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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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로3가 만두전쟁 터졌다

한 판에 1000원 ‘만두생각’ 상표분쟁 이어 입맛 경쟁 … 봄 앞두고 새 메뉴 개발 열기도 후끈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입력2004-02-05 10: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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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종로3가 만두전쟁 터졌다
    지난해 10월, 젊은이들이 많이 모이는 서울 종로3가 모퉁이에 한 작은 만두 가게가 문을 열었다. 이름은 ‘만두생각’.

    가게 이름처럼 주인의 만두에 대한 ‘생각’은 남달랐다. 메뉴는 달랑 만두 하나였고 좌석은커녕 길가에 만두통과 젓가락, 노란 단무지를 산같이 쌓아놓고 손님이 알아서 먹게 했다. 가격은 단돈 1000원. 찜통에서 숨 가쁘게 뿜어져 나오는 허연 김 속에서 학생들과 노인들, 직장인들이 섞여 순식간에 만두 한 판씩을 먹고 사라지는 진풍경이 벌어졌다.

    가게 안에서는 신기한 만두 기계가 1초에 1개꼴로 만두를 떨궈냈고 찜통 위에선 수백 판의 만두가 동시에 김을 뿜어냈다. 날씨가 추워질수록 1000원 만두는 인기를 얻어 가게 앞엔 줄이 만들어졌다. 12월엔 이 가게에서 하루에 4000판씩 만두를 팔았다.

    그러던 1월 초, 늘씬한 도우미 언니들이 동원된 가운데 바로 옆에 또 다른 1000원짜리 만두가게가 개업했다. 그런데 이 가게 이름도 ‘만두생각’이었다. 가게가 더 작고 만두 모양은 달랐지만 영락없는 ‘모방’ 가게였다.

    유달리 ‘오리지널’과 ‘원조’를 좋아하는 우리나라 소비자들은 ‘장사 좀 된다고 바로 옆에 이름까지 똑같은 가게를 낸 ‘후발 주자’를 외면했다. 먼저 생긴 ‘만두생각’은 여전히 붐볐고 나중에 생긴 ‘만두생각’은 썰렁했다.



    그러나 열흘 뒤 먼저 생긴 ‘만두생각’은 ‘만두매니아’로 간판을 바꿔달았다. 무슨 사연인지 ‘오리지널’이 후발 주자에게 이름을 내준 것이다. 이어 두 가게 건너, 또 그 옆 맞은편 포장마차에도 1000원 만둣집들이 속속 문을 열었다. ‘만둣나라’ ‘소문난 만두’ ‘원조 만두’ 등 불과 보름 사이에 종로3가는 ‘만두 공화국’이 되었다.

    처음 2곳에서 이젠 10여곳으로 늘어

    종로3가 만두전쟁 터졌다

    종로3가에는 젊은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값싸고 맛있는 상품을 생산하는 업체들이 시장 반응을 알아보기 위해 1호로 직접 운영하는 상점들이 많다. 이곳 만두 가게들도 대개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운영해 ‘만두전쟁’이 치열하다.

    만둣집이 2곳에서 10여곳으로 늘어나니, ‘만두매니아’와 ‘만두생각’의 만두 전쟁도 유달라 보이지 않게 되었다. 이제 손님들은 ‘의리’보다 ‘입맛’에 따라 마음에 드는 가게를 찾는다.

    “만두란 게 원래 정으로 먹는 거니까, 험하게 법으로 하지 말자고 사장님들끼리 신사협정을 했지요.”

    ‘만두매니아’와 ‘만두생각’ 관계자들의 말이다.

    1000원 만두의 역사는 2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만두는 지갑을 꽁꽁 닫아둔 소비자들을 겨냥한 길거리 음식으로 처음 선보였지만, 원가를 줄이면서 맛도 떨어졌는지 적어도 서울에선 ‘김떡순’(김치전+떡볶이+순대볶음)에 밀려버린 아이디어였다. 지방에서 겨우 명맥을 이어가던 만두는 지난해 가을 냉동이 아닌 생만두를 만들어 파는 ‘만두생각’(현 만두매니아)이 종로3가에서 개업하면서 공전의 히트를 쳤다.

    ‘만두생각’과 ‘만두매니아’는 각각 먼저 1000원 생만두의 아이디어를 만들어냈다고 주장한다. 또한 ‘만두생각’이란 이름도 제각기 독자적으로 만들어낸 상표라고 말한다. ‘만두매니아’의 금승호 사장은 “ ‘만두짱’과 ‘만두생각’을 놓고 고민하다 냉동이 아닌 생재료임을 강조하기 위해 ‘만두생각’으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그러나 ‘만두생각’의 상표권을 먼저 갖고 있는 쪽은 새참 F&B의 양충훈 사장이었다.

    지방에서 ‘만두생각’ 프랜차이즈점을 운영하던 새참 F&B의 양사장은 종로3가에서 금사장의 ‘만두생각’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자 서울로 입성, 바로 옆 커피전문점 자리에 ‘만두생각’을 개업했다.

    이런 이유로 금사장의 ‘만두생각’과 양사장의 ‘만두생각’이 종로3가에 본사 직영점을 내고 1000원 만두의 맛으로 진검승부를 겨루게 된 것이다. 경제난 속에서 두 명의 눈치 빠른 사업가가 원가를 줄이기 위해 기계 생산이 가장 쉬운 음식을 찾았는데, 그것이 만두였던 것.

    서른여섯 젊은 나이지만 중학교 졸업 이후 가락시장에서부터 20년 동안 온갖 일을 다 해봤다는 금사장은 “승부욕과 성공한다는 자신도 있었다. 1000원 상품은 경기를 타지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새참 F&B의 양대훈 실장은 “지방에서 ‘만두생각’ 프랜차이즈점을 하는데, 종로3가의 다른 ‘만두생각’이 방송을 타면서 우리 상표와 혼동되는 걸 그냥 보고 있을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나란히 붙은 ‘만두생각’의 분위기는 험악했다. 금사장은 종로3가의 ‘만두생각’이 유명해져 지금의 만두 붐을 일으켰다고 생각했고, 양사장은 엄연히 법적으로 ‘만두생각’ 상표권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둣집 두 사장은 법정으로 가기 직전 금사장의 ‘만두생각’을 ‘만두매니아’로 바꾸는 선에서 합의했다. 어쨌든 금사장이 상대의 ‘만두생각’ 지명도를 높인 공로를 인정하고, 양사장이 가진 상표권도 존중하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만두매니아’ 홈페이지는 www. manduthink.co.kr 이고 ‘만두생각’은 www.scham.co.kr이다. )

    또한 어렵게 성공한 생계형 사업임을 서로가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에 법정에서 한쪽을 죽이는 일만은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기계로 생산해도 맛과 모양은 달라

    종로3가 만두전쟁 터졌다

    한 판에 1000원인 ‘만두매니아’(왼쪽)와 ‘만두생각’의 만두. 기계로 만들었지만 모양도 맛도 많이 다르다.

    금사장네와 양사장네는 공교롭게도 같은 시기에 각기 다른 만두 기계를 개발해 양쪽 집은 만두 모양도 다르고 맛도 많이 다르다. 금사장네 만두는 주머니(포자)형이고 양사장네는 길쭉한 모양을 마지막 단계에서 손으로 접어 만든다. 양사장네 만두가 전통에 가까운 부드럽고 푸근한 맛이라면, 금사장네는 강한 맛을 선호하는 우리나라 사람 취향에 맞게 고기만두는 감칠맛이 느껴지고 김치만두는 꽤 매운맛이 난다. 만두피를 속이 비칠 만큼 투명하게 하는 것이 포인트여서 양쪽 집이 경쟁이나 하듯 피가 얇다.

    변두리 분식점에서도 2500원씩은 하는 만두 한 판이 1000원이니 재료의 품질과 위생관리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손님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도 “왜 이렇게 싸냐”는 것이다.

    ‘만두생각’처럼 식재료의 ISO 품질인증을 강조하는 가게를 포함해 대부분 생만둣집은 전날 밤에 만두소와 만두피 반죽을 새로 만들어 아침마다 배송한다고 한다. 원가가 400원 정도라도 물류비용이 많이 들어 점포당 500판은 팔아야 한다. 이 정도를 팔지 못하고 1000원 만두를 판다면 냉동만두를 쓰는 게 틀림없다고 한다. 종로3가의 만두 전쟁 덕분에 지금은 생만두 프랜차이즈만 5~6개가 되었고, 군소 냉동만두 프랜차이즈점까지 더하면 10개가 훨씬 넘는다.

    만두 전쟁은 끝났지만 만두 가게의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바야흐로 봄을 앞두고 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 만두의 인기는 뜨겁지만 날이 더워지면 다시 돌아올 겨울까지 배턴을 받아줄 새로운 음식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만두매니아’와 ‘만두생각’은 똑같이 극도의 보안 속에서 새로운 메뉴를 개발 중인데 조만간 다시 종로 매장에서 ‘시식’ 이벤트를 열 계획이다. 양측 모두 1000원 생만두 못지않은 ‘대박’을 장담하고 있는데, 성공 신화를 만든 만두의 고마움을 잊지 않겠다는 뜻에서인지 ‘만두와 잘 어울리는 음식’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도 공교롭게 똑같다.

    이들은 단돈 1000원짜리 만두 한 판을 만들기 위해 피를 말리는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한 만두 프랜차이즈점 사장은 “이것도 도박이다. 만두 다음에 뭐가 나올지 모른다. 따라서 소자본 창업을 꿈꾸는 일반인들은 특별히 조심해야 한다. 만두로 큰돈 벌겠다는 생각도 금물”이라고 충고했다. 서민들에게 1000원 만두가 더 특별하다면 그건 바로 그 속에 담긴 ‘인생역전’의 맛 때문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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