 먹는다면 5000원 미만으로 후다닥 먹고 나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동통신사에서 ‘식당’을 여는 건 정말 흔치 않은 사례다. KT 관계자는 “요금제의 프로모션 성격보다 젊은 고객의 트렌드에 부합하고, 고객에게 직접적인 혜택을 줄 방법을 고민하다 나온 아이디어”라며 “여기에 공간 마케팅의 성격을 추가해 ON식당을 직접 운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먹고도 7130원?
식사를 하고 낸 돈은 결식아동들을 후원하는 데 쓰인다(왼쪽). 기자가 방문한 날 폭우가 내렸음에도 ‘ON식당’ 앞은 입장을 기다리는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섰다.
깔끔한 인테리어와 케이터링이 돋보이는 식당 내부.
폭우에도 늘어선 줄
그런데 아뿔싸. 날짜 선정에 실패한 것일까. 이날 하천이 범람해 인명사고가 날 정도로 기록적인 폭우가 내렸다. 차창 밖으로 한 치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비가 쏟아졌다. 호우주의보 문자메시지가 수시로 ‘띠링띠링’ 울렸다. 식당이 한산하겠다는 예측도 잠시, 민트색 건물 입구에 우산과 우비로 무장한 채 서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오후 6시 ‘무제한 뷔페’ 오픈을 기다리는 이들이었다. 폭우도 사람들의 호기심과 식욕을 꺼뜨릴 수 없는 모양이다.
보통 이렇게 잠깐 열었다 사라지는 핫플레이스에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정보에 밝은 젊은 층이 찾아오는 경우가 대부분. 그런데 이날은 입구에 ‘무제한 뷔페를 즐기세요’라는 팻말이 놓였기 때문인지, 나이 지긋한 어르신과 가족 단위 손님도 많았다. 이런 ‘꿀정보’를 다들 어떻게 알고 찾아왔는지 신기했다.
수요일의 메인 요리는 일본식이었으며, 매일 메뉴가 바뀐다. 줄을 서서 메인 메뉴를 받는 사람들. 직원이 음식을 만들고 있다(왼쪽부터).
카운트다운 시작, 바빠지는 마음
오뚜기와 KT가 컬래버레이션 한 덕에 식당 이용료를 낸 방문객은 오뚜기 컵밥과 라면, 떠먹는 컵피자 등을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다(위). 식당 한쪽에 전시된 조형물과 캐릭터 인형들.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주스, 아이스크림 등 후식을 먼저 챙겨 들고 왔다. 취재로 오르락내리락하느라 식어버린 파스타를 입에 넣었다. 식었는데도 짜지 않고 고소한 맛이 괜찮아 한 접시를 거뜬히 비웠다. 어느 정도 배가 찼다 싶어 시계를 보니 6시 28분. 2분만 더 있으면 30분이었다. 처음에 왔을 때는 줄을 빨리 서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했다. 옆자리 중학생 무리가 “우리 지금 나가면 3000원만 내면 되는 거 아냐?” “아니다, 한 번 더 먹을까?”라며 진지하게 ‘먹부림’을 고민하고 있었다. 지갑이 가벼운 학생이라도 이곳에서는 위장을 두둑이 채울 수 있었다.
과일과 조각 케이크를 먹고 있는데, 1층에 내려갔던 사진기자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다시 올라왔다. 오뚜기 떠먹는 컵피자와 라면이 워낙 인기를 끌다 보니 전자레인지 앞에 줄이 길었던 것. 몇몇은 시간 절약을 위해 모르는 사람과 전자레인지를 같이 쓰기도 했다.
TV에서 광고만 보고 먹어보지는 못한 떠먹는 컵피자가 궁금했기에 기어이 차례를 기다려 1시간이 되기 10여 분 전 컵피자 하나를 데워서 들고 오는 데 성공했다. 내일 오후까지는 굶어도 될 것 같았다. 광고처럼 치즈가 쭉쭉 늘어나 치즈 마니아라면 만족할 만한 아이템이었다. 기내에서 누군가 라면을 시키면 냄새에 이끌려 승무원에게 줄줄이 라면을 주문하듯, 다른 테이블에 있던 사람들도 떠먹는 컵피자와 라면을 가지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직원 안내에 따라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로드하거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 인증샷을 올리면 다양한 기념품을 받을 수 있다.
수익금은 전액 좋은 일에
궁금한 게 또 있었다. 오뚜기와 KT는 어쩌다 컬래버레이션을 하게 된 걸까. KT는 2월 오뚜기 진라면을 활용해 KT 5G라면을 만들었다. 진짜쫄면을 활용해 ON쫄면을 내놓기도 했다. “오뚜기는 국민 기업 이미지가 있고, KT와도 추구하는 방향이 같아 올해 초부터 컬래버레이션을 통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는 게 KT 관계자의 말이다.KT는 이번 ON식당의 프로모션 수익금을 전액 결식아동 후원금으로 기부한다. 기업은 독특한 콘셉트로 요금제를 홍보할 수 있고 소비자는 저렴하게 한 끼를 즐길 수 있어 좋다. 계산하면 영수증과 함께 기부 도장이 찍힌 카드를 받을 수 있다. 밥을 신나게 먹었는데 기부도 된다니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팝업스토어 명소인 홍대 앞,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ON식당. 자체 홍보 없이도 입소문을 타고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과 외국인 관광객이 매일 찾아온다. 저녁 뷔페만 진행한 영업 1일 차에 150명, 2일 차에 400명이 방문해 이틀간 기부금 160만 원이 적립됐다. 식당이 문을 닫기 전까지 쌓이는 기부금은 입구 안내판에서 확인할 수 있다.
홍재상 KT 마케팅부문 상무는 “앞으로 다양한 장소에서 더 많은 고객이 ON식당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또 다른 KT 관계자는 “ON식당의 운영 연장 여부는 미정이다. 매장 주인과 9월 20일까지 계약했다. 호응이 좋으면 계약을 연장할지, 다른 장소로 옮길지 논의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ON식당이 전원을 OFF 하기 전, 고기 메뉴가 나오는 날 홍대 앞에서 저녁 한 끼 하자고 회사 동료들을 꼬드겨봐야겠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