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밀라 파커 볼스 영국 왕비(왼쪽)와 찰스 3세 국왕. [뉴시스]
다이애나 스펜서 왕세자비가 1995년 영국 공영방송 BBC와의 인터뷰에서 꺼낸 이야기는 세계를 경악케 했다. 찰스 왕세자가 자신과의 결혼 생활에 충실하지 않고 제3자와 불륜관계를 맺었다고 폭로한 것이다. 인터뷰 이듬해 이혼한 다이애나는 1997년 프랑스 파리에서 파파라치의 추적을 피하는 과정에서 비극적인 교통사고로 숨졌다.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9월 8일(현지 시간) 서거하고 큰 아들 찰스가 찰스 3세란 왕호(王號)로 왕위를 계승했다. 이에 따라 그와 2005년 재혼한 커밀라 파커볼스(75)가 왕비(Queen Consort) 칭호를 얻게 됐다.
“내 증조모가 당신 고조부 정부(情婦)”
커밀라는 1947년 영국 런던에서 태어났다. 결혼 전 이름은 ‘커밀라 로즈메리 섄드’로 모계는 애쉬컴 남작위를 계승하는 귀족 가문이었다. 커밀라 자신은 작위가 없으나 유복한 상류층 가정에서 성장했다. 찰스와 커밀라는 1970년 윈저성의 폴로 경기에서 처음 만나 교제를 시작했다. 호사가들은 첫 만남에서 커밀라가 “내 증조모(앨리스 케펠 부인)가 당신의 고조부 에드워드 7세(20세기 초 재위한 영국 국왕)의 정부(情婦)였다는 사실을 아나요?”라고 당돌히 물으며 찰스 3세에게 사귀자고 제안했다고 한다. 당시 교제는 결혼으로 이어지진 못했으나 두 사람의 인연은 계속됐다. 커밀라는 귀족 장교 앤드루 파커볼스와 결혼해 슬하에 자녀 두 명을 뒀다.문제는 두 사람이 제각기 결혼 후에도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갔다는 것이다. 1981년 다이애나와 결혼 후에도 찰스는 커밀라와 만남을 지속했다. 다이애나는 1992년 낸 자서전에서 왕세자의 불륜을 폭로했고 1995년 BBC 인터뷰에서 이를 재확인하면서 영국 왕실과 척을 졌다. 세계인에게 사랑 받던 당대의 우상 다이애나의 폭로와 뒤 이은 비극적 죽음으로 찰스와 커밀라는 그야말로 ‘만인의 적’이 된 듯 했다. 전 남편과 이혼한 후에 길거리에서 야유를 당해 사람들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커밀라는 1995년 앤드루와 이혼하고 10년 후인 2005년 찰스와 재혼했으나 왕세자비(Princess of Wales) 칭호를 사용하진 않았다. 이를 두고 ‘영원한 왕세자비’로 남은 다이애나에 대한 영국인들의 향수를 의식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커밀라는 그간 사회봉사와 자선 활동을 하며 끈질기게 자신의 입지를 확대해 왔다. 찰스의 그림자로 지내며 왕실의 신뢰를 회복하고 찰스의 배우자로서 위치를 굳힌 것이다. 생전 엘라자베스 2세는 “커밀라가 왕비로 불리길 바란다”고 공표한 바 있다. 청년 왕세자 찰스와의 첫 만남으로부터 반세기가 지나고 홍안의 영애는 백발이 성성한 커밀라 왕비가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