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지호영 기자
“양사 공급량, 엔비디아 수요 60∼70% 충족”
박재근 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석학교수 겸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회장은 AI 산업 급성장이 촉발한 글로벌 반도체 품귀 현상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최근 AI 칩 시장을 주도하는 엔비디아의 주문이 폭주하면서 HBM(고대역폭메모리)을 공급하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시장 안팎에선 메모리 반도체 ‘램(RAM)’과 인류 최후의 전쟁을 뜻하는 ‘아마겟돈(Armageddon)’을 합친 ‘램마겟돈’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메모리 반도체 공급 부족이 계속됨에 따라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는 ‘100만닉스’ ‘20만전자’를 달성하는 기염을 토했다. “지난해 말 HBM 가격은 7월 대비 2배 가까이 올랐는데, 현재 두 기업의 공급량은 엔비디아 수요의 60~70%밖에 충족하지 못해 당분간 공급자 우위 시장이 계속될 것”이라는 게 박 교수의 분석이다.박 교수는 1985년 삼성전자에 입사해 한국 반도체산업 성장기를 현장에서 겪은 전문가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소재기술그룹장과 생산기술센터 기술고문을 지낸 그는 1999년 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반도체 연구와 후학 양성에 힘쓰고 있다. 2월 19일 서울 성동구 한양대 연구실에서 박 교수를 만나 AI 반도체 사이클 전망과 SK하이닉스, 삼성전자의 경쟁력에 대해 자세히 들었다.
HBM과 D램 수급 불균형이 언제까지 계속될 것으로 보나.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 생산설비 증설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당장 성과를 보기는 어렵다. SK하이닉스는 청주 공장의 낸드플래시용 클린룸을 일부 HBM용으로 돌려 4만5000장 규모 증설을 하고 있다. 또한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첫 공장을 가동해 HBM을 생산할 계획인데, 이듬해 생산이 궤도에 오를 것이다. 삼성전자의 경우 경기 평택4공장(P4)에 6만∼6만5000장 규모를 증설 중이고 스마트폰·PC용 D램 생산설비를 풀가동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평택캠퍼스에 짓는 5공장(P5)은 2028년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두 기업의 생산설비 증설이 마무리되고 그 물량이 100% 나오려면 2028년은 돼야 한다. 다시 말해 그때까진 HBM용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이 계속될 공산이 크다.”

삼성전자가 최근 양산 출하한 HBM4.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절치부심 끝에 HBM4 승부수 성공”
현재 진행 중인 증설만 끝나면 수급 균형이 맞춰지는 건가.“두 기업의 반도체 생산량이 지금보다 늘어도 부족 현상은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피지컬 AI라는 변수 때문이다. 2030년 즈음 로봇과 자율주행차 산업 성장으로 HBM 수요가 또 다시 크게 늘어날 것이다. 로봇과 자율주행차는 저마다 AI 가속기를 장착한다는 점에서 하나하나가 작은 AI 데이터센터라고 할 수 있다. 그 외에 다양한 온디바이스 AI 제품이 크게 늘면서 HBM뿐 아니라 저전력 DDR(LPDDR) 수요도 급증할 전망이다.”
‘AI 투자 과잉론’은 어떻게 보나.
“지금까지 AI 산업의 기본 구도는 엔비디아가 오픈AI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오픈AI가 데이터센터를 확장하며, 다시 엔비디아 가속기를 구입하는 것이었다. 이 때문에 ‘엔비디아가 자기 돈을 돌고 돌리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AI 프로세스는 크게 학습과 추론으로 나뉘는데, 학습 분야에서 기초를 닦은 빅테크와 여러 후발 주자가 추론 시장에서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다. 이처럼 AI 추론 서비스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데이터를 보관하는 데이터센터 수요도 증가한다. 여기에 세계 각국이 소버린 AI를 확보하고 나서면서 데이터센터, AI 가속기 수요가 늘어난 것도 중요한 변화다. 기존에는 일부 빅테크에만 필요한 줄 알았던 데이터센터 수요가 전방위적으로 늘어난 것이다. 앞으로도 엔비디아를 중심으로 AI 가속기 판매가 계속 증가하고 그에 따라 반도체 수요도 커질 것이다.”
최근 삼성전자가 HBM4 양산 출하 면에서 SK하이닉스에 앞서는 모습이다.
“한동안 ‘기술의 삼성’이라는 말이 무색할 만큼 기술 측면에서 SK하이닉스가 삼성전자에 앞서는 상황이었다. 내 개인적 평가가 아니라 테크인사이츠 등 세계적 반도체 조사 기관들의 평가가 그랬다. 전영현 부회장(디바이스솔루션 부문장) 부임 후 삼성전자는 HBM 경쟁력 제고를 위해 D램 설계를 다시 하고, 발열 문제를 해결하고자 본딩 기술 개선에도 나섰다. 절치부심한 끝에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고, 이후 HBM4에 승부를 걸어 웨이퍼를 선제 투입하는 결정을 내렸다. 결과적으로 최신 HBM을 세계에서 가장 빨리 엔비디아에 납품하게 됐다. 만약 엔비디아 납품이 실패했다면 웨이퍼를 모두 버리게 되는 셈인데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향후 두 기업은 반도체 연구개발에서 어떤 점에 집중해야 하나.
“앞으로 그래픽처리장치(GPU) 속도 증가를 따라잡으려면 HBM 자체 데이터 전송 속도도 같이 빨라져야 한다. 장기적으로 차세대 HBM에 필요한 3차원 D램을 개발하는 게 주요 과제다. 3차원 D램은 저장 공간인 셀을 수직으로 쌓는 게 핵심이다. 기존에 회로를 계속 작게 만드는 과정에서 봉착한 한계를 극복하려는 것이다. 현재 산업 발전 속도를 보면 2029년에는 3차원 D램 개발을 완료해야 차세대 HBM을 제대로 만들 수 있다. 지금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모두 3차원 D램 실용화를 위한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데 앞으로 2∼3년이 관건이다.”

경기 용인시 처인구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공사 현장. 동아DB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
최근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 주가 급등으로 과열 우려도 큰데.“요즘 두 기업은 내 반도체 연구 인생 40년에서 처음 보는 호황을 누리고 있다. 현재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의 매출, 영업이익, 사업 전망 등을 보면 현 주가는 오히려 저평가된 셈이다. 게다가 올해 두 기업의 메모리 반도체는 이미 완판됐고, 내년 물량도 완판 직전이라고 한다. 오죽하면 여러 기업 관계자가 LTA(장기공급계약)를 맺으려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본사 근처에 숙소를 빌려 상주하겠나. 물론 주가가 매출과 영업이익으로만 결정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당분간 반도체 공급 부족이 전망되고 AI 산업의 성장도 지속될 것으로 보이는 만큼 두 기업 주가는 더 오를 것 같다.”
정부와 반도체업계가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면.
“반도체는 타이밍 산업이다. 정부가 적어도 10년 앞은 내다보고 전력과 물 공급망 같은 인프라를 구축해야 한다. 기업은 재빠르게 공장을 증설하는 게 필요하다. 이런 준비가 늦어지면 미래 시장을 놓칠 수밖에 없다. 2월 19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한국 반도체 인재 영입 의사를 밝혔다. 앞으로 테슬라 헤드헌터들이 한국 반도체 인재들에게 채용 제안을 해올 것이다. 직업 선택의 자유가 있기에 개개인이 좋은 조건으로 이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국가 산업 측면에서 보면 리스크이기도 하다.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는 물론, 국내 소재·부품·장비업체들은 테슬라의 적극적인 스카우트에 대비해 인재들을 잘 관리할 필요가 있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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