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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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확대에 올인한 미국

AI 데이터센터 건설로 인한 전력 부족과 전기료 상승에 대응

  •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

    입력2025-11-29 09: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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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가 2019년 가동 중단되기 전 모습. 콘스텔레이션에너지는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7년까지 재가동해 마이크로소프트(MS)에 20년간 전력을 판매할 예정이다. 콘스텔레이션에너지 제공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가 2019년 가동 중단되기 전 모습. 콘스텔레이션에너지는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7년까지 재가동해 마이크로소프트(MS)에 20년간 전력을 판매할 예정이다. 콘스텔레이션에너지 제공 

    스리마일섬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해리스버그시에서 16㎞ 떨어진 도핀 카운티의 서스쿼해나강 가운데에 있다. 이 섬에선 1974년과 1978년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2기가 건설돼 가동에 들어갔다. 그런데 1979년 3월 28일 2호기에서 노심용융(nuclear meltdown) 사고가 발생했다. 2차 냉각수 펌프가 이상을 일으켜 정지했으며, 이로 인해 1차 냉각수의 압력이 올라가고 원자로의 온도가 급상승해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당시 주민 10만여 명은 이 섬을 도망치듯 빠져나왔다. 

    1m 두께의 격납 용기 덕분에 심각한 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발전소 반경 16㎞ 이내 주민들의 방사능 노출 수준은 엑스선을 2~3번 촬영한 정도였다. 그럼에도 당시 사고를 기점으로 미국에서는 반(反)원전 운동에 불이 붙었고,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은 원전 건설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2호기는 영구 폐쇄됐다. 1호기도 경제성 악화로 2019년 가동이 중단됐다.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는 미국 원전산업 쇠퇴의 계기로 꼽힌다. 신규 원전 건설 인허가가 중단됐을 뿐 아니라, 미국 원전 건설 능력은 크게 저하됐다. 미국은 현재 원전 94기를 가동 중인데, 1990년대 이후 추가된 대형 원전은 3기밖에 없다.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전력 공급

    미국 정부가 인공지능(AI)산업의 발전으로 전력 수요가 치솟고 전기요금이 상승하자 탈원전 정책의 근간이 됐던 스리마일섬 원전마저 재가동하는 등 원전 확대에 적극 나서고 있다. 미국 에너지부는 11월 18일(이하 현지 시간) 자국의 원전 분야 1위 기업 콘스텔레이션에너지에 10억 달러(약 1조4700억 원) 규모의 연방정부 대출을 승인했다. 이는 미국 원전 정책 전환의 상징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크리스 라이트 에너지부 장관은 “미국이 AI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막대한 전력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위해 새로운 원전 르네상스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고 밝혔다. 콘스텔레이션에너지는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2027년까지 재가동해 마이크로소프트(MS)에 20년간 전력을 판매할 예정이다. 스리마일섬 원전 1호기를 재가동할 경우 80만 가구가 사용할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2020년 가동을 멈춘 아이오와주 두에인아널드 원전과 2022년 중단된 미시간주 팰리세이즈 원전도 내년 재가동을 목표로 절차를 진행하고 있다. 

    미국이 원전을 재가동하는 이유는 AI 붐으로 데이터센터 건설이 크게 늘어나면서 일부 지역에서 전력 부족과 전기료 상승 사태가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북미전력안정성공사(NERC)는 11월 18일 겨울철 미국·캐나다 전력망의 안정성을 평가한 연례 보고서에서 “수년간 정체하거나 거의 정체 상태였던 최대 전력 수요가 최근 들어 20GW(2.5%) 증가했다”며 “하지만 신규 전력 공급량은 10GW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신규 전력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셈이다. 

    전력 수요가 급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미국 빅테크들이 AI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고자 데이터센터 증설에 앞다퉈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일부 주에서는 전기요금이 최대 15% 이상 올랐다. 데이터센터 666곳을 유치해 미국에서 가장 많은 데이터센터를 보유한 버지니아주에서는 올해 8월 기준 전기요금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3%나 인상됐다. 데이터센터 244곳이 몰려 있는 일리노이주는 15.8%, 데이터센터 193곳이 들어선 오하이오주는 12% 인상률을 보였다. 이는 미국 전체 연간 전기요금 인상률인 5.1%의 2~3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글로벌 컨설팅그룹 딜로이트는 미국 데이터센터의 전력 수요가 2024년 33GW에서 2035년 최대 176GW로 5배 이상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전미전기제조업협회(NEMA)도 2050년까지 데이터센터 확대 등으로 미국의 전력 수요가 50%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한 바 있다. 딜로이트는 이런 수요 대응을 위해 원전 건설에 적극 나설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 대미 투자액 원전 10기 건설에

    미국 정부는 전력 부족 사태 등에 대비해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건설을 시작할 계획이다. 이는 원자력발전 용량을 현재 100GW에서 2050년까지 400GW로 4배 확대하는 장기 전략의 일환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5월 23일 ‘원자력산업 기반 재건(Reinvigorating the Nuclear Industrial Base)’이라는 제목의 행정명령을 통해 2030년까지 대형 원전 10기 착공 목표를 발표한 바 있다. 그런데 대형 원전 1기를 건설하려면 부지 선정, 인허가, 자금 조달, 공급망 구축 등 절차가 복잡해 착공에만 최소 4~6년이 소요된다. 그만큼 원전 10기 건설은 상당히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 분명하다. 특히 미국 에너지부는 원전 10기 건설에 최소 750억 달러(약 109조9200억 원)가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천문학적 규모의 자금을 어디에서 충당하느냐도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미국 정부는 일본이 자국과 관세협상을 타결하면서 약속한 5500억 달러(약 806조 원) 투자액을 바탕으로 대형 원전 10기를 건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칼 코 에너지부 수석 보좌관은 11월 19일 테네시주에서 열린 에너지 콘퍼런스에서 일본 정부가 10월 발표한 5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약속을 언급하며, 해당 자금이 미국의 신규 원전 프로젝트에 투입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백악관이 발표한 ‘미·일 간 투자에 관한 공동 팩트시트’를 보면 대형 원전과 소형모듈원전(SMR) 건설, 기타 발전소·변전소·송전망 등 전력 계통 건설에 3320억 달러(약 486조7400억 원)를 투자하기로 했다. 미국 정부는 또 한국이 관세협상 타결 당시 약속한 3500억 달러 대미 투자 패키지 중 2000억 달러에서 일부를 원전 등 에너지 분야에 투입하기로 했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아마존 데이터센터. 아마존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에 5억 달러(약 7330억 원)를 투자해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 단지에 SMR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뉴시스

    미국 버지니아주에 있는 아마존 데이터센터. 아마존은 소형모듈원전(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에 5억 달러(약 7330억 원)를 투자해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 단지에 SMR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뉴시스

    빅테크, SMR로 자체 에너지 체계 구축

    미국 정부가 원전 확대에 ‘올인’하는 이유는 원전이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에 대응하기 위한 최적의 에너지원이기 때문이다. 원전은 날씨나 계절의 영향을 받지 않고 24시간 안정적으로 전력을 공급할 수 있다. 설비 이용률이 92.5% 이상으로 천연가스 56%, 풍력 35%, 태양광 25%보다 월등히 높아 AI 및 생성형 AI 애플리케이션의 무중단 운영과 투자수익 극대화에 필수적이다. 또 단일 원자로는 800㎿ 이상 전력을 생산해 대규모 데이터센터는 물론, AI 특화 메가 캠퍼스의 전력 수요에도 대응할 수 있다. 원전은 온실가스 배출이 없는 청정에너지원으로 탄소중립 달성에도 기여한다. 미국 정부는 앞으로 10년간 예상되는 데이터센터 전력 수요 증가분의 10%를 신규 원전에서 충당할 방침이다. 미국 원자력발전량은 2024년 기준 전체 전력 생산의 19%를 차지해 태양광과 풍력을 합친 것보다 많다. 

    그런가 하면 구글·MS·아마존웹서비스 등 미국 빅테크들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확보를 위해 SMR 건설에 대거 투자하고 있다. 세계 최대 AI 반도체 기업 엔비디아의 그래픽처리장치(GPU) 블랙웰(B200) 한 장은 최대 1000W 전력을 소비한다. 수만 장이 동시에 가동되는 데이터센터의 전력 피크는 중소 도시 전체 수준에 달한다. 구글은 미국 카이로스파워와 2035년까지 500㎿ 규모의 SMR 전력 구매 계약을 맺었고, 아마존은 SMR 개발사 엑스에너지에 5억 달러(약 7330억 원)를 투자해 버지니아주 데이터센터 단지에 SMR 전력을 공급할 계획이다. 오픈AI도 SMR 개발사 오클로에 투자했다. 이들의 목표는 외부 전력망에 의존하지 않는 ‘자가 에너지 체계’ 구축이다. 딜로이트는 “SMR은 정전 때 자체 재가동이 가능한 블랙스타트 기능과 높은 연료 보안성을 갖춰 데이터센터에 최적”이라고 분석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현재 18개국에서 74개 SMR 노형이 개발되고 있으며, 7기가 건설·운영 단계에 있다. SMR은 공장에서 제작한 모듈을 현장에서 조립하기 때문에 건설 기간이 절반가량으로 단축될 뿐 아니라, 전기 공급이 끊겨도 자연 순환으로 냉각되는 자동안전 시스템도 갖췄다. 대형 원전보다 설치비가 50% 적게 들고 부지도 크게 차지하지 않는다. 데이터센터 인근에 설치하면 송전 손실을 줄이는 것은 물론, 24시간 무탄소 전력 공급이 가능하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2040년까지 SMR 설치 용량이 80GW로 전체 원전의 10%를 차지할 것으로 전망했다. 사티아 나델라 MS 최고경영자(CEO)가 “AI 산업의 병목은 GPU 공급이 아닌, 전력 부족 때문”이라고 지적했듯이, AI 산업에서 가장 필수 조건은 전력 확보인 만큼 원전 확대는 미국은 물론, 각국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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