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서울 동대문구 경동시장 광성상가 4번 출입구로 들어서자 ‘스타벅스 경동1960점’ 간판이 보였다. [이슬아 기자]
1월 18일 오후 서울 동대문구 ‘스타벅스 경동1960점’(경동1960점)에서 만난 최 모 씨가 기자에게 한 말이다. 경동1960점은 지난해 12월 스타벅스코리아(스타벅스)가 경동시장 안에 30년 가까이 방치된 경동극장을 리모델링해 문을 연 매장이다. 폐극장의 계단식 구조, 발코니 좌석 등 공간적 특징을 그대로 살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 입소문을 타고 있다. 이날 오후 2시쯤 기자가 찾은 경동1960점은 이미 만석이었다. 최 씨를 비롯한 고객들이 매장 맨 위쪽 빈 공간에서 자리가 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지점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메뉴가 있는 것도 아니지만 ‘이색 공간’이라는 점이 2030세대의 발길을 경동시장으로 이끌고 있었다.
경동시장 상인회가 먼저 손 내밀어
경동1960점은 전통시장 안에 문을 연 첫 스타벅스 매장이다. 같은 날 경동시장 광성상가 4번 출입구로 들어서자 쌀, 인삼 등을 파는 상점들 사이로 스타벅스의 상징이기도 한 ‘사이렌(세이렌)’ 간판이 보였다. 경동1960점을 찾아가려면 이들 상점이 늘어선 골목을 지나야 하기에 경동1960점 고객은 고스란히 경동시장의 유동인구가 되고 있었다. 경동시장 안에서 건어물 가게를 운영하는 윤 모 씨는 “경동시장은 과거부터 한약재를 파는 상점 비중이 커서 오래된 단골손님이 주 고객인데 경동1960점 개점 이후 젊은 사람이 많이 유입되고 있다”고 말했다.경동1960점이 문을 연 뒤 경동시장 상인들의 매출도 크게 늘었다. 특히 경동시장 내 푸드코트 역할을 하는 ‘청년몰’이 활기를 되찾았다. 이날 오후 3시가 넘어 찾아간 청년몰에는 점심시간이 지났음에도 적잖은 사람이 있었다. 20개 남짓한 테이블 중 7개에 커피를 마시거나 늦은 식사를 하는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이곳에서 ‘청년한식’을 운영하는 전훈 청년몰 대표는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이 시간에 손님이 있다는 건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청년몰 내 모든 점포의 매출이 50% 이상 늘었고 우리 식당은 2배 이상 증가했다”고 전했다.
경동1960점 개점으로 대기업과 전통시장의 오랜 대결 구도에 변화가 생기고 있다. 자발적으로 전통시장을 찾을 일이 드문 2030세대에게 경동1960점이 하나의 유인이자 매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효과를 위해 경동시장 상인연합회가 먼저 스타벅스 측에 입점 제안을 한 것으로 알려져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영백 경동시장 상인연합회 대표는 “경동1960점 방문객이 모두 (경동시장에서) 물건을 사지 않더라도 젊은 층이 전통시장을 경험할 계기가 생긴다는 것 자체가 긍정적”이라며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해서는 대기업과 상생을 시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고 말했다.
경동1960점은 스타벅스가 매장 수익금의 일부를 지역사회에 환원하는 ‘커뮤니티 스토어’ 5호점이다. 사진은 매장 입구에 부착된 커뮤니티 스토어 설명. [이슬아 기자]
1월 18일 오후 2시쯤 스타벅스 경동1960점은 만석이었다. 내부 빈 공간에서는 고객들이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다. [이슬아 기자]
“전통시장 내 유휴부지 적극 활용해야”
스타벅스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차원에서 경동1960점 개점을 결정했다. 경동1960점은 스타벅스가 지역사회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매장 운영 수익금의 일부를 환원하는 ‘커뮤니티 스토어’ 5호점이다. 스타벅스 관계자는 “경동1960점은 전통시장 활성화라는 상생 측면과 함께 폐극장을 활용해 고객 경험 요소를 강조한 새로운 공간을 만들겠다는 도전의 산물”이라면서 “현재 경동1960점에 하루 평균 1500~1700명 고객이 찾아오는 등 큰 관심을 얻고 있는데 이를 발판으로 향후에도 고객과 지역사회 모두로부터 환영받는 매장을 지속적으로 발굴해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전문가들은 공간 창조를 통해 전통시장을 활성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동1960점을 호평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유통업계의 주축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는 상황에서 오프라인은 고객에게 새로운 공간에 대한 경험을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며 “전국 전통시장 내 유휴부지를 이처럼 매력적인 공간으로 탈바꿈해 상생하는 시도가 더 적극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가장 낡은 것과 가장 현대적인 것의 조화에 2030세대가 흥미를 느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 교수는 “다만 향후 전통시장에 대기업 자본이 대거 들어가 원래 있던 상인을 몰아내는 식으로 흘러가면 그때는 고객으로부터 식상하다는 반응이 나올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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