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 경선에서 가장 뜨거운 쟁점은 ‘역선택 방지’다. 최근 ‘범야권 후보 적합도’ 여론조사에서 홍준표 의원이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격차를 좁히고 있다. 유승민 전 의원도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제치는 추세다. 이들 조사는 보수 야권 후보들을 늘어놓은 다음 응답자가 후보 1명을 고르는 방식으로 진행하며 더불어민주당(민주당) 지지층도 참여할 수 있다. 홍 의원과 유 전 의원은 민주당 지지층에서 1, 2위를 차지하고 있다.
역선택 방지 논란은 결국 ‘정당 경선에서 누구에게, 어디까지 투표권을 줄 것인지’와 연결된다. 밑바탕에는 ‘어떤 정당 모델이 바람직한가’라는 고민이 있다. 역선택 방지를 가장 철저히 시행하는 사례는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당원직선제’이고, 반대 사례는 ‘완전개방경선’(오픈프라이머리)이다.
당원직선제에 깔린 정치철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당은 고유의 정체성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고로 정당 후보는 당의 정체성을 담보한 당원들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외부인에게도 투표권을 주면 대중이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할 동력이 떨어진다. 대중이 당원이 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중정당의 참모습이다. 셋째, ‘국민’은 본선에서 결정권을 가지면 된다. 각 정당 당원이 책임지고 후보를 내야 국민이 받아들 선택지도 풍부해진다. 국민이 여러 정당 경선에 모두 개입하면 비슷한 후보들만 본선에 나와 오히려 선택지가 좁아진다.
당원직선제도 단점이 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도 당내 소수파가 경선에서 떨어질 수 있다. “당원들도 대중적 인기를 감안해 투표한다”는 설득력 있는 반론이 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원 구성이 일반 지지층과 괴리가 있을 경우 지지층을 잘 대변한다는 보장도 없다.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경선이 그 예다. 당시 당내 다수파의 후원을 받은 권영길 후보가 승리했지만, 지지층 다수는 “심상정, 노회찬 후보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완전개방경선은 “일반국민의 선호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고안됐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처럼 당비가 극소액이면서 일반 당원의 활동이 부진한 정당일수록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가 당원직선제를 그리 신뢰하지 않아서다. 경선을 외연 확장 기회로 보고 완전개방경선을 추진하는 측면도 있다. 복수(複數) 유력 주자를 보유한 거대 정당은 그들의 대결에 다수 국민을 동원할 필요성을 느끼게 마련이다.
다만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방식이면 대중성보다 조직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국민 혹은 기존 당원 선호도는 낮아도 지지자 다수를 선거인단으로 조직할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조직 동원에 우려나 피로감을 갖는 정치인 또는 정당이 선거인단 모집보다 여론조사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4·7 재보궐선거 전까지 5년간 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한 국민의힘은 재보선과 6월 당대표 선거에 이어 이번 대선 경선에서도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도입한 바 있다.
여론조사는 선거인단 경선보다 국민이나 지지층 여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단, 다른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사람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으면 항간의 주장대로 ‘한국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데 일본 사람이 끼어드는 꼴’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지지층과 무당층에만 투표 기회를 주자”는 ‘역선택 방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당대표 선거 때 진행한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정당을 물은 뒤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게만 투표권을 줬다.
지지층의 선호와 확장 잠재력을 모두 반영할 여론조사 방안은 없는 걸까. 다음은 국민의힘 외에도 향후 일반국민 여론조사 경선을 채택할 정당이 참고할 만한 방법이다. 첫째, 특정 정당 지지 여부에 따라 표 무게를 달리하는 방식이다. 지지층과 무당층에게 1표를 주고 다른 정당 지지층에게 0.5표를 주는 식이다.
둘째, 다른 정당 지지층을 소극적 지지층과 적극적 지지층으로 분류해 전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전화면접으로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를 할 때 무당층이라고 응답하면 대개 지지 정당을 한 번 되묻는데, 이때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변해도 해당 정당 지지에 합산한다. 이를 활용해볼 법하다. 한 번 만에 지지 정당을 지목한 응답자는 ‘적극적 지지자’로 분류해 경선 여론조사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셋째, 일반국민 여론조사 비중이 크면 역선택 방지를 하고, 당원 투표 비중이 크다면 하지 않는 방법이다.
넷째, 정책 관련 질문을 넣어 다른 당 지지층을 어느 정도 걸러내는 방안도 있다.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하는 정당이라면 반드시 ‘걸러내기 방안’이 있어야 한다. 개방경선의 취지는 입당 여부를 넘어 지지층을 넓게 껴안는 것이다. 다른 정당 지지층에게 자당 후보를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힘 홍준표 의원은 8월 31일 페이스북을 통해 “보수 정당 역사상 대선후보 경선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사은례 가 한 번도 없었다”는 글을 남겼다. [조영철 기자]
국민 선택지 좁히는 ‘개방경선의 역설’
좁은 의미에서 ‘역선택’이란 한 정당의 후보 경선에 다른 정당 지지자가 끼어들어 일부러 경쟁력이 약한 후보를 지목하는 것을 말한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역선택하는 응답자는 극소수”라고 말하지만 이는 논점 이탈이다. 상대 당 후보를 찍지 않을 사람이 다른 정당 경선에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민주당 지지층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한 후보를 지목하더라도 본선에서 민주당 후보를 찍을 확률이 높다. 이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은 자당 지지층의 선택권을 제약하는 것과 마찬가지다.역선택 방지 논란은 결국 ‘정당 경선에서 누구에게, 어디까지 투표권을 줄 것인지’와 연결된다. 밑바탕에는 ‘어떤 정당 모델이 바람직한가’라는 고민이 있다. 역선택 방지를 가장 철저히 시행하는 사례는 당원에게만 투표권을 주는 ‘당원직선제’이고, 반대 사례는 ‘완전개방경선’(오픈프라이머리)이다.
당원직선제에 깔린 정치철학은 다음과 같다. 첫째, 정당은 고유의 정체성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고로 정당 후보는 당의 정체성을 담보한 당원들이 결정해야 한다. 둘째, 외부인에게도 투표권을 주면 대중이 당원으로 가입해 활동할 동력이 떨어진다. 대중이 당원이 돼 적극적으로 활동하는 것이 대중정당의 참모습이다. 셋째, ‘국민’은 본선에서 결정권을 가지면 된다. 각 정당 당원이 책임지고 후보를 내야 국민이 받아들 선택지도 풍부해진다. 국민이 여러 정당 경선에 모두 개입하면 비슷한 후보들만 본선에 나와 오히려 선택지가 좁아진다.
당원직선제도 단점이 있다.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아도 당내 소수파가 경선에서 떨어질 수 있다. “당원들도 대중적 인기를 감안해 투표한다”는 설득력 있는 반론이 있지만 늘 그랬던 것은 아니다. 당원 구성이 일반 지지층과 괴리가 있을 경우 지지층을 잘 대변한다는 보장도 없다. 2007년 대선 당시 민주노동당 경선이 그 예다. 당시 당내 다수파의 후원을 받은 권영길 후보가 승리했지만, 지지층 다수는 “심상정, 노회찬 후보가 나왔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아쉬워했다.
완전개방경선은 “일반국민의 선호를 반영하겠다”는 취지로 고안됐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처럼 당비가 극소액이면서 일반 당원의 활동이 부진한 정당일수록 적극적으로 채택하는 경향이 있다. 스스로가 당원직선제를 그리 신뢰하지 않아서다. 경선을 외연 확장 기회로 보고 완전개방경선을 추진하는 측면도 있다. 복수(複數) 유력 주자를 보유한 거대 정당은 그들의 대결에 다수 국민을 동원할 필요성을 느끼게 마련이다.
다만 선거인단을 모집하는 방식이면 대중성보다 조직력이 크게 작용할 수 있다. 국민 혹은 기존 당원 선호도는 낮아도 지지자 다수를 선거인단으로 조직할 수 있는 후보가 유리한 고지를 점한다. 조직 동원에 우려나 피로감을 갖는 정치인 또는 정당이 선거인단 모집보다 여론조사에 매력을 느끼는 이유다. 4·7 재보궐선거 전까지 5년간 선거에서 연달아 참패한 국민의힘은 재보선과 6월 당대표 선거에 이어 이번 대선 경선에서도 일반국민 여론조사를 도입한 바 있다.
여론조사는 선거인단 경선보다 국민이나 지지층 여론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 단, 다른 정당을 지지하지 않을 사람까지 조사 대상으로 삼으면 항간의 주장대로 ‘한국 국가대표 선수를 선발하는 데 일본 사람이 끼어드는 꼴’이 될 수 있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지지층과 무당층에만 투표 기회를 주자”는 ‘역선택 방지’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당대표 선거 때 진행한 일반국민 여론조사에서도 지지 정당을 물은 뒤 국민의힘 지지층과 무당층에게만 투표권을 줬다.
지지층 선호·확장 잠재력 모두 반영해야
홍준표 의원과 유승민 전 의원 측은 “우리 당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선호받는다는 것은 외연 확장성이 있다는 증거”라며 ‘역선택 방지’가 불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일리 있다. 두 후보가 다른 후보들보다 민주당 지지층 마음을 돌릴 가능성이 비교적 크고, 민주당 지지층이 마음을 돌리면 이들 후보를 선택할 공산이 상대적으로 높다고 볼 수는 있다. 문제는 민주당 지지 수준이 적극적일수록 그럴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점이다. 무당층 유권자도 민주당 후보를 지지할 수 있는 판국인데, 민주당 지지자가 국민의힘 후보를 본선에서 지지할까.지지층의 선호와 확장 잠재력을 모두 반영할 여론조사 방안은 없는 걸까. 다음은 국민의힘 외에도 향후 일반국민 여론조사 경선을 채택할 정당이 참고할 만한 방법이다. 첫째, 특정 정당 지지 여부에 따라 표 무게를 달리하는 방식이다. 지지층과 무당층에게 1표를 주고 다른 정당 지지층에게 0.5표를 주는 식이다.
둘째, 다른 정당 지지층을 소극적 지지층과 적극적 지지층으로 분류해 전자에게만 기회를 주는 방식이다. 전화면접으로 정당 지지율 여론조사를 할 때 무당층이라고 응답하면 대개 지지 정당을 한 번 되묻는데, 이때 특정 정당을 지지한다고 답변해도 해당 정당 지지에 합산한다. 이를 활용해볼 법하다. 한 번 만에 지지 정당을 지목한 응답자는 ‘적극적 지지자’로 분류해 경선 여론조사에서 배제하는 것이다.
셋째, 일반국민 여론조사 비중이 크면 역선택 방지를 하고, 당원 투표 비중이 크다면 하지 않는 방법이다.
넷째, 정책 관련 질문을 넣어 다른 당 지지층을 어느 정도 걸러내는 방안도 있다.
여론조사 경선을 실시하는 정당이라면 반드시 ‘걸러내기 방안’이 있어야 한다. 개방경선의 취지는 입당 여부를 넘어 지지층을 넓게 껴안는 것이다. 다른 정당 지지층에게 자당 후보를 결정할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