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일 중국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 참석한 중국 학생들. [GETTYIMAGES]
‘부강중국’에서 ‘문명중국’으로
10년 전만 해도 중국 내부는 물론, 서양의 좌파 지식인 중에는 향후 서양 중심주의의 대안으로 중국 문명을 꼽는 경우가 적잖았다. 기본적으로 중국의 빠른 경제성장에 주목한 태도다. 이러한 문명론적 시각은 결과적으로 중국을 신비시하고 이상적 존재로 그려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했다. 그런 점에서 최근 중국 지식인의 주요 화두가 ‘부강중국’에서 ‘문명중국’으로 옮겨간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를 ‘추격모델’에서 ‘역전모델’로 이동으로 해석한다. 왕후이(汪暉) 중국 칭화대 교수와 간양(甘陽) 칭화대 신아서원 원장 등 신좌파는 중국 현대성을 서양과 다른 ‘중국적 요소’로 새롭게 해석한다. 중국 경제발전을 신자유주의 모델 도입의 결과로 해석한다면 사회적 폐단도 손쉽게 서양 탓으로 돌릴 수 있다. 반면 경제 굴기의 성과도 ‘중국이 서양 모델을 따른 덕’으로 해석되는 딜레마에 빠진다. 신좌파는 G2 부상이 중국 고유 모델의 성공이라고 보고 싶어 한다.이러한 태도는 서양의 일부 좌파 지식인의 사고와 일맥상통한다. 영국 언론인 마틴 자크의 ‘중국이 세계를 지배하면’과 미국·영국의 중국 관련 싱크탱크에서 일한 마크 레너드의 ‘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등 저서는 중국의 부상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동시에 중국이 세계를 지배할 경우 그 모델은 서양과 다를 것이라고 낙관한다. ‘종속이론’으로 유명한 브로델 학파의 안드레 군더 프랑크도 저서 ‘리오리엔트’에서 “유럽의 근대가 중국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형성됐다”며 오늘날 중국 부상을 당연시했다.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조지프 스티글리츠 역시 중국의 경제적 성공 요인을 특유의 아시아적 모델에서 찾았다. 중국의 재부상이 미국 헤게모니를 대체해 여러 난제에 해답을 줄 것이라고 본 사회학자 조반니 아리기, 중국식 국가발전 모델 ‘베이징 컨센서스’를 제안한 미국 언론인 조슈아 라모도 비슷한 태도를 보인다.
이들은 서양 중심주의를 극복할 대안으로 중국 문명에 주목한다. 중국 경제성장이 고유의 문명적 특성과 직접 연관됐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이러한 주장을 벨기에 중국학자 시몽 레이스는 ‘인스턴트 중국학’이라고 부른다. 서양에서 중국을 수박 겉핥기 식으로 이상화하는 이들로 인해 ‘중국 혁명’은 지속되고 새로운 신화만 생겨나고 있다. 인스턴트 중국 연구자가 목소리를 높일수록 중국에선 “중국은 특수하다”는 태도, 더 나아가 중국이 세계에 새로운 국가발전 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는 ‘중국모델론’이 비등한다.
중국 지식인 ‘셀프 오리엔탈리즘’
68혁명 당시 유럽 대학 캠퍼스에 나붙은 마오쩌둥 중국 주석 초상화. [GETTYIMAGES]
좌파 지식인이 중국 경제발전의 성과만 상찬하는 일견 모순적 현상, 그 배경은 무엇일까. 그들이 중국 문명에서 서양 근대의 대안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본원적으로 중국을 분석과 탐색 대상으로 냉철하게 보지 못한다. 기존 우파뿐 아니라 좌파 오리엔탈리스트도 동양(중국)을 ‘그곳(there)’으로서 막연히 바라본다. 좌파 지식인에게 중요한 것은 서양의 대안인 이상화된 중국이지, 현실이 아니다. 서양 중심주의를 극복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면서도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다. 좌파 오리엔탈리즘은 중국 지식인의 국수주의를 강화한다. 특히 중국 신좌파는 서양 지성계의 좌파 오리엔탈리즘이 갖는 권위로 자기주장을 강화한다. 중국 신좌파가 서양 근대성을 비판한다는 명목으로 오리엔탈리즘을 국수주의·민족주의적으로 전유하는 것. 중국 지식인이 도리어 오리엔탈리즘을 강화하는 ‘셀프 좌파-오리엔탈리즘’을 양산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중국이 주장하는 대안적 근대의 실체는 있는가. 중국 신좌파가 주장하는 중국모델론의 핵심은 “마오쩌둥·덩샤오핑 두 지도자의 집권 60년 동안 중국 사회주의 실험이 경제발전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폭력적 산업화 과정에 대한 반성 없이 경제발전 과실만 주목한 태도다. 오늘날 중국이 비판하는 서양의 근대 경험과 다를 바 없다. 서양 중심주의를 비판한다면서 다시 서양 중심주의에 빠지는 모순이다. 서유럽 열강과 미국을 ‘제국주의’라고 비난하면서도 바로 그 위치에 중국이 서고자 하는 욕망이기도 하다.
오늘날 중국의 가장 큰 문제는 서양 민주주의·자본주의의 대안을 인문학적으로 성찰하지 못한다는 점이다. 학문이란 자기성찰의 과정이다. 사실관계를 좀 더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목적이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중국문명론은 학문이 아닌 ‘예언자의 계시’에 가까워 보인다. 최근 중국에 관심을 갖는 좌파 오리엔탈리스트는 대부분 중국 전문가가 아니다. 서양 자본주의 모델의 대안을 찾다 중국이라는 타자를 발견한 것에 가깝다. 대안적 정치·경제 모델을 드디어 찾았다는, 혹은 찾아야 한다는 희망·욕망 탓에 가치판단이 앞서기 쉽다. 냉철한 학문적 분석이 아닌, 예언·예측 차원에서 중국을 바라볼 개연성이 높다.
자기성찰 없는 ‘중국’ 허상
‘오리엔탈리즘’ 저자 에드워드 사이드. [위키피디아]
“미국학자가 ‘타자’로서 동양의 존재를 토론하고 동양의 가치와 독립성을 인정하며 유럽 중심주의를 비판하는 사고방식과, 현재 동양에서 생활하는 중국과 일본 학자의 사고방식은 다를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고려하지 않고 오리엔탈리즘 문제를 토론하면 서양 학자를 모방하고 추종하는 것밖에 안 된다.”
천핑위안의 지적은 서양 좌파 오리엔탈리즘을 그대로 받아들여 셀프 오리엔탈리즘을 만들어낸 중국 지식인을 겨냥한 것이다. 서양 오리엔탈리즘을 비판적으로 토론하지 않는 이상 동양의 자기인식은 불가능하다는 통렬한 비판으로 읽힌다. 이제 중국은 G2를 자처한다. 타자가 중국의 신비성·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결코 환영할 일이 아님을 중국 지식인이 깨달아야 한다. 객관적·비판적으로 자기정체성을 묻지 않는 이상 진짜 ‘중국’도, ‘중국 모델’도 허상에 그칠 수 있다.
조경란은… 연세대 국학연구원 연구교수, 국무총리실 산하 경제인문사회연구회 인문정책특별위원회 위원. 중국현대사상 · 동아시아 사상 전공. 홍콩중문대 방문학자 · 베이징대 인문사회과학연구원 초빙교수 역임. 저서로는 ‘현대 중국 지식인 지도 : 신좌파·자유주의 · 신유가’ ‘20세기 중국 지식의 탄생 : 전통 · 근대 · 혁명으로 본 라이벌 사상가’ ‘국가, 유학, 지식인 : 현대 중국의 보수주의와 민족주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