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0년대 초반 복원 공사를 거쳐 서울 시민들의 휴식 공간이 된 청계천. 뉴스1
역수는 물 본류와 반대되는 방향으로 흐르는 지류를 가리킨다. 한국 지형은 대체로 동쪽과 북쪽이 높고 남쪽과 서쪽이 낮다. 그래서 산맥을 끼고 흐르는 물은 보통 동쪽에서 서쪽으로 흐르거나, 북쪽에서 남쪽으로 진행한다. 이처럼 보편적인 지형에 맞춰 자연스럽게 물이 흐르는 지역을 순수국(順水局)이라 하고, 이와 반대로 흐르는 곳은 역수국(逆水局)이라고 한다.
청계천 복개 후 닥친 위기
서울을 관통하는 한강은 동쪽에서 발원해 서해로 빠져나가는 전형적인 동출서류수(東出西流水)다. 반면 강북 청계천과 강남 양재천은 한강의 지류이면서 역수다. 이 중 청계천의 경우 서울 주산인 북악산을 비롯해 인왕산, 남산 등지에서 발원한 물이 합류해 동쪽으로 흐르다가 중랑천을 거쳐 한강으로 빠져나가는 서출동류수(西出東流水)다. 이처럼 본류와 지류가 서로 거슬러 흐르면 아주 길하다고 해석한다. 땅의 기운이 빠져나가지 않고 더욱 증폭하는 효과도 있기 때문이다.역수인 청계천의 발복 효과는 복원 스토리에서도 확인된다. 서울 4대문 내 재물운을 좌우하는 청계천은 조선 왕조가 중히 여긴 물길이었다. 그런데 1957년 이승만 대통령 재임기에 청계천 복개(覆蓋) 공사가 시작됐다. 각종 생활 오물로 물이 오염되고 천변에 도시 빈민이 모여들어 일대가 슬럼화되자 이 대통령이 물길을 덮어버리고 그 위를 지상 도로로 활용하려 한 것이다. ‘물은 곧 재물’이라는 풍수적 관점보다 당장의 경제적 효용을 우선시한 조치였다.
이때 장안의 명풍수가였던 고(故) 지창룡 박사는 청계천이 복개되면 국가적 재난이 생길 수 있다고 봤다. 육안으로 보이던 청계천이 가려지면서 역수로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리라 판단한 것이다. 이에 평소 친분을 나누던 이승만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각하, 청계천 명당수 복개 공사를 속히 거두어주소서. 아뢰옵기 황감하오나 이 명당수는 절대 각하 혼자 복개할 수 없습니다. 군주(대통령) 셋의 힘으로라야 능히 복개할 수 있는 지난한 일이니, 수도의 지리에 변화를 가해 국운이 쇠하는 것을 사전에 예방코자 하는 충정에서 이 글을 올립니다.”(지창룡 박사 에세이 ‘하늘이여 땅이여 사람들이여’에서 발췌)
지 박사는 이때 청계천을 복개해 암천(暗川)으로 만드는 것은 국익에 반한다고 역설했다. 그러나 이 편지는 이승만 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경무대 비서실에서 한바탕 웃음거리 소재가 된 뒤 곽영주 당시 경호실장의 책상 서랍으로 들어가고 말았다고 한다.
이후 지 박사의 우려는 현실이 됐다. 1960년 3·15 부정 선거와 4·19혁명으로 이 대통령이 하야했다. 뒤를 이은 윤보선 대통령은 1961년 5·16 군사 쿠데타로 임기를 채우지 못한 채 물러났다. 결국 청계천 복개 공사는 박정희 대통령 집권기인 1979년 말에야 마무리됐다. 지 박사의 예언처럼 3명의 대통령을 거치고서야 완성된 셈이다. 이 시기 대한민국은 갑작스러운 정권교체와 경제적 어려움 등 국가적 위기를 맞아야 했다.

2003년 8월 청계천 복원공사 현장. 청계천을 덮고 있던 도로를 철거하자 30여년 동안 갇혀 있던 물길이 모습을 드러냈다. 동아DB
서출동류수, 양재천
이명박 전 대통령은 서울시장 재임 시절 청계천 복원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2003년 7월 착공해 2005년 10월 끝난 복원 공사를 통해 청계천은 암수에서 양수(陽水)로 탈바꿈했다. 그 과정에서 문화재 훼손 및 환경 파괴 등 여러 문제가 지적되기도 했지만, 되살아난 청계천의 양수 기운은 주변 땅값을 올리고 상권을 일으켰다. 이명박 당시 서울시장이 17대 대통령으로 당선하는 데도 청계천이 한몫했다는 것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을 듯하다. 현재 청계천은 외국인 관광객이 즐겨 찾는 국제적 명승지가 됐다.
서울 양재천 일대는 강남에서도 손꼽히는 부촌이다. GETTYIMAGES
이러한 본류와 지류의 역수 관계는 좀 더 미시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서초구에서 서리풀공원과 몽마르트공원으로 이어지는 작은 산줄기는 행정적으로 서초동과 방배동을 가른다. 그런데 이 산줄기가 방배동과 서초동의 지운(地運)을 다르게 하는 역할도 한다. 비가 내리면 산줄기 오른쪽은 빗물이 동쪽 방향으로 흐른다. 여기서 대법원, 검찰청, 서울교대 등이 들어선 서초동으로 흘러감으로써 한강 흐름과는 반대인 역수 성격을 띠는 것이다. 반면 산줄기 왼쪽 빗물은 서쪽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이에 따라 대부분 아파트와 빌라 등 주택가가 형성된 방배동 일대에서는 한강 흐름과 같은 방향인 순수(順水)가 된다.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역수 지역인 서초동 상권이 순수 지역인 방배동 상권보다 더 발달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김포 풍경 바꾼 김포대수로

경기 김포시 김포대수로 주위에 주택가가 조성돼 있다. GETTYIMAG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