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도하는 첫 국제금융기구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이 숱한 논란 끝에 출범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을 축으로 전 세계 금융질서를 좌지우지해온 미국의 금융패권에 중국의 도전이 첫걸음을 뗐다는 평가가 나온다.
6월 2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한국 등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렸다. 이 자리엔 한국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57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모두 참석했지만, 국내 절차가 마무리된 50개국만 서명했다. 나머지 국가는 연내에 서명할 예정. 앞으로 지분율 50% 이상, 10개국 이상이 국내 비준 절차 등을 마치면 협정문이 공식 발효돼 AIIB가 정식 출범하게 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서명식이 끝난 후 각국 협상 대표들과 만나 “중국의 종합 국력이 부단히 발전함에 따라 국제 발전사업을 위해 힘이 닿는 한 최선의 공헌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한 “개혁 · 개방 이래 중국의 경제 · 사회 발전은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다자개발은행과 일부 국가의 금융지원을 받으며 이뤄졌으며 중국은 앞으로도 기존 다자개발은행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기존 국제금융기구와 협력관계를 적극 모색하겠다는 이러한 발언은 중국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려 한다는 국제사회 시선을 경계한 것이다.
이외에도 AIIB를 대결 대신 화합으로 읽어달라는 시 주석의 주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중국이 AIIB 창립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과 상호연동 · 상호연결을 추진하고, 지역협력을 심화하며,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다”며 “모두가 다자협력의 정신을 갖는다면 AIIB를 개방과 포용, 상호공영의 새 플랫폼으로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北 지원 마다 않는다”
최경환 부총리는 서명식 하루 전인 6월 28일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과 가진 설명회에서 “북한이 투자를 필요로 하고 투자할 여건만 된다면, 한국은 AIIB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AIIB가 지원할 프로젝트 중 한국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관련 있는 사업이 선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AIIB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은 지분율 30.34%와 투표권 비율 26.06%로 1위 주주국이 됐다. 이로써 중국은 투표권의 75% 이상 찬성이 필요한 ‘최대 다수결’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부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최대 다수결’ 안건은 비회원국 지원, 수권 자본금 변경, 이사회 규모와 구성 변경, 협정문 개정 등이다. 투표권의 50%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 다수결’ 안건에는 신규 회원국 가입, 비액면주 발행, 기타 금융 제공, 부속기관 설립 등이 포함된다. 기타 일반 안건은 행사된 투표권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한국은 지분율 3.81%와 투표권 3.50%로 역내에선 4위, 전체로는 중국, 러시아, 인도, 독일에 이어 5위다. 역내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역외는 기타 지역을 가리킨다. 러시아는 회원국들의 협의에 따라 역내에 포함됐다. 역내 총 37개국의 지분율이 74.77%, 역외가 25.23%다. 한국은 지분율에 따라 자본금 37억4000만 달러(약 4조 2000억 원)를 배당받았으며 실제 납부금은 7억5000만 달러로 향후 5년간 분할 납부한다. AIIB는 창립 회원국 가운데 일부가 배분된 지분 일부를 포기해 자본금 982억 달러로 출범한다. 한국의 실제 납부금이 배당받은 금액보다 적은 것은 자본금 982억 달러를 한꺼번에 모으는 대신 먼저 200억 달러만 모은 뒤 상황을 봐서 나머지를 조성키로 했기 때문이다.
AIIB의 자금 제공은 대출보증, 지분투자, 기술원조 등의 형식으로 이뤄진다. 지원 원칙은 ‘환경·사회적 영향, 수혜자의 조달 능력 등을 고려하지만 조달과 관련해 어떤 조건도 두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논란이 됐던 지배구조와 관련해 총회, 이사회, 총재와 1인 이상 부총재를 두기로 했다. 총회는 각 회원국이 임명한 위원 및 대리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모든 권한은 총회에 있지만 이사회에 위임 가능하다. 이사회는 12명(역내 9명, 역외 3명)으로 임기 2년에 연임할 수 있다. 총재는 총회에서 75% 이상 찬성으로 선출되며, 5년 임기로 재선이 가능하다.
불타는 도전 의지,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보면 AIIB는 ‘자본금 약 1000억 달러의 투자은행’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 · 중 간 권력이동(Power Shift)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구라는 분석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애초 시 주석이 2013년
10월 동남아를 순방하던 중 제안한 뒤 설립 작업이 시작됐고, 중국이 최대주주 인데다 초대 수장을 맡았으며, 본부를 베이징에 두고 있다는 사실 등이 이러한 분석의 한 배경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은행 설립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후에 태도를 바꿨지만)에도 그 동맹국인 영국과 호주 등이 가입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AIIB 설립을 둘러싼 미 · 중 힘겨루기에서 중국이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 상원의회가 6월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외 무역협상 전권을 부여하는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통과시킨 것 역시 이와 관계가 깊다.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환태평양 중심의 거대 경제공동체를 미국 주도로 설립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게 그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국 경제력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미국이 건설해놓은 ‘금융제국’에 대해 도전 의지를 불태워왔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서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실물경제에선 G2가 된 이후에도 금융 부문에서 여전히 낙후했다는 국제사회 인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국제통화’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는 IMF의 특별인출권(SDR)에 위안화가 아직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 반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중국이 당장 AIIB를 미국과의 대결 도구로 활용하려 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는 당분간 AIIB를 금융 인프라로 삼아 ‘21세기 대륙과 해양으로 가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과 직접 맞서기보다 ‘서진(西進)정책’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나간다는 구상이다. 일대일로와 AIIB의 타깃이 주로 중국을 기준으로 서쪽과 남쪽 지역에 집중되는 이유다.
6월 29일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는 한국 등 회원국 대표가 참석한 가운데 AIIB 협정문 서명식이 열렸다. 이 자리엔 한국의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등 57개 전체 회원국 대표가 모두 참석했지만, 국내 절차가 마무리된 50개국만 서명했다. 나머지 국가는 연내에 서명할 예정. 앞으로 지분율 50% 이상, 10개국 이상이 국내 비준 절차 등을 마치면 협정문이 공식 발효돼 AIIB가 정식 출범하게 된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은 서명식이 끝난 후 각국 협상 대표들과 만나 “중국의 종합 국력이 부단히 발전함에 따라 국제 발전사업을 위해 힘이 닿는 한 최선의 공헌을 하기를 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 주석은 또한 “개혁 · 개방 이래 중국의 경제 · 사회 발전은 세계은행이나 아시아개발은행(ADB) 같은 다자개발은행과 일부 국가의 금융지원을 받으며 이뤄졌으며 중국은 앞으로도 기존 다자개발은행을 계속 지지할 것”이라는 약속도 덧붙였다. 기존 국제금융기구와 협력관계를 적극 모색하겠다는 이러한 발언은 중국이 기존 질서에 도전하려 한다는 국제사회 시선을 경계한 것이다.
이외에도 AIIB를 대결 대신 화합으로 읽어달라는 시 주석의 주문은 계속 이어졌다. 그는 중국이 AIIB 창립을 제안한 이유에 대해 “아시아 지역 인프라 건설과 상호연동 · 상호연결을 추진하고, 지역협력을 심화하며, 공동발전을 실현하는 데 있다”며 “모두가 다자협력의 정신을 갖는다면 AIIB를 개방과 포용, 상호공영의 새 플랫폼으로 건설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최경환 “北 지원 마다 않는다”
최경환 부총리는 서명식 하루 전인 6월 28일 베이징 주재 한국특파원과 가진 설명회에서 “북한이 투자를 필요로 하고 투자할 여건만 된다면, 한국은 AIIB가 북한을 지원하는 것을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이어 “AIIB가 지원할 프로젝트 중 한국 정부가 중점을 두고 있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관련 있는 사업이 선정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AIIB 협정문에 따르면 중국은 지분율 30.34%와 투표권 비율 26.06%로 1위 주주국이 됐다. 이로써 중국은 투표권의 75% 이상 찬성이 필요한 ‘최대 다수결’ 사안에 대해서는 사실상 거부권 행사가 가능해졌다. ‘최대 다수결’ 안건은 비회원국 지원, 수권 자본금 변경, 이사회 규모와 구성 변경, 협정문 개정 등이다. 투표권의 50% 이상 찬성이 필요한 ‘특별 다수결’ 안건에는 신규 회원국 가입, 비액면주 발행, 기타 금융 제공, 부속기관 설립 등이 포함된다. 기타 일반 안건은 행사된 투표권의 과반수 찬성으로 결정된다.
한국은 지분율 3.81%와 투표권 3.50%로 역내에선 4위, 전체로는 중국, 러시아, 인도, 독일에 이어 5위다. 역내는 아시아와 오세아니아, 역외는 기타 지역을 가리킨다. 러시아는 회원국들의 협의에 따라 역내에 포함됐다. 역내 총 37개국의 지분율이 74.77%, 역외가 25.23%다. 한국은 지분율에 따라 자본금 37억4000만 달러(약 4조 2000억 원)를 배당받았으며 실제 납부금은 7억5000만 달러로 향후 5년간 분할 납부한다. AIIB는 창립 회원국 가운데 일부가 배분된 지분 일부를 포기해 자본금 982억 달러로 출범한다. 한국의 실제 납부금이 배당받은 금액보다 적은 것은 자본금 982억 달러를 한꺼번에 모으는 대신 먼저 200억 달러만 모은 뒤 상황을 봐서 나머지를 조성키로 했기 때문이다.
AIIB의 자금 제공은 대출보증, 지분투자, 기술원조 등의 형식으로 이뤄진다. 지원 원칙은 ‘환경·사회적 영향, 수혜자의 조달 능력 등을 고려하지만 조달과 관련해 어떤 조건도 두지 않는다’고 규정돼 있다. 논란이 됐던 지배구조와 관련해 총회, 이사회, 총재와 1인 이상 부총재를 두기로 했다. 총회는 각 회원국이 임명한 위원 및 대리위원 1명으로 구성된다. 모든 권한은 총회에 있지만 이사회에 위임 가능하다. 이사회는 12명(역내 9명, 역외 3명)으로 임기 2년에 연임할 수 있다. 총재는 총회에서 75% 이상 찬성으로 선출되며, 5년 임기로 재선이 가능하다.
불타는 도전 의지, 그러나…
표면적으로만 보면 AIIB는 ‘자본금 약 1000억 달러의 투자은행’에 불과하다. 그러나 미 · 중 간 권력이동(Power Shift)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구라는 분석이 곳곳에서 쏟아져 나온다. 애초 시 주석이 2013년
10월 동남아를 순방하던 중 제안한 뒤 설립 작업이 시작됐고, 중국이 최대주주 인데다 초대 수장을 맡았으며, 본부를 베이징에 두고 있다는 사실 등이 이러한 분석의 한 배경이다.
그러나 더 큰 이유는 은행 설립 과정에서 미국의 반대(후에 태도를 바꿨지만)에도 그 동맹국인 영국과 호주 등이 가입을 선언했다는 점이다. AIIB 설립을 둘러싼 미 · 중 힘겨루기에서 중국이 완승을 거뒀다는 평가다. 미국 연방 상원의회가 6월 24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대외 무역협상 전권을 부여하는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법안을 통과시킨 것 역시 이와 관계가 깊다. 세계 경제의 40%를 차지하는 환태평양 중심의 거대 경제공동체를 미국 주도로 설립해 중국을 견제한다는 게 그 주요 목적이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자국 경제력에 대한 자부심을 바탕으로 미국이 건설해놓은 ‘금융제국’에 대해 도전 의지를 불태워왔다. 주요 20개국(G20) 회의 등에서 위안화 국제화에 대한 목소리를 높인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은 2010년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GDP) 기준 세계 2위 경제대국으로 자리매김했지만, 실물경제에선 G2가 된 이후에도 금융 부문에서 여전히 낙후했다는 국제사회 인식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국제통화’로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있는 IMF의 특별인출권(SDR)에 위안화가 아직 가입하지 못하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물론 그 배경에는 미국 반대가 깔려 있다.
그러나 중국이 당장 AIIB를 미국과의 대결 도구로 활용하려 들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중국 정부는 당분간 AIIB를 금융 인프라로 삼아 ‘21세기 대륙과 해양으로 가는 실크로드 프로젝트’인 ‘일대일로(一帶一路)’를 추진하겠다는 복안이다.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 정책으로 압박해 들어오는 미국과 직접 맞서기보다 ‘서진(西進)정책’을 통해 영향력을 확대해나간다는 구상이다. 일대일로와 AIIB의 타깃이 주로 중국을 기준으로 서쪽과 남쪽 지역에 집중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