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1월 11일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손을 흔들고 있다. [대통령실 제공]
더불어민주당(민주당) 황명선 대변인이 김건희 여사의 대구 중구 서문시장 방문 다음 날인 1월 12일 내놓은 논평이다. 최근 민주당에 복당한 박지원 전 국가정보원장도 같은 날 CBS 라디오에 출연해 “영부인 부속실이 없고 대통령실의 관리를 받고 있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이어 “그러면 나중에 대통령 행세한다는 오해가 생길 것”이라고 경고했다.
김 여사가 서문시장 찾은 까닭
김 여사는 그동안 각종 논란에 직면했다. 김 여사의 발언과 행보는 물론, 가방 등 장신구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아랍에미리트(UAE) 국빈 방문길에 든 가방은 물론, 셰이크 만수르 빈 자이드 알 나흐얀 UAE 부총리 겸 대통령실 장관과의 대화 등이 주목받았다. UAE에 파병된 아크부대를 방문하는 과정에서 김 여사가 윤 대통령과 나란히 군복을 입은 것을 두고 ‘군복 논란’이 일기도 했다. 일각의 과도한 문제 제기에 탁현민 전 대통령 의전비서관이 “(군부대에서) 군복 착용은 당연한 것”이라며 옹호하는 일도 있었다.최근 행보 중에서도 서문시장 방문은 유독 상징적이다. 대선 주자들은 그동안 재래시장을 많이 찾았다. 특히 서문시장은 보수의 심장으로 불리는 대구에 자리한 유서 깊은 재래시장으로, 보수 대권 주자들이 늘 찾는 장소다. 윤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이던 2022년 3월, 당선인 시절이던 2022년 4월, 대통령이 된 후 2022년 8월 등 3차례나 찾았다. 국정수행 지지율이 30% 전후까지 떨어졌던 지난해 8월 서문시장을 방문했을 때는 “어려울 때 서문시장과 대구시민을 생각하면 힘이 난다. 기운 받고 가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김 여사가 서문시장을 찾은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나경원 전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이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 하루 전인 1월 10일 사의를 표명한 일이다. 이미 대통령실이 나 전 부위원장과 대출 탕감 저출산 대책으로 며칠째 논란을 겪는 와중이었다. 논란의 중심은 나 전 부위원장의 당대표 출마 여부였다.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 이틀 뒤인 1월 13일 윤 대통령은 나 전 부위원장을 해임했다. 가장 강도 높은 경고 조치다. 이로써 윤 대통령이 친윤석열(친윤)계 당대표를 원한다는 의중이 다시금 확인됐다. 나 전 부위원장에게 관심이 한창 집중되던 시점에 김 여사가 서문시장을 방문한 것은 그런 점에서 예사롭지 않다.
친윤계 당대표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역시 가장 중요한 변수는 대구·경북(TK) 지역의 민심이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를 보내 분위기 반전을 꾀한 것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는 이유다. 나 전 부위원장은 몇 달 동안 국민의힘 지지층 사이에서 당대표 적합도 1위를 기록했고 TK 지역에서 지지도 높은 편이다. 나 전 부위원장이 1월 25일 전당대회 불출마를 선언하면서 마무리됐지만 혹여 출마했다면 밴드왜건 효과로 지지도가 더 높아졌을지 모른다. 이를 방지하고자 김 여사를 서문시장으로 보내 주의를 환기한 후 윤 대통령이 해임 조치를 내린 것으로 봐야 한다.
“대통령 부인이라도 와달라는 곳 많다”
김 여사가 서문시장을 방문하기 전날 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검찰 소환 조사를 받았다. 방문 당일에는 이 대표 역시 인천 모래내시장을 방문했다. 최근 집중하고 있는 민생 행보 중 하나다.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에 언론보도가 집중되면서 이 대표의 행보는 묻힌 감이 없지 않다. 이 대표는 모래내시장 방문 직전 인천시당에서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며 윤석열 정부를 향해 맹공을 이어갔다. 이 대표는 “역사의 전진을 믿으면서 정부가 포기하다시피 한 민생 위기 극복에 전념하겠다”고 말했다.경기침체가 장기화하면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의 민생 이슈 선점 경쟁도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대선 운동 기간에 버금갈 정도다. 달라진 점은 윤 대통령의 경우 전국 민생 현장을 누비기에는 제약이 많이 따른다는 것이다. 만약 이 같은 행보를 이어간다면 “국정 돌보기보다 지지율 올리기에 열중한다”는 비판이 쏟아질 것이다.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은 이 대표의 민생 행보 맞불 전략 성격도 지니는 것으로 보인다.
김 여사의 서문시장 방문은 ‘안으로는 나경원’을, ‘밖으로는 이재명’을 제압하는 양면 전략 성격이 강하다. 그런 점에서 김 여사의 민생 현장 투입은 향후에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전당대회 전까지는 친윤계 당대표 만들기 세몰이 차원에서 김 여사 투입이 이뤄질 테고, 이후에는 총선 승리 지지세 결집 차원에서 투입이 이어질 전망이다. 윤 대통령이 직접 다닐 경우 유발될 당무 개입 논란과 선거 개입 논란을 피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은 이미 신년 언론 인터뷰에서 “대통령 부인이 특별히 하는 일이 있겠나 생각했는데 취임해보니 배우자도 할 일이 적잖더라”고 예고한 상태다. “대통령이 못 오면 대통령 부인이라도 좀 와달라는 곳이 많았다”는 것이다.
김 여사는 이미 ‘관저 정치’를 통해 사실상 정치적 행보를 시작한 상태다. 민생 현장 방문까지 증가한다면 더 명백하게 정치 활동을 하는 셈이다. 김 여사의 활발한 정치 활동이 국민의힘 차기 전당대회에서 친윤계 당대표를 만들어내는 데는 도움이 될지 모른다. 당원들은 김 여사를 윤 대통령과 동일시할 것이기 때문이다. 반면 국민 여론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크다. 양날의 칼이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