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는 오랫동안 동북아시아권 사람들 사이에서 길조(吉鳥)로 대접받아 왔다. “까치가 울면 반가운 손님이 온다”는 옛말에서도 까치를 특별히 우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까치 같은 조류를 길조로 여기는 정서에는 우리 고유의 풍수 사상이 깔려 있다. 옛사람들은 까치가 아무 데서나 우는 게 아니라, 좋은 기운이 배어 있는 명당 터에서 적절한 때에 맞춰 소리를 낸다고 믿었다.
실제로 까치는 아무 데나 집을 짓는 조류가 아니다. 좋은 기운이 밴 터에 둥지를 틀고 새끼를 키우는 신령스러운 새다. 그래서 까치가 빈번하게 출현하는 곳은 좋은 기운과 더불어 좋은 사람이나 소식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동물을 등장시켜 좋은 소식, 좋은 장소를 구하는 행위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매우 오래된 전통이다.
돼지로 수도 고른 고구려
고구려 제2대 유리왕은 아버지 주몽이 나라를 세웠던 졸본 땅에서 벗어나 도읍지를 물색했다. 기원후 3년 유리왕은 “백성의 이익이 끝없을 뿐 아니라 전쟁 걱정도 피할 수 있는 곳”이라는 신하의 보고를 받고 위나암성으로 도읍을 옮겼다.
흥미로운 점은 고구려인이 ‘하늘이 점지’한 새 도읍지를 물색하는 과정에서 돼지를 동원했다는 것이다. ‘삼국사기’는 졸본성의 우리에서 탈출한 돼지가 위나암으로 이동해 머무르는 모습을 보고 그곳 지세를 살펴본 결과 훌륭한 도읍지로 판단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 최근 방영된 TV 드라마 ‘우씨왕후’의 남편인 산상왕(재위 197~227) 때도 돼지를 내세워 수도를 이전한 기록이 등장한다. 이처럼 고구려인들은 돼지를 신성시했다. 돼지는 하늘의 북두칠성 형상과 같다고 봤기 때문이다. 따라서 돼지가 멈춘 곳은 바로 북두칠성의 신령한 기운에 이끌린 공간, 즉 명당이라는 공식이 성립한다.
동물을 이용한 명당 이야기는 한국 풍수 설화에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삼국유사’에는 매에 쫓기던 꿩이 두 날개를 벌려 새끼 2마리를 꽁꽁 안고 필사적으로 보호하는 모습을 본 매가 사냥을 멈추는 장면이 등장한다. 이를 보고 감동받은 신라의 재상이 신문왕에게 해당 사실을 보고하자 그곳에 절을 짓게 했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그곳이 바로 울산에 있는 영취사(靈鷲寺) 터다.
도읍지나 사찰 같은 신성한 제의 공간을 선정할 때 왜 이처럼 동물들이 등장했을까. 동식물에 신령한 기운이 깃들어 있다는 토테미즘 사상만으로는 이런 현상을 설명하기 부족하다. 오히려 옛사람은 동물들이 본능적으로 명당 감지 능력을 지녔음을 알고 있었고, 동물들의 감각을 이용해 명당을 찾아냈다고 할 것이다.
실제로 산행을 하다 보면 멧돼지, 노루가 잠을 잔 곳이나 변을 본 곳에는 매우 좋은 기운이 서려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야생동물들은 안전이 가장 보장되면서 생명 유지에 도움이 되는 생기(生氣)를 취할 만한 터에 잠자리를 마련하거나 그곳에서 새끼를 키운다. 마찬가지로 동물에게 이로운 기운은 사람에게도 똑같이 좋은 기운으로 작동한다.
본능으로 명당 찾는 동물들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마을을 상징하는 제비. 해마다 찾아오는 제비들 덕분에 ‘제비 명당’으로 소문난 곳이다. [안영배 제공]
한편으로 조상이 호식을 당한 집안의 자손이 잘사는 경우가 많았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인신공양에 대한 호랑이의 보은(報恩)이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이런 믿음보다는 호식을 당한 아버지의 유골이 명당에 있었기 때문에 자식이 발복했다는 풍수적 해석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호랑이 터전은 풍수적으로 기운이 매우 좋은 명당일 개연성이 크기 때문이다.
동물과 명당 발복 이야기는 비단 한국에서만 전해지는 게 아니다. 중국에는 “집에 네 가지 즐거운 일이 나타나면 훌륭한 인물이 집안에 난다(宅子現四喜,家中出能人)”는 말이 있다. 네 가지 기쁜 일은 △떠돌이 개가 집 문으로 들어올 때 △집 안 고목에 새싹이 날 때 △제비가 집에 둥지를 틀 때 △까치가 집으로 날아 들어올 때를 가리킨다. 이 중 세 가지가 동물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먼저 옛사람들은 떠돌이 개가 집에 들어오면 가족이 화합할 좋은 징조라고 봤다. 예부터 개는 집을 지키는 수호 및 가족에 대한 충성의 상징으로 여겨져왔다. 따라서 개의 등장은 이런 역할을 해낼 유능한 사람이 집안에 출현한다는 징조로 해석됐다.
이와 관련된 대만의 민간 속설인 ‘구래부(狗來富)’라는 말도 재미있다. “개가 부를 불러온다”는 이 말은 풍수적으로 개들은 지기(地氣) 같은 명당 집을 본능적으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즉 개가 찾아올 정도로 기운이 좋은 집에서 사는 사람은 그만큼 풍요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경쟁력을 갖췄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제비가 둥지를 틀려고 찾아오는 집도 매우 길하다. 동아시아권에서 제비는 재물과 번영을 안겨주는 새로 인식돼왔다. 이는 흥부와 놀부 이야기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형인 놀부 집에서 쫓겨난 흥부는 극도로 궁핍한 생활을 하다가 불쑥 나타난 시주승이 골라준 집터에 움막을 짓고 살게 된다. 시주승은 배산임수(背山臨水)를 이룬 이 터에서 살면 가세(家勢)가 속히 일어나고 자손이 부귀해진다는 말을 남겼다. 이듬해 봄 강남에서 날아온 제비가 흥부의 움막에도 찾아든다.
까치는 뛰어난 풍수 전문가
전북 익산군 함라마을의 전통 부잣집 마당 나뭇가지에 까치들이 둥지를 틀었다. [안영배 제공]
마지막으로 집으로 날아드는 까치도 뛰어난 풍수 전문가다. 까치가 둥지를 튼 나무를 살펴보면 예외 없이 천기(天氣)나 지기(地氣) 등 기 에너지가 형성된 곳이다. 좋은 기운이 서린 집에서는 때가 되면 경사스러운 일이 생길 확률이 매우 높기에 까치의 등장을 반갑게 여기는 것도 당연하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지표 동물인 까치를 보면서 새해에는 한국에 행운과 행복이 가득하고, 위기의 한국을 구할 귀인이 등장하기를 그 어느 때보다 간절히 바라 마지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