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서초구 아크로리버파크 단지 전경. [뉴시스]
그런데 최근 들어 재산세가 서민 가계에 적잖은 부담이 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때 집값이 다락같이 오른 상태에서 무리한 공시가 현실화 조치까지 한꺼번에 영향을 미쳐 생긴 일이다. 서울시가 9월 13일 발표한 9월분 재산세 부과 내역을 보면 이런 상황이 잘 드러난다.
서울시가 부과한 올해 9월 재산세는 모두 419만4000건, 4조5247억 원. 이 가운데 토지분이 77만1000건에 2조8036억 원, 주택분이 342만3000건에 1조7211억 원이다. 전년 대비 건수 기준으로는 5만 건, 액수로는 3975억 원(9.6%)이 늘어났다.
재산세가 이처럼 늘어난 데는 과세표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급등이 직격탄이 됐다. 주택공시가격의 경우 공동주택이 14.22%, 단독주택이 9.95% 상승했다. 여기에 토지개별공시지가도 11.54% 올랐다.
마이너스통장으로 재산세 납부하기도
늘어난 부담을 해결하기 위한 납세자들의 노력은 눈물겹다. 서울 강남에 집 한 채를 가진 중견업체 임원 A 씨는 입주한 지 15년 넘은 아파트가 재건축돼 새로 입주하면서 재산세가 2배 이상 늘어났다. 이에 그는 월급의 상당액을 떼어 1년 만기 정기적금을 부은 뒤 7월 재산세로 쓴다. 9월 재산세는 올해처럼 운이 좋으면 추석 보너스로 해결한다.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마이너스통장을 이용한다. A 씨는 “아직까지 직장을 다니고 있어 재산세 부담을 견디지만, 얼마 남지 않은 퇴직 후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그나마 다행인 건 재산세에 대한 A 씨의 고민이 내년부터는 상당 부분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최근 들어 집값이 하향 안정세를 보이는 가운데 윤석열 정부가 내년 재산세 과세표준으로 적용될 공시가격 산정 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런 방침은 지난달에 이미 시작된 내년 공시가격 산정을 위한 작업에서 가시화하고 있다. 국토교통부(국토부)가 최근 누리집(홈페이지)에 공개한 ‘2023년 표준지공시지가 조사·평가 업무요령’과 ‘2023년 표준주택가격 조사·평가 업무요령’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표준지공시지가는 토지개별공시지가를, 표준주택가격은 개별단독주택을 각각 산정하는 기준이다.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가격을 정부가 산정하면 이를 토대로 해당 부동산이 위치한 지역 지방자치단체 공무원들이 개별토지공시가격과 개별주택가격을 정한다. 아파트 등 공동주택공시가격은 한국부동산원이 직접 산정해 국토부에 납품하는 방식이어서 별도의 절차를 밟는다.
국토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2023년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가격 산정 작업은 △정확성 △적정성 △균형성 △투명성 제고에 초점이 맞춰 있다. 정확성은 철저한 현장 조사를 거쳐 표준주택이나 표준지의 대표성과 안정성, 확정성 등이 있는 샘플을 확보하겠다는 의미다. 적정성은 ‘부동산 거래신고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신고된 부동산 거래신고 가격에 주택 동향 등을 반영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균형성은 인근 지역 내 표준주택가격과 표준지공시지가를 상호 비교해 가격 균형이 유지될 수 있게 만들겠다는 것이다. 인근 지역인데도 큰 격차를 보이는 경우 민원의 주된 원인이 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시군구나 시도 담당자가 표준가격을 작성하는 부동산원과 적극 협의하는 과정이 새롭게 추가됐다. 투명성은 해당 부동산 소유자에게 공시가격 정보를 정확히 알려주고, 의견 제출이나 이의신청 처리 과정에서 관련 절차를 친절히 설명하겠다는 의미다. 이런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내년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가격 산정 작업은 평소보다 2주가량 빠른 8월 8일에 시작됐다.
공시가격 산정 과정에서 지난해에 없던 3차례에 걸친 검증 과정도 신설됐다. 1차 검증은 지자체가 올해 11월 중에 실시하는 것으로, 표준지나 표준주택으로 선정된 부동산의 특성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이는 표준지나 표준주택이 등기부등본 같은 공부(公簿)에 적힌 내용과 다른 경우 국토부가 지자체에 요청해 이뤄진다.
공시가격 정확성 제고 위해 지자체 적극 참여
2차 검증도 지자체가 하는데 내년 1월 중순쯤 진행된다. 이때는 가격 검증에 초점을 맞추며, 주요 부동산별 공시변동률과 가격변동사유 등을 조사·평가 프로그램을 통해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3차 검증은 지자체가 참여하는 외부점검단이 맡는다. 표준지와 표준주택 공시가격이 공시된 이후 해당 토지 및 주택 소유주가 이의신청을 할 경우 이에 대한 심층심사를 진행한다. 내년 3월 중에 실시될 예정이며, 이견에 대한 반영 결과와 검토 사유는 개별 통보된다.내년 표준지공시지가와 표준주택가격 산정 작업의 또 다른 특징은 지자체의 적극적인 개입이다. 공시가격이 발표될 때마다 불만을 제기해온 지자체를 산정 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시켜 최종 결과물에 대한 논란을 사전에 막겠다는 뜻이다. 국토부도 이에 대해 “공시업무 전반에 지자체(시도 및 시군구)의 역할과 참여를 확대해 공시가격의 정확성과 적정성 제고, 지자체의 충분한 의견 수렴을 목적으로 한다”고 밝혔다.
표준주택 등 조사 대상 확대
정부가 내년 재산세 과세 표준으로 적용될 공시가격 산정방식을 대대적으로 수정할 방침이다. [GettyImages]
표준지에 대해선 정확한 물량이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올해 표준지(52만 필지)는 지난해에 비해 2만 필지가 늘어났다. 매년 비슷한 수준으로 확대된 점을 감안하면 55만 필지 전후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공시가격 현실화에 대한 근본적인 수정 작업은 11월 중 확정 공개된다. 국토부는 6월 관련 연구용역(공시가격 현실화 계획 수정·보완 및 공시제도 개선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에 착수하면서 공시가격 현실화 계획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고 11월 발표하겠다고 밝혔다.
국토부는 당시 보도자료를 통해 “2020년에 수립된 현실화 계획에서 제시한 목표 현실화율(90%)은 수준이 높고, 최근 2년간 높은 공시가격 상승으로 인해 조세·복지제도 등에 큰 영향을 미치는 등 비판을 받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적정 가격의 개념과 해외 사례 등을 고려해 현행 목표 현실화율의 적절성을 재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국토부는 현실화율 목표 달성 기간도 국민 부담 수준 등을 감안해 재조정하기로 했다. 현재는 공동주택 5~10년(2020년 기준), 단독주택 7~15년, 토지 8년으로 설정돼 있다. 납세자 부담을 낮추겠다는 취지에서 추진하는 작업임을 고려할 때 목표 달성 기간이 늦춰질 가능성이 크다.
국토부는 경제위기나 부동산 가격 급등 등 외부 충격이 있을 경우 계획 적용을 일시적으로 유예하는 등 탄력적인 조정 장치도 신설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경기침체 상황이 지속된다면 공시가격을 동결하거나 대폭 낮추는 방안이 제시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국토부는 근본적인 공시제도 개선 방안도 마련해 내년에 공개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전문가자문위원회를 구성해 매달 한 차례씩 회의도 진행하고 있다.
황재성 기자는…
동아일보 경제부장을 역임한 부동산 전문기자다. 30년간의 기자생활 중 20년을 부동산 및 국토교통 정책을 다루는 국토교통부를 취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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