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 17일(현지 시간) 옌스프레데리크 닐센 그린란드 자치정부 총리가 수도 누크에서 미국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에 항의하는 시위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아직 현실은 아니지만 유력하게 거론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그린란드 병합’ 시나리오다. 제러미 셔피로 유럽외교관계위원회(ECFR) 책임연구원이 1월 12일 외교 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한 ‘그린란드는 어떻게 몰락했나-트럼프의 무혈 장악 상상하기’(How Greenland falls-Imaginging a bloodless Trump takeover) 제하 글에서 제시한 내용이다. 미국이 민간투자와 현지 엘리트 포섭 등 사전 정지 작업을 거쳐 그린란드에 무혈 입성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어디까지나 사변 소설(speculative fiction)이라고 했지만, 최근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그린란드 병합 시도를 보면 마냥 ‘소설’로 읽히지는 않는다. 이에 대해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그린란드 병합에 대한 국내외 여론이 좋지 않은 상황이라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 개입이 아닌 다양한 협정으로 그린란드를 사실상 병합하는 효과를 노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트럼프 “그린란드에 무력 쓰지 않을 것”
이 같은 비(非)군사적 병합 시나리오가 이미 가동된 것일까. 그린란드를 둘러싼 미국과 유럽 국가들의 갈등은 일단 숨고르기에 들어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1월 21일(현지 시간)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연차총회’ 연설에서 그린란드에 대해 “북미 대륙 일부이자 서반구 최북단의 우리 영토”라고 주장하면서도 “무력 사용을 원하지 않고 (무력을) 쓰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같은 날 그는 그린란드 병합에 반대하는 유럽 8개국에 대한 관세도 철회했다.집권 1기에 이어 그린란드 병합 의도를 노골화한 트럼프 대통령의 속내는 ‘경제’와 ‘안보’ 두 키워드로 요약할 수 있다. 지하자원이 풍부한 전략 요충지인 그린란드를 ‘제2 알래스카’로 삼겠다는 의도다. 그린란드에는 약 3610만t에 달하는 희토류를 비롯해 티타늄(1210만t), 니켈(190만t), 리튬(23만5000t) 등 지하자원이 풍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이 그린란드의 각종 자원을 차지한다면 중국과의 경제 패권 전쟁에서 우위를 차지할 수 있다. 대(對)러시아 견제에서도 그린란드는 미국에 매력적 입지다. 그린란드에 있는 미국 피투피크 우주기지는 러시아 수도 모스크바에서 4400㎞ 거리에 있다(인포그래픽 참조). 유사시 러시아 탄도미사일을 감시하는 동시에 거꾸로 러시아를 타격할 수 있는 요충지인 것이다. 최근 지구온난화로 그린란드 일대 빙하가 빠르게 녹으면서 북극해 항로의 경제·군사적 가치도 재평가되고 있다.
지금도 美 피투피크 우주기지 운영

그린란드의 지정학적 중요성. 동아DB
현재 그린란드는 덴마크 영토이긴 해도 높은 자치를 누리고 있다. 1979년 외교·안보를 제외한 자치권을 인정받았고, 2009년에는 사법권과 경찰권, 천연자원 관리권까지 이양받았다. 2009년 ‘확장 자치법’에 따라 그린란드는 주민 투표와 덴마크 의회 승인을 거쳐 독립을 얻을 수 있는 권한까지 획득했다. 오늘날 그린란드 원주민은 9세기 정착한 툴레인의 후손이다. 이들과 교류하던 덴마크-노르웨이가 18세기 그린란드를 식민지화했다. 이후 다른 나라로 갈라진 덴마크와 노르웨이는 그린란드 영유권 분쟁을 벌였으나 1931년 국제재판소는 덴마크 손을 들어줬다. 과거 덴마크 정부는 그린란드 여성들에게 강제 불임 시술을 실시하거나 그린란드 영유아를 덴마크인 가정에 강제 입양하는 민족 말살 정책을 펴기도 했다. 이 같은 과거사로 그린란드 주민들의 반(反)덴마크 정서와 독립 열망이 적잖다고 한다.
“그린란드인, 덴마크로부터 점진적 독립 지향”
그렇다면 미국의 병합 시도에 향후 그린란드인들이 호응할 가능성은 없을까. 당장 그린란드에선 주민들이 곳곳에 반(反)트럼프 플래카드를 붙이는 등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반대 여론이 앞으로도 이어지리라는 게 전문가들 견해다. 한종만 배재대 한국-시베리아센터 명예교수는 “그린란드 주민들이 과거 덴마크의 민족 말살 정책에 반감을 갖고 독립을 지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미국의 병합 시도를 받아들인 가능성은 낮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오늘날 그린란드 자치정부는 덴마크로부터 한 해 10억 달러(약 1조4700억 원) 보조금을 받는데 이는 한 해 예산의 절반 이상이다. 이런 현실을 고려해 그린란드인들은 점진적 독립을 지향하고 있다. 미국이 희토류 개발 등 경제적 이익을 앞세워 병합을 시도해도 그린란드인들은 부정적 반응을 보일 공산이 크다. 수산업 의존도가 90%를 넘는 그린란드에선 환경 문제가 매우 민감한데, 희토류 개발에 따른 오염 가능성이 적잖기 때문이다. 그린란드인들이 독립을 원하긴 하지만 만약 미국이 병합을 강제할 경우 덴마크로 돌아설 가능성이 크다.”
그린란드가 아프리카보다 넓다?
메르카토르 지도 왜곡으로 생긴 오해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그린 세계지도. GETTYIMAGES
그린란드 면적은 217만5600㎢이며 이 중 80%(175만5637㎢)가 눈과 빙하로 덮여 있다. 한반도 면적의 약 10배에 달할 정도로 광활한 땅이다. 그린란드를 기준으로 대륙과 대륙이 아닌 섬으로 나뉠 정도다. 그린란드를 품은 덕에 덴마크는 러시아를 제외하고 유럽에서 영토가 가장 넓은 나라가 됐다. 하지만 그린란드는 지도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아프리카 대륙(3037만㎢)이나 남아메리카 대륙(1784만㎢)은 물론, 호주(774만1220㎢)보다도 훨씬 작다.
그린란드가 ‘과대평가’된 이유는 메르카토르 도법에 따라 그려진 지도 탓이다. 1569년 플랑드르(현 벨기에) 지리학자 헤라르뒤스 메르카토르가 고안한 이 도법은 ‘면적’이 아닌 ‘각도’를 정확히 보여주는 게 목적이었다. 대항해 시대 항해용 지도를 제작하고자 개발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메르카토르 지도는 둥근 지구를 평면으로 펼쳐 가로세로가 수직으로 만나는 경위선망을 표시했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위도 간격이 고위도로 갈수록 좁아지지만, 이를 항해 목적에 맞춰 편의상 같게 표시함으로써 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메르카토르 지도에서 그린란드 등 고위도 지역은 실제보다 크게, 저위도 지역은 작게 보이는 이유다. 이 같은 왜곡을 피하고자 최근 메르카토르 도법 대신 실제 대륙별 면적을 비교적 잘 보여주는 ‘이퀄 어스(equal earth)’ 도법을 도입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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