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 기업이) 맥주나 냉동만두 값은 그대로 두고 양(量)만 줄였다는 것도 뉴스를 보고 뒤늦게 알았다. 대형마트에 가면 가격표에 제품 100g당 가격이 얼마인지 써 있긴 하지만, 같은 제품의 용량이 어떻게 변했는지 일일이 체크할 순 없지 않나. 체감상 월급보다 물가가 더 빠르게 오르는 데다, 내 집을 마련하면서 받은 대출 이자도 부담스러워 그냥 소비 자체를 줄이는 게 답인 것 같다.”(서울 마포구에 사는 40대 직장인 김 모 씨)
정부 눈치 보며 소비자 저항 줄이려는 의도
[사진· 각사 홈페이지]
올해 들어 국내 식품업계에 만연한 슈링크플레이션 사례가 언론과 소비자 레이더망에 여러 번 잡혔다. 해태제과는 7월 냉동만두 스테디셀러인 ‘고향만두’ 용량을 415g에서 378g으로 줄였다(인포그래픽 참조). 동원F&B는 6월 기존에 캔당 100g이던 ‘동원참치 라이트스탠더드’ 통조림 중량을 90g으로 낮췄다. OB맥주는 4월 ‘카스’ 번들 제품 용량을 캔당 375㎖에서 370㎖로 줄였다. 풀무원은 3월 ‘탱글뽀득 점보 핫도그’ 1봉지에 든 핫도그 개수를 기존 5개(500g)에서 4개(400g)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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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업계에서는 원부자재 및 인건비 상승으로 가격인상 압박이 강해졌으나, 정부의 물가상승 억제 기조를 어길 수 없어 슈링크플레이션이나 스킴플레이션에 나섰다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다양한 형태로 가격을 인상한 상당수 식품업체의 3분기 영업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적게는 두 자릿수, 많게는 세 자릿수 성장률을 보인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 원성은 더 높아지고 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대다수 기업의 슈링크플레이션, 스킴플레이션은 제품 용량과 재료 변화를 표시했다는 점에서 불법은 아니지만 일종의 소비자 기만에 가깝다”면서 “제품 단위가격이 얼마나 올랐고, 품질에 직접 영향을 끼치는 재료 함량이 어떻게 변했는지를 소비자가 실질적으로 파악할 수 있도록 기업 고지 의무를 강화하는 등 조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6년 만에 미국 추월한 한국 물가
꼼수 가격인상은 해외도 비슷하다. 미국 글로벌 소비재업체 P&G는 최근 ‘차밍 울트라 화장지’의 롤당 화장지 장수를 기존 264장에서 244장으로 줄였다. 소비자들이 화장지를 구입할 때 개수는 따질지언정 롤당 장수까지 신경 쓰지 않는 점을 교묘히 노린 것으로 보인다. 주류 제품의 알코올 함량을 줄이는 드링크플레이션(drinkflation)도 등장했다. 17세기 설립된 영국 최고(最古) 맥주 양조장 브랜드 ‘셰퍼드 님’은 자사 제품의 알코올 함량을 슬그머니 줄였다가 구설에 올랐다. 이 회사는 ‘비숍스 핑거’ ‘스핏파이어’ 맥주의 알코올 도수를 각각 5.4%에서 5.2%, 4.5%에서 4.2%로 낮췄다. 영국 정부가 같은 용량의 술이라도 알코올 도수에 따라 주세를 차등 적용하기로 하자 꼼수를 쓴 것이다.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가운데)이 11월 14일 서울 용산구 한 대형마트에서 주요 품목의 물가를 점검하고 있다. [뉴시스]
“품목별 가격 관리, 물가 잡혔다는 착시효과 우려”
정부가 품목별로 물가를 관리하는 것이 실효성은 크지 않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정부가 특정 품목의 가격인상을 사실상 막고 있는 가운데 원부자재 가격이 높아지자 기업들이 제품 중량을 줄이는 등 꼼수 가격인상에 나선 상황”이라며 “자유시장경제에서 기업의 제품 가격인상을 언제까지고 막을 수 없는 노릇이고, 어느 순간 가격이 큰 폭으로 오르면 물가가 한꺼번에 급등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석 교수는 “품목별 가격을 잡는 조치는 자칫 물가가 안정됐다는 착시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데, 기준금리 결정의 근거 중 하나인 소비자물가지수가 왜곡될 경우 도리어 국민이 고금리-고물가에 더 오랫동안 노출될 가능성도 있다”고 덧붙였다.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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