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병석 국회의장(가운데)이 4월 27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박홍근 원내대표(오른쪽)와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를 만났다. [뉴스1]
민주당·국민의힘·정의당 모두 기여
첫째, ‘기득권 수호’다.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검찰 수사를 두려워한다는 것이 폭로됐다. 기득권 정치 세력이 꺼리는 것은 검찰의 공직자·선거 범죄만이 아니다. 한국 검찰이 최근 들어 ‘역대급’으로 펼친 수사는 삼성을 포함한 재벌 대상의 대형 특별수사였다. 정치권이 아무리 친(親)재벌·친자본이라 해도 위법이 발견돼 수사가 진행되면 정당하게 막을 방도가 없다. 검찰 수사를 무력화하는 것만큼 친재벌·친자본 정책도 없다.둘째, 거대 양당이 지지층을 올곧게 대변하지 않는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이 검수완박 중재안 합의 직전인 4월 19일부터 사흘간 전국 성인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검찰 수사권에 대해 ‘그대로 유지’가 55%, ‘경찰에 이양’이 35%로 나타났다(표본오차는 95% 신뢰 수준에서 ±3.1%p. 여론조사와 관련한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무당층에서도 ‘검찰 수사권 유지’가 53%로 ‘경찰에 이양’(32%)을 확연히 웃돌뿐더러 민주당 지지층에서도 4명 중 1명이 검수완박에 반대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재명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로 범위를 넓히면 검수완박 반대는 더 높아질 것이다. 민주당은 오랜 세월 ‘검찰개혁’을 준비해왔다고 강변하지만, 지지층 일각의 이탈이 더해져 반대 여론이 더 높은 것은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민주적 공당이라면 범지지층 대다수가 찬성하는 정책, 이를테면 서민 권익 보호나 정치개혁 같은 분야를 앞세워야 마땅하다.
한편 국민의힘은 지지층 절대 다수가 반대하는 사안에 덜컥 합의하고 말았다. 검찰의 부패·경제 수사를 끝까지 유지하거나, 검찰의 직접 수사권을 폐지하는 대신 철저한 수사와 원활한 공소 유지에 필요한 수사 지휘권을 부여하는 수준의 타협안도 아니다. 지연만 시켰을 뿐, 국민의힘은 도리어 민주당 이상으로 검수완박에 기여했다. 정의당도 이에 가세했다. 진즉에 중재자 노릇에 돌입했으니 이제 거대 양당의 담합에 맞서지 못한다. 이것이 종합된 결과, 어처구니없게도 반대 여론이 확연히 우세한 정책이 강행 처리됐다.
셋째, 의원총회가 정당을 지배하는 현상도 한국 정치의 고질적 문제다. 민주당의 최고 지도부인 비상대책위원 9명 중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을 포함한 비대위원 6명(박지현, 권지웅, 김태진, 이소영, 조응천, 채이배)이 검수완박 속도전에 이견을 내비쳤다. 6명 가운데 4명은 원외 인사다. 국민의힘에서는 의원총회가 승인한 합의안을 원외 인사인 이준석 대표가 필두로 나서며 최고위원회에서 파기했다. 민주당이나 국민의힘이나 지도부가 의원총회 향방을 주도하지 못한 것은 같다.
정당은 의원협회가 아니다. 의원이라고 무조건 원외 인사보다 더 대표성을 띠는 것도 아니다. 박 위원장처럼 선거에 출마할 기회가 없었거나 최근 정치를 시작한 사람도, 이 대표처럼 낙선을 거듭했지만 작금에는 최상급 인기를 얻고 있는 정치인도, 한 선거구에서 1명만 뽑는 한국 선거제도에서 험지 출마 등으로 당선이 힘들었던 정치인도 정당 지도부에 들어갈 수 있다. 이들의 존재로 의원들이 빠뜨린 영역이 대변될 수 있다. 그러나 두 거대 정당은 의원총회에서 투표권이 없다는 이유로 당 대표자들을 ‘이등 당원’으로 전락시켰다.
한 발 물러선 문재인·윤석열
넷째, 대통령(당선인)과 정당 및 의원의 분리다. 문재인 대통령과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자당 중재안을 승인하는 동안 아무런 개입도 하지 않았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가장 먼저 나선 모습은 문재인 정부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을 방불케 한다. 이를 옹호하는 이들은 ‘삼권분립’을 떠들지만, 삼권분립을 지탱하는 것은 ‘상호작용’이다. 대통령은 집권층 내 소수파라도 국민이 직선한 대표자답게 법안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다. 게다가 문 대통령과 윤 당선인은 소속 정당에서 명실상부한 최고 지도자다. ‘국회 논의’를 핑계 대는 것은 책임 회피이며, 양다리를 걸치는 ‘분신술’이다. 실제 몇몇 굵직한 사안에서 이들의 행태는 ‘뷔페식’이었다. 명백한 신규 정책 사업으로 국회 심의와 의결이 필요한 대통령 집무실 이전은 두 지도자의 예비비 집행 담합으로 끝나버렸다. 선거제도 문제는 어떤가. 문 대통령은 “선거제도 개혁이 신념”이라고 거듭 강조했고 윤 당선인도 대선 토론에서 “중대선거구제를 선호한다”고 밝혔건만, 기초의회의원 선거에서 2인 선거구를 없애는 방안이 물거품이 되는 동안 뒷짐을 지고 있었다.끝으로 한국 정치의 우스운 몰골을 하나 더 지적한다. 윤 당선인 측은 검수완박 문제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고 ‘뒷북 제안’을 했다. 적절한 방안인지는 별론으로 넘긴다. 국민투표는 기술적으로 불가능하다. 재외국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에도 국회가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 결정도 무시하는 국회가 개헌에 준하는 법안을 강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