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마다 타고난 운명이 있다’는 말을 나는 어느 정도 믿는다. 현재의 내 일이 운명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소싯적 이미 나는 고향에서 용하기로 소문난 처녀보살에게 ‘역마살 낀 아이’로 판정받았다. 그때까지 고향을 벗어나본 적 없고, 학교와 집만 오가는 숫기도 없던 소년에게 역마살이라니….
하지만 처녀보살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밟아본 지리산의 웅자(雄姿)는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았다. 역마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지리산을 마을 뒷동산처럼 오르내렸다. 심지어 학력고사를 치르기 직전 주말에도 지리산 백무동계곡의 만산홍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의 캠핑 역사도 그 시절부터 시작됐다. 1박2일 일정으로 100여 리의 지리산 종주코스를 등산할 때 혼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군대 내무반처럼 딱딱하고 위압적인 산장 분위기가 싫었던 까닭이다. 굵은 장대비가 텐트에 구멍을 뚫을 듯 쏟아져도, 섬뜩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아도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시절의 캠핑은 산행의 한 과정이었을 뿐 목적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생업에 쫓기다 보니 긴 산행을 할 기회가 크게 줄었다. 당연히 캠핑을 즐길 일이 거의 없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캠핑을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휴가부터였다. 부모 형제와 제대로 된 여행이나 캠핑을 해본 적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오토캠핑을 통해 형제뿐인 내 아이들에게 평생 서로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젊은 시절 느꼈던 캠핑의 감동과 추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실 오토캠핑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럿이 그 즐거움과 재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른 나는 20대 후반부터 여행작가 일을 시작했다. 30대 중반까지는 주로 안 가본 곳을 찾아다녔다. 험한 산길, 머나먼 뱃길도 마다 않고 우리 땅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다 30대 후반부터는 이미 여러 차례 가봤던 곳을 즐겨 찾게 됐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땅은 같은 곳이라도 계절마다 풍광과 정취가 사뭇 달라진다. 처음 찾은 여행지처럼 신선하면서도 오랜 고향인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 편한 곳에서는 그냥 눌러앉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행 스타일도 ‘유목형’에서 ‘정주형’으로 바뀐다. 실제 오토캠핑장에 가보면 20, 30대보다 40, 50대 ‘중년 캠퍼’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제한된 일정 속에서 바쁘게 여러 곳을 섭렵하기보다는 아예 텐트를 치고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솔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도 좋고, 조약돌을 헤집고 흐르는 물소리도 아름답다. 숲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별빛 초롱한 밤이면 은하수와 별똥별을 보며 탄성을 연발한다.
누구에게나 별은 꿈을 상징한다. 별빛을 헤아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어릴 적 숱한 꿈들이 하나 둘씩 꿈틀대게 마련이다. 별을 따는 꿈, 무한한 우주를 비행하는 꿈, 낯선 별에서 외계인을 만나는 꿈 등 잊고 살았던 꿈들이 아득한 추억처럼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이렇듯 ‘나’의 동심을 되살려주고, ‘나’를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하는 오토캠핑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레포츠다. 더욱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정이므로 즐거움과 기쁨은 한층 배가된다.
하지만 처녀보살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깨닫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필요치 않았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 때 처음 밟아본 지리산의 웅자(雄姿)는 사춘기 소년의 가슴을 마구 흔들어놓았다. 역마살이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고등학교 시절 내내 지리산을 마을 뒷동산처럼 오르내렸다. 심지어 학력고사를 치르기 직전 주말에도 지리산 백무동계곡의 만산홍엽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던 기억이 난다.
내 인생의 캠핑 역사도 그 시절부터 시작됐다. 1박2일 일정으로 100여 리의 지리산 종주코스를 등산할 때 혼자 텐트를 치고 야영했다. 군대 내무반처럼 딱딱하고 위압적인 산장 분위기가 싫었던 까닭이다. 굵은 장대비가 텐트에 구멍을 뚫을 듯 쏟아져도, 섬뜩한 한기가 온몸을 휘감아도 텐트 안에서 듣는 빗소리, 바람소리, 풀벌레 소리는 어떤 음악보다 깊은 감동을 주었다.
그 시절의 캠핑은 산행의 한 과정이었을 뿐 목적이 아니었다. 결혼을 하고 생업에 쫓기다 보니 긴 산행을 할 기회가 크게 줄었다. 당연히 캠핑을 즐길 일이 거의 없었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캠핑을 다시 시작한 것은 지난해 여름휴가부터였다. 부모 형제와 제대로 된 여행이나 캠핑을 해본 적 없는 어린 시절에 대한 아쉬움이 갑자기 크게 느껴졌다. 그래서 결론을 내렸다. “오토캠핑을 통해 형제뿐인 내 아이들에게 평생 서로 나눌 수 있는 추억을 만들어주자”는 것이었다. 내가 젊은 시절 느꼈던 캠핑의 감동과 추억을 아이들에게 물려주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다. 사실 오토캠핑의 가장 큰 매력은 여럿이 그 즐거움과 재미, 추억을 공유할 수 있다는 점이다.
어느덧 40대 중반에 이른 나는 20대 후반부터 여행작가 일을 시작했다. 30대 중반까지는 주로 안 가본 곳을 찾아다녔다. 험한 산길, 머나먼 뱃길도 마다 않고 우리 땅 구석구석에 발자국을 남겼다. 그러다 30대 후반부터는 이미 여러 차례 가봤던 곳을 즐겨 찾게 됐다.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 땅은 같은 곳이라도 계절마다 풍광과 정취가 사뭇 달라진다. 처음 찾은 여행지처럼 신선하면서도 오랜 고향인 듯 마음이 편안해진다.
마음 편한 곳에서는 그냥 눌러앉고 싶은 게 사람 심정이다. 더욱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여행 스타일도 ‘유목형’에서 ‘정주형’으로 바뀐다. 실제 오토캠핑장에 가보면 20, 30대보다 40, 50대 ‘중년 캠퍼’가 더 많이 눈에 띈다. 언제부턴가 나 역시 제한된 일정 속에서 바쁘게 여러 곳을 섭렵하기보다는 아예 텐트를 치고 한자리에 오래 머물며 자연의 숨결을 느끼는 것을 즐긴다. 솔가지를 흔드는 바람소리도 좋고, 조약돌을 헤집고 흐르는 물소리도 아름답다. 숲의 정적을 깨우는 새소리는 가슴 깊은 곳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킨다. 별빛 초롱한 밤이면 은하수와 별똥별을 보며 탄성을 연발한다.
누구에게나 별은 꿈을 상징한다. 별빛을 헤아리는 사람들의 가슴속에는 어느새 어릴 적 숱한 꿈들이 하나 둘씩 꿈틀대게 마련이다. 별을 따는 꿈, 무한한 우주를 비행하는 꿈, 낯선 별에서 외계인을 만나는 꿈 등 잊고 살았던 꿈들이 아득한 추억처럼 가슴속에 되살아난다. 이렇듯 ‘나’의 동심을 되살려주고, ‘나’를 자연의 일부가 되게 하는 오토캠핑은 가장 자연친화적인 레포츠다. 더욱이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하는 여정이므로 즐거움과 기쁨은 한층 배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