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0년대 초 미국 CBS ‘60분’(60 Minutes)이라는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서 방송된 ‘프렌치 패러독스(French Paradox)’가 미국을 떠들썩하게 하고 레드 와인 소비를 40%나 끌어 올린 적이 있다. 방송은 프랑스인이 미국인에 비해 왜 살이 덜 찌고 심장병에 덜 걸리며 더 오래 사는지 그 이유를 찾고 있었다. 심지어 프랑스인은 미국인에 비해 포화지방을 훨씬 더 많이 섭취하고 운동도 거의 하지 않으며 담배를 피우는 사람도 더 많은데 말이다. 프랑스 과학자 세르주 르노(Serge Renaud)는 그 이유가 레드 와인에 있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국인은 1인당 연평균 7.6ℓ의 레드 와인을 소비하는 반면, 프랑스인은 8배나 많은 60.8ℓ를 소비하고 있었다.
2012년에도 미국 퍼듀대 연구팀이 레드 와인이 비만을 예방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레드 와인에 들어 있는 피세아타놀(piceatannol)성분이 지방세포가 생성되는 것을 막고 미성숙한 지방세포가 자라는 것을 예방할 뿐 아니라, 인슐린의 지방 축적 기능도 억제한다는 것이다. 술을 마시는 사람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적당히 와인을 마신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복부 비만이 상대적으로 적었다는 또 다른 연구 결과도 있다. 이쯤 되면 와인, 특히 레드 와인이야말로 ‘착한 술’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삼복더위 보양식에 이 ‘착한 술’을 곁들이는 것은 어떨까.
여름철 3대 보양식 하면 닭, 오리, 장어가 떠오른다. 닭이나 오리는 질감이 부드러워 타닌이 강하지 않은 와인과 잘 맞는다. 백숙이나 로스구이로 즐긴다면 중간 정도 보디감에 딸기나 체리 같은 붉은색 과일향을 지닌 부르고뉴 피노 누아 와인이나 보졸레 지방의 모르공 와인이 잘 어울린다. 고추장이 들어간 매콤한 닭볶음탕이나 오리주물럭은 양념향이 강하므로 과일향과 함께 스파이시한 풍미가 있는 코트뒤론 와인 또는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가 제격이다.

닭볶음탕이나 오리주물럭과 잘 어울리는 코트뒤론 와인과 키안티 클라시코 리제르바 와인, 훈제오리와 좋은 궁합을 이루는 생테밀리옹 와인(왼쪽부터).
이열치열이라고, 우리 여름 보양식은 뜨거운 탕 음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너무 뜨거운 음식은 혀를 마비시켜 와인 맛을 제대로 느끼기 어렵게 만드는 데다, 기본적으로 국물 음식은 와인과 어울리기 힘들므로 와인을 곁들이고자 한다면 탕류는 피하는 것이 좋다.
보양식을 즐기는 자리에 건강을 챙기고 음식과 궁합도 잘 맞는 레드 와인을 준비한다면 당신의 센스는 빛을 발할 것이다. 하지만 여름철 과음은 몸을 더 지치게 하니 식사와 함께 한두 잔 즐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을 꼭 기억해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