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9이 신곡 ‘Puzzle’을 발표했다. [FNC엔터테인먼트 제공]
특히 CG(컴퓨터 그래픽)를 이용해 한밤의 빌딩 숲을 날아 들어가 불 켜진 창문 속 멤버들을 보여주며 시작하는 뮤직비디오는 정말 고전적이다. 흑백 정장, 홀스터, 가죽 재킷, 방탄조끼 같은 의상은 물론이고 사무실, 폐쇄회로(CC)TV와 감청장비, 서류가방, 서가, 권총, 공중전화 등이 등장하는 영상은 첩보물의 공간과 소품을 가득히 가져다 놓는다. 그런데 모든 것이 ‘이미지’뿐이다. 한때 케이팝은 온갖 직업의 클리셰를 가져와 ‘콘셉트’로 삼곤 했다. 그러다 ‘세계관’이 업계의 성배처럼 유행하면서 모든 게 달라졌다. 뮤직비디오에 등장하는 기호는 서사적 가치를 담거나 가진 척해야 하고, 감상자에게 상상과 해석의 여지를 제공한다. ‘Puzzle’에는 그것이 전부 빠져 있다.
쉽게 즐기기 좋은 댄스팝
SF9은 스파이들이다. “그래서요?”라는 물음에,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어떤 비밀이 감춰져 있다는 답을 주지 않는다. 팔에 흉터를 가진 인물이 등장해 서류를 불태우기는 하지만, 그의 정체는 별로 궁금하지 않다. 수수께끼가 나머지 맥락과 맺는 관계의 밀도가 낮아서다. 가사와도 관련성을 느낄 수 없다. 사실 구체적인 묘사나 정황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 가사라서 웬만한 장면은 코에 걸면 코걸이 식으로 연결할 수 있을 텐데도 말이다. “흉터남이 연인의 변심을 초래했을까, 애인이 흉터남일까, 화자가 흉터남이고 SF9 한 멤버를 향해 연심을 불태운 걸까” 등이 가지려고 노력하면 겨우 떠오르는 궁금증들이다. 이 뮤직비디오가 ‘스파이’라는 키워드에 더해서 말하는 것은 “멋지지 않나요?” 정도다.그런데 그것이 이 곡의 미덕이다. 팝은 본시 그렇게까지 복잡할 이유가 없다. 스파이가 멋지다는 이미지는 이미 수십 년간 대중문화에서 표현돼왔다. 아이돌이 스파이라는 ‘옷’을 한 번 입어보는 것은 아무도 해치지 않고 단숨에 멋져질 수 있는 기회다. 이미지 소비가 비효율적이라고 반문한다면, 팝의 근본적 속성이 ‘낭비’임을 떠올리자. 더구나 아이돌이 멋져 보이겠다는 목적이 아이돌 산업에서 헛된 일은 결코 아니다. “스파이, 멋지지 않나요?”에 “그래서요?”는 필요 없다.
곡은 차갑고 매끈대는 섹시함을 가진 댄스팝이고, 후렴의 리듬감은 적당히 귀에 맴돈다. 쉬운 멜로디는 이 곡을 틀어놓고 청소나 요리를 하다 문득 손을 멈출 만한 대목을 주지 않는다. 준수한 팝이다. 사실 SF9이 그동안 몇 번이나 상당히 근사하게 선보여온 스타일이다. 이 곡이 마음에 든다면 SF9을 더 들어보는 것도 좋을 듯하다. 너무 신중하게 고를 필요도 없이 셔플 재생으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