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성격 증명서로 활용되고 있는 MBTI. [GETTYIMAGES]
융 심리학 남용에서 비롯된 MBTI
MBTI를 개발한 캐서린 쿡 브릭스(오른쪽)와 그의 딸 이사벨 브릭스 마이어스. [사진 제공 · 마이어스&브릭스 재단]
사람들이 MBTI를 선호하는 이유는 16개 성격 유형의 결과가 직관적이고 폭넓은 설명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심리학의 대가 카를 구스타프 융의 영향이 크다. 그는 1921년 출판된 ‘심리 유형(Psychological Types)’에서 인간의 두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에 대한 몇 가지 흥미로운 이론을 제시했다. 인간을 크게 두 가지 유형, 즉 지각을 중시하는 사람과 판단을 중시하는 사람으로 분류한 뒤, 전자는 감각을 좋아하는 사람과 직관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나누고, 후자는 생각하는 사람과 느끼는 사람으로 나눴다. 이 네 가지 유형은 다시 태도에 따라 내향형과 외향형으로 나눌 수 있다. 이를 바탕으로 MBTI의 대립적 유형 범주가 자리 잡혔다.
그러나 이는 통제된 실험이나 데이터에서 나온 이론이 아니다. 융 역시 자신이 제시한 성격 유형이 관찰에서 비롯된 대략적 경향이라고 말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심리학과 교수인 애덤 그랜트는 “이러한 유형 분류가 나온 것은 심리학이 실험과 데이터에 기반한 경험과학이 되기 전 일”이라며 “그럼에도 융의 영향력이 지대해 쿡 브릭스 같은 추종자들은 이러한 유형 분류에 사로잡혔다”고 말했다.
MBTI의 또 다른 문제는 테스트를 할 때마다 다른 결과가 나온다는 점이다. 사람 성격이 시간이 지나면서 변할 수는 있지만 단기간에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결과가 나온다면 테스트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상담심리학 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MBTI 테스트를 한 뒤 5주 간격으로 다시 테스트할 경우 절반 이상의 사람이 다른 결과에 도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중과학 잡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은 “MBTI는 스스로 문항에 답하는 자기 보고 형식이라 그날 기분에 따라 다르게 답할 경우 다양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며 “MBTI는 사람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한 테스트가 아니라 응시 후 기분이 좋아지게 만드는 테스트”라고 설명했다.
카를 구스타프 융의 대립적인 인간 유형 범주가 MBTI에 영향을 미쳤으나, 그의 이론은 현대 심리학에서 사람의 성격을 해석하는 데 한계가 있다. [GETTYIMAGES]
이분법적 결과도 문제
이처럼 부정확한 결과를 제공함에도 많은 사람이 MBTI를 신뢰하는 현상은 포러 효과(Forer Effect)로 설명할 수 있다. 1949년 심리학자 버트럼 포러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흥미로운 실험을 했다. 실험 참가자들에게 성격 검사를 실시한 뒤 결과지를 나눠주고 각자 얼마나 자기 성격과 일치하는지 평가하게 했다. 대다수 사람이 검사 결과가 자신의 성격을 아주 잘 묘사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10명 중 8명은 자신의 성격과 일치한다고 말했다.그런데 포러는 참가자 모두에게 똑같은 성격 검사 결과지를 제공했다. 별자리 운세와 같은 내용을 짜깁기한 내용이었다. 포러는 사람들이 애매모호하고 누구에게나 들어맞는 이야기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자신만의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고 설명했다. 소망이나 착각에 의해 막연한 내용을 자기에게 이롭게 해석하는 포러 효과는 사람들이 운세나 유사과학에 빠지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MBTI는 테스트 결과가 필요 이상으로 이분법적이라는 것도 문제다. MBTI는 ‘외향’과 ‘내향’처럼, 성격을 두 가지 대립된 성향 중 하나로 정하도록 돼 있다. 그러나 대다수는 양극단 중 하나가 아니라, 두 가지를 포괄하는 양가적 성향을 띤다. 일례로 사고와 감정은 대립적 개념이 아니라 독립적이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더 높은 사고력과 추론 능력을 가진 사람이 감정을 인식하고 관리하는 데도 월등한 것으로 밝혀졌다. 요컨대 현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감정 또는 이성적인 계산에 근거해 결정을 내리는지와 같은 주제를 거의 연구하지 않는다. 대체로 이 두 가지를 모두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일부 심리학자가 ‘성격 특성’에서 ‘성격 상태’로 연구 관점을 전환한 이유다.
대표적으로 ‘빅파이브(Big Five)’ 모델이 있다. 1940년대부터 심리학자들이 지속해온 성격 상태 연구를 1981년 미국 성격 심리학자 루이스 골드버그가 빅파이브 모델로 정립했다. 199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빅파이브 모델은 현재까지 인간 성격에 대한 연구 가운데 가장 포괄적이고 신뢰할 만하며 유용한 분석틀로 여겨진다.
빅파이브 모델이 훨씬 과학적
빅파이브 모델에서는 외향성, 신경성, 성실성, 친화성, 개방성 등 다섯 가지 지표로 성격을 분류해 점수를 매긴다. 일반적으로 외향적인 사람은 독단적이고 흥분을 추구한다. 신경성 점수가 높게 나왔다면 감정적으로 불안정하고 짜증을 잘 낸다는 의미다. 성실성이 높으면 책임감과 의무감이 있고, 친화성이 높으면 타인에게 공감하며 친절한 행동을 보인다. 개방성이 높은 사람은 지적이고 사려 깊은 모습을 드러낸다.이 다섯 가지 성격 스펙트럼은 우리 성격이 얼마나 유전되는지 어떤 성격 요인이 소득과 상관관계가 있는지부터 사망률과 이혼율, 직업 성과에 이르기까지 삶을 전반적으로 예측하는 데 사용된다. 이러한 성격 상태를 파악하려면 성격 특성 측정에 비해 훨씬 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미국 교육 심리학자 데이비드 J. 피텐저는 MBTI의 유용성에 대한 논문에서 “MBTI가 사람 성격을 이분법적으로 분류하는 것은 근거가 되는 이론이 정확하지 않다는 점을 시사한다”며 “빅파이브 모델은 더 광범위한 개념 틀 안에서 성격을 해석하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머브 엠리 영국 옥스퍼드대 영어영문학과 부교수는 MBTI 역사를 다룬 저서 ‘성격을 팝니다(The Personality Brokers)’에서 “MBTI 같은 성격 테스트의 진정한 가치는 우리가 알고 있는 자아와 결과에 반영된 자아 사이의 격차를 조정하는 노력에 있다”며 “자신에 대해 통찰하고 변화하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연습의 관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