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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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 끈질긴 ‘양탄자 전략’으로 종전 MOU 협상에서 사실상 승리

NYT “트럼프는 이 전쟁에서 패배”… 공화당 내부서도 강력 비판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6-06-22 17: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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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협상에서 즉답을 피하고 모호함을 유지하며, 상대의 조바심을 유도하는 방식인 ‘양탄자 전략’으로 이란에 유리하게 미국과의 종전 협상을 성사시켰다. 뉴시스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협상에서 즉답을 피하고 모호함을 유지하며, 상대의 조바심을 유도하는 방식인 ‘양탄자 전략’으로 이란에 유리하게 미국과의 종전 협상을 성사시켰다. 뉴시스

    미국과의 종전 양해각서(MOU)와 60일간 후속 협상을 이끌고 있는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무장관은 이스파한의 부유한 양탄자 상인 집안 출신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모두 양탄자 상인이었다. 1962년 태어난 그는 17세 때 혁명수비대에 들어가 이란-이라크 전쟁(1980~1988)에 참전하는 등 9년을 복무했다. 이란 외무부 직속 기관인 이란 국제관계학교에서 국제관계학 학사를, 테헤란의 이슬람아자드대학에서 정치학 석사를 각각 취득한 그는 1989년 외무부에 들어가 2021년 퇴직할 때까지 일한 베테랑 외교관이다. 

    영국 켄트대에서 정치학 박사 학위도 받은 그는 핀란드 주재 대사, 일본 주재 대사, 외무부 대변인,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 등을 지냈다. 특히 2015년 이란이 이른바 ‘P5+1(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5개국과 독일)’과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으로 불리는 핵 합의를 체결했을 때 협상 수석대표였다. 당시 그는 ‘협상의 귀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미국 등 서방 외교관들을 능숙하고 노련하게 다뤘다. 퇴직 이후 최고지도자인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의 부름을 받아 자문조직인 외교관계 전략위원회의 사무총장을 지내다가 2024년 8월 외무장관으로 발탁됐다.

    양탄자 파는 상인들이 흥정하듯

    아라그치 장관은 평소 협상에 대해 전통시장(바자르)에서 양탄자 상인처럼 흥정하면 된다고 말해왔다. 저서 ‘협상의 힘’에서 “입장을 고수하고 요구를 반복해야 한다”면서 “참을성을 갖고 끈질기게 흥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중동 전문가들은 모호함과 끈질긴 인내를 앞세운 이 같은 이란의 협상 스타일을 ‘양탄자 전략’이라고 부른다. 바자르의 핵심 상품인 양탄자의 가격은 정해져 있지 않다. 양탄자 상인들은 가격을 놓고 손님들과 끊임없이 흥정한다. 이들은 가격을 낮추려는 손님들에게 양탄자를 한 땀 한 땀 짜듯 인내하고 버티면서 결국 거래를 성사시킨다. 유럽외교협회(ECFR)의 엘리 게란마예 중동·북아프리카 부국장은 “이란과 협상하려면 고도의 인내와 시간, 꼼꼼한 외교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5년 JCPOA는 20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159쪽의 정교한 문서로 나왔다.

    미국은 4월 8일(이하 현지 시간)부터 이란과 휴전에 들어가면서 양국의 협상이 진행됐다. 아라그치 장관의 상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40년 지기이자 부동산 개발업자 출신 스티브 위트코프 중동 특사와 맏사위인 재러드 쿠슈너였다. 이들은 핵 문제는 물론 전략요충지인 호르무즈해협의 중요성 등에 문외한이었으며, 외교 협상에도 초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처럼 압도적 힘을 앞세워 거래를 성사시키려 했다. 협상을 성급하게 타결하려고 이란을 압박했다. 

    하지만 아라그치 장관은 협상에서 즉답을 피하고 모호함을 유지하며, 상대의 조바심을 유도하는 방식인 ‘양탄자 전략’으로 이란에 유리하게 협상을 성사시켰다. 미국과 이란이 체결한 14개항의 MOU 전문이 6월 17일 공개되자 국제사회에선 미국이 이란과의 종전 양해각서(MOU) 협상에서 ‘완패’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호르무즈해협 넘겨주고 핵 협상도 2015년 반복

    무엇보다 이번 MOU를 통해 이란은 사실상 호르무즈해협 통제권을 확보했다. MOU 5조는 “이란은 60일 동안만 아무런 비용 없이 호르무즈해협을 통과하는 상선들의 양방향 자유 통항을 보장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이란은 향후 관리와 해양 서비스에 대해 오만 및 걸프국들과 협의할 것”이라고 규정했다. 이란은 60일 이후 통행료 성격의 수수료를 부과하겠다는 입장이다. 이는 “호르무즈해협이 완전히 개방되고 영구히 통행료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과 배치된다. 실제로 이란은 MOU가 발효된 6월 18일부터 페르시아만해협청(PGSA)을 통해 호르무즈해협 통항 신청을 받으면서 “60일간은 무료지만 앞으로 ‘보험 수수료’를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4일 MOU에 전자 서명을 하기 전 이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참모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에서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으로부터 MOU 합의대로 하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재봉쇄를 막을 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기 때문이다. 랫클리프 CIA 국장은 이란이 앞으로 호르무즈해협을 전략적 압박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고, 이란이 해협의 통제권이 어떤 핵무기보다 강력한 신무기라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랫클리프 국장의 보고에 마코 루비오 국무장관과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동조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친구인 위트코프 중동특사와 쿠슈너의 손을 들어줬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4월 6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전자 서명을 하기 전 랫클리프 국장으로부터 MOU 합의대로 하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재봉쇄를 막을 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다. 뉴시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이 4월 6일 백악관 기자회견장에서 존 랫클리프 중앙정보국(CIA) 국장이 기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6월 14일(이하 현지 시간) 종전 양해각서(MOU)에 전자 서명을 하기 전 랫클리프 국장으로부터 MOU 합의대로 하면 이란의 호르무즈해협 재봉쇄를 막을 수 없다는 보고를 들었다. 뉴시스

    에너지 부문도 미국이 선제적으로 대규모 양보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MOU 10조는 서명 즉시 이란산 원유와 석유화학 제품, 파생상품 수출에 대한 제재 면제를 규정했다. 미국 언론들은 제재 완화 시 이란의 연간 원유 판매 수입이 600억 달러(약 92조3200억 원)를 넘어설 수 있다고 분석했다. 또 MOU 6조에는 최소 3000억 달러(약 461조6100억 원) 규모의 이란 재건·경제개발 계획 수립 조항까지 포함되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이란 동결자산 17억 달러(약 2조6200억 원) 반환을 ‘퍼주기’라고 주장했던 것과 비교해 훨씬 큰 경제적 혜택을 약속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제재 해제 조항도 비판 대상이다. MOU 7조는 유엔 안보리 제재와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의, 미국의 1·2차 제재를 포함한 모든 종류의 제재 종료를 목표로 한다고 명시했다. 하지만 MOU 어디에도 이란의 테러와 대리 세력 지원, 탄도미사일 개발 등 그동안 미국이 제재와 군사 압박의 근거로 삼아온 문제들은 언급되지 않았다. MOU 11조의 동결자산 해제도 문제다. 미국은 이란이 동결 자산을 완전히 사용할 수 있도록 약속했는데, 이란 중앙은행이 지정한 ‘최종 수취인’에게 지급될 수 있도록 규정해 테러 단체나 제재 대상 기관, 헤즈볼라 등 대리 세력으로 흘러들어갈 가능성을 차단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MOU 8조다. 이란은 “핵무기를 획득하거나 개발하지 않을 것임을 재확인한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 규정은 2015년 핵 합의에서도 나온 내용이다. 또 8조는 농축 물질 비축분을 IAEA의 감독 하에 현장에서 희석한다고 규정했다. 이 내용을 볼 때 이란은 핵 농축 권리를 포기하지 않았다. 또 발전용 저농축우라늄인지, 전쟁 전 60%까지 농축한 고농축우라늄인지도 명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이란의 고농축우라늄을 ‘핵먼지’(Nuclear Dust)라면서 “미국으로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헤즈볼라 깃발과 이란 국기를 흔들며 반미-반이스라엘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친이란 무장 정파 헤즈볼라 지지자들이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외곽 다히예헤즈볼라 깃발과 이란 국기를 흔들며 반미-반이스라엘 집회를 열고 있다. 뉴시스

    MOU 내용이 공개되자 미국에선 민주당은 물론 여당인 공화당 역시 “받아낸 것 없이 퍼주기만 했다”며 비난을 쏟아내고 있다. 공화당의 빌 캐시디 상원의원은 “이번 합의는 수십 년 사이 최악의 외교정책 실수”라면서 “레이건이 무덤에서 뒤척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화당 존 코닌 상원의원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과 호르무즈해협 통행료 부과를 막지 못하면서 대리세력을 지원하라고 막대한 자금을 건네는 합의”라고 비판했다. 민주당의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는 “우리가 트럼프의 전쟁을 통해 얻은 것은 무엇인가”라며 “이란 정권은 이전보다 더 급진적이며, 호르무즈해협은 전쟁 전보다 더 많은 이란의 통제에 놓여 있다”고 꼬집었다. 트럼프 대통령을 일방적으로 지지해온 ‘마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진영에서도 강한 우려가 나왔다. 보수논객 벤 샤피로는 “이번 합의는 재앙”이라고 지적했고, 또 다른 논객 에릭 에릭슨은 “미국의 항복”이라고 주장했다.

    “종전 협상, 다음 정부의 부담으로 남을 것”

    미국 유력 언론들도 일제히 트럼프 대통령을 비판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는 중간 선거를 앞두고 치솟는 유가와 하락하는 주식시장에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고 지적했다. WSJ은 “이란 정권은 전쟁 기간 호르무즈해협을 인질로 잡고 있었다”면서 “이번 합의의 진짜 위험은 이란의 갈취를 더 나빠진 새로운 현상유지로 굳혀버린다는 데 있다”고 지적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는 스스로 고수하겠다던 조건은 거의 얻어내지 못했다”며 “트럼프는 이 전쟁에서 패배했다”고 못 박았다. 

    미국 전문가들도 “핵심 쟁점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다”며 “이번 전쟁은 트럼프의 전략적 실패”라고 지적했다. 빅토리아 테일러 애틀랜틱 카운슬 국장은 “이란은 호르무즈해협 봉쇄가 세계 경제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앞으로 이란이 해협 봉쇄 능력을 강력한 무기이자 지렛대로 사용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폴 세일럼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선임 연구원은 “이란은 ‘핵무기 보유 가능국’의 지위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이클 래트니 CSIS 선임 고문은 “이란은 핵 협상을 자신이 원하는 만큼 오래 끌고 갈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며 “이 문제는 다음 정부 무릎 위에 놓인 ‘거대하고 더러운 기저귀’ 같은 부담으로 남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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