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416

2023.11.24

‘디플레’ 위기 마주한 중국, 일본 전철 밟을까

[홍춘욱의 경제와 투자] 만성적 소비 부진·과잉투자 불러온 ‘금융 억압’ 정책 지속 가능성 커

  • 홍춘욱 이코노미스트·프리즘투자자문 대표

    입력2023-11-30 09: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최근 중국 생산자물가 상승률이 13개월 연속 마이너스를 기록하면서 디플레이션(경기침체 속 물가하락) 공포가 커지고 있다. 디플레이션이 무서운 이유는 일본 사례에서 보듯이 아무리 금리를 낮춰도 경기가 살아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물가상승률이 -3%라면 정책금리를 제로(0)로 낮추더라도 기업이나 소비자가 느끼는 체감금리는 +3%가 되니 정책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디플레이션을 막을 수 있을까. 가장 쉬운 방법은 역시 금리인하인데 이 방법은 장기적으로 디플레이션 위험을 더 키울 가능성이 크다. 특히 중국의 경우 30년 넘게 금융 억압 정책을 시행한 결과 디플레이션 압력이 더 높아진 상태다. 여기서 금융 억압(financial repression)이란 시장의 균형 수준보다 훨씬 낮은 금리로 예금 및 대출금리를 통제하는 정책을 말한다. 이렇게 하면 대출 받을 수 있는 기업이나 유력인은 큰 이익을 보지만 가계는 자산 축적 수단을 잃게 된다.

    무분별한 투자와 무역분쟁 촉발한 금융 억압

    물론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하는 방법이 대안이 될 수 있겠지만 중국 부동산 가격은 이미 세계적으로도 비싼 수준에 도달했고, 주식은 2008년과 2015년 폭락 사태로 신뢰를 잃은 상태다. 그 결과 중국 가계는 부동산과 이길 수 없는 전쟁을 시작하게 됐다. 토끼처럼 뛰는 집값을 따라잡으려고 어떻게든 더 많은 돈을 저축해야 하는 거북이 꼴이 된 것이다.

    중국의 금융 억압 정책 결과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 ‘그래프1’이다. 중국 저축률은 거의 50%에 이르는데, 이는 가계가 소비를 극단적으로 줄이고 저축에 몰두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풍부한 저축과 저금리를 바탕으로 투자 비중이 국내총생산(GDP)의 45%에 근접하다 보니 중국 기업들은 단기 수익 변화에 신경 쓰지 않는 모습이다.

    여기까지만 보면 금융 억압 정책이 큰 효과를 거둔 것 같다. 그러나 201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두 가지 심각한 문제가 발생했는데, 첫 번째는 국영기업의 경영 효율성이 날이 갈수록 떨어진 것이다. 투자 성과가 나지 않으면 사업을 중단하거나 다른 목표로 전환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국영기업 경영자가 이런 유연성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국영기업 실적 부진보다 더 큰 문제는 무역분쟁 촉발이다. 2016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과 무역분쟁이 발생한 것도 기술 도둑질 및 정부의 보조금 지급 문제 때문이다. 정부가 국영기업 혹은 관계 기업에 무제한에 가까운 자금을 공급하는 상황에서 공정한 경쟁이 벌어질 수 있느냐는 미국 기업들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은 것이다.

    무분별한 투자가 잔뜩 이뤄진 상태에서 수출길이 막히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답은 가격인하 경쟁이다. ‘그래프2’는 중국과 일본의 대미 수출제품 가격 변화를 보여주는데, 중국의 수출제품 가격이 급락한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2008년과 2022년 두 차례에 걸쳐 원유 및 식량 가격이 급등했는데도 중국의 대미 수출제품 가격은 2004년에 비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폴 크루그먼 미국 뉴욕시립대 교수는 8월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금융기관에 대한 정부 통제를 풀고 금리 자유화 조치를 취한다면 가계 소득과 소비가 크게 늘어나면서 경제 전반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한다. 중국의 만성적 소비 부진과 과잉투자 문제를 유발한 책임이 ‘금융 억압’에 있으니 이를 없애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얘기다.

    공산당-국영기업-지방정부 강력한 네크워크

    하지만 중국 정책당국이 이 조언을 받아들일 것 같지는 않다. 정책당국과 국영기업은 사실상 한 몸이기 때문이다. 최근 전미경제연구소(NBER)에 실린 흥미로운 논문에 따르면 중국 정책당국이 반부패 캠페인을 벌일 때마다 국영기업이 주거용 토지를 인수하는 비율과 물량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이유 또한 금융 억압 정책 때문이다. 국영기업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돈을 빌려 다양한 곳에 투자하는데, 가장 많은 투자가 이뤄진 분야가 바로 부동산이다. 경제가 성장하는 만큼 소득이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주택 가격도 경제성장률만큼 상승할 가능성이 큰데, 차입금리가 그보다 훨씬 낮으니 큰 수익이 보장되는 것이다.

    따라서 정부가 반부패 개혁을 명분으로 주택 매수를 억제할 때 국영기업들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 부동산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서 국영기업은 큰 이익을 얻고, 지방정부는 토지 매각 대금을 회수해 두둑하게 돈을 벌며, 공산당은 더욱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이와 같은 강력한 네트워크를 깨뜨리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결국 중국 정부는 재정지출을 확대함으로써 경기를 부양하는 한편, 부동산 관련 규제를 완화해 주택 가격 상승(국영기업의 수익성 개선)을 용인하는 방향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이런 조치는 당장 경기회복을 유발할지는 모르나 경제 전반의 공급과잉 압력을 더욱 높이는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된다.

    *유튜브와 포털에서 각각 ‘매거진동아’와 ‘투벤저스’를 검색해 팔로잉하시면 기사 외에도 동영상 등 다채로운 투자 정보를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