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8일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오른쪽)와 권성동 사무총장이 서울 여의도의 한 음식점에서 중진의원 오찬 회동에 참석하고 있다. [뉴스1]
“의총 참석자가 절반도 안 돼”
‘윤핵관’으로 일컬어지는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왼쪽)과 윤한홍 청와대이전태스크포스 팀장. [뉴스1]
국민의힘 한 중진의원이 4월 27일 전화통화에서 닷새 전 의총을 되돌아보며 한 말이다.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는 4월 22일 의총을 소집해 비공개로 더불어민주당(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와 협상 과정을 설명하며 의원들을 설득했다. “최악을 피하려면 차악이라도 선택해야 하지 않겠나”라고 이유를 들었다. 당내에서는 “윤핵관 맏형 격인 권 원내대표의 결정인 만큼 윤 당선인의 의중도 담겼을 것”이라는 생각도 없지 않았다.
하지만 상황은 기대와 크게 다르게 흘러갔다. 중재안에 공직자·선거 범죄에 대한 수사권이 우선 폐지되는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야합했다”는 역풍을 맞은 것이다.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를 시작으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장까지 연이어 반대 입장을 내며 논란이 커졌다. 합의 당일 “존중한다”는 입장을 낸 윤 당선인 측도 사흘 후 원점 재검토를 주문한 사실이 알려졌다. 결국 합의 나흘 만에 국민의힘은 의총을 다시 열고 중재안을 파기했다. 권 원내대표가 합의문 발표 당일 기자들을 만나 “(합의문에) 담긴 내용은 대부분 내가 불러준 것”이라고 말한 만큼 책임론도 일었다.
국민의힘의 ‘자책골’에 민주당만 이득을 본 형국이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재협상 요구를 ‘합의 파기’로 규정하며 법안 처리에 속도를 올렸다. 법안 내용도 당초 합의안보다 더 강성으로 변했다. 국민의힘 성일종 정책위원회 의장에 의하면 4월 28일 민주당이 국회 본회의에 단독 상정한 법안은 중대범죄수사청 설치 등에 관한 내용이 빠져 “수사 공백 영역이 커졌다”는 지적을 받는다. 국민의힘은 “합의 파기”라며 비판하고 있지만, 도리어 “국민의힘이 먼저 합의를 번복했다”는 역공을 받았다. 섣부른 합의로 검수완박 저지에 대한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은 셈이다.
이번 혼란은 윤 당선인과 권 원내대표의 소통 문제가 단초가 됐다. 윤 당선인 측은 중재안에 대해 권 원내대표와 세부적으로 교감하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배현진 당선인 대변인은 4월 26일 “(윤 당선인이) 상황은 청취하고 확인하고 있었다”면서도 “합의 과정과 결정의 모든 몫은 국회와 당이 알아서 잘 해줄 것이라고 말씀을 나눈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중재안을 추인한 의원들의 생각과 달리 충분한 조율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권 원내대표는 4월 26일 의총에서 “검수완박법 처리 과정에서 나의 판단 미스와 여론 악화로 인한 부담을 당에 지우고 의원들에게 책임을 전가시켜 대단히 죄송하다”며 사과했다. 일각에서는 “여론이 안 좋으니 윤 당선인이 발을 빼는 것 아닌가”라는 의심 어린 시선도 있다.
정무 컨트롤타워 부재가 주요인
전문가들은 정무 컨트롤타워 부재가 혼란의 주요 원인이라고 지적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인수위) 체제에서 체계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을 구축하지 못한 가운데 윤핵관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거나, 윤 당선인의 생각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면서 오해가 쌓이고 있다는 것이다. 채진원 경희대 공공거버넌스연구소 교수는 “대통령이 아닌 당선인 신분이다 보니 이른바 당정청 관계가 명확히 확립되지 않아 빈 공간이 여럿 생겼다. 당 안팎의 각종 오해도 여기서 발생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윤핵관 목소리가 과대 대표되는 측면 역시 연장선상에 있다. 현안에 대한 회의나 워크숍을 수시로 가져 불필요한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조율해야 한다”고 말했다.국민의힘 한 중진의원 역시 “인수위 기간 워낙 많은 사안을 처리해야 하다 보니 실수가 나올 수 있다”면서도 “다 같은 국정이라지만 몇몇 특히 민감한 부분이 있는데, 이런 이슈에 한해서라도 컨트롤타워 내지 집단 토론의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핵관발(發) 정보 공유 난맥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대통령 집무실 용산 이전이 대표 사례다. 당초 윤 당선인은 대통령 집무실 광화문 이전을 공약했으나, 공약 발표 35일 만에 이전 후보지를 용산 국방부 청사로 변경했다. 당시 당 안팎에서 “졸속으로 의사 결정이 이뤄진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윤 당선인 측 관계자는 당시 상황에 대해 “내부에서도 정보가 널리 공유되지 않았다. ‘용산 이전에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이 때문에 나왔다”고 해명했다. 청와대 이전 태스크포스 책임자는 윤핵관으로 분류되는 윤한홍 의원이다.
윤핵관과 당내 인사들 사이에서만 혼란이 빚어지는 것도 아니다. 윤핵관 사이에서도 의견이 공유되지 않은 면이 관측됐다. 장제원 당선인 비서실장은 4월 27일 “당선인 비서실은 검수완박과 관련해 국민투표를 하는 안을 윤 당선인에게 보고하려 한다”며 “국회의원들이 수사를 받지 않아도 되는 특혜를 누려도 되는지, 공직자들이 수사에서 벗어나도 되는지를 국민투표에서 물어본다면 국민이 거부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투표를 통해 검수완박 국면을 풀어갈 생각임을 밝힌 것이다.
국민투표가 가능한지와 별개로, 이를 진행하려면 여권과 협상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해당 사안은 대여(對與) 협상 최전선에 있는 권 원내대표와도 사전에 공유되지 않았다. 권 원내대표는 해당 사안에 대한 기자들 질문에 “인수위 당직자가 고육지책으로 내놓은 아이디어가 아닌가 생각한다”며 “구체적으로 연락받은 바는 없다”고 말했다.
일련의 사고에도 윤핵관 체제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4월 26일 열린 비공개 의총에서 윤 당선인의 수행실장인 이용 의원이 가장 먼저 발언권을 신청했다. 당시 이 의원은 미리 준비한 원고를 읽으면서 “권 원내대표에게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요지의 발표를 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를 “권 원내대표를 재신임해달라”는 윤 당선인의 의중이 담긴 것으로 이해했다. 평소 이 의원이 공개 발언을 하지 않는 점 역시 이런 해석에 힘을 실었다. 이준석 대표와 김기현 전 원내대표 역시 권 원내대표 중심으로 검수완박 국면을 풀어나가야 한다며 독려했다.
윤핵관 체제 한동안 지속될 듯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단순히 ‘윤심’에 의해 이번 사안이 좌우됐다기보다 검수완박 중재안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커지자 이를 쫓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정권 출범 전 과도기적 시기인 만큼 정무 컨트롤타워를 구체화하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무엇보다 인수위 체제에서 만연한 ‘눈치 보기’를 줄여나가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장관 후보자 검증 문제 등에 이견이 있어도 제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현 상황이 문제라는 것이다. ‘아빠 찬스’ 논란이 일고 있는 정호영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 검증 논란이 대표적 예다. 국민의힘 김용태 최고위원은 4월 20일 “윤석열 정부의 공정이 훼손되지 않도록 거취를 결단하라”며 정 후보자의 사퇴를 촉구했다.
최진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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