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 유학 간 친구들을 보면 대개 10년을 훌쩍 넘긴다. 독일어가 어려워서(?)이기도 하겠지만 독일이 그만큼 가난한 유학생에게 천국이기 때문일 것이다. 웬만한 경우 학비가 공짜인 데다 적잖은 가족 부양 비용까지 대주니 굳이 학업을 서두를 이유가 없다.
외국인에게 이 정도이니 자국인을 위한 혜택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해도, 또 늙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독일이다. 실업·노후연금제도 등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돼 있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선진적’ 사회보장 시스템이 요즘 맹공격을 당하고 있다. 독일 경제가 흔들리면서 ‘통일 비용’과 함께 ‘방만한 사회복지 비용’이 경제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내건 ‘아젠다 20’이란 장기 정책 프로젝트는 연금·노동시장 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개혁의 골자는 독일식(유럽형) 경제모델의 후퇴, 미국식 자유경쟁 모델의 수용으로 요약된다. 경쟁보다는 ‘약자 보호’를 이념으로 하는 사회민주당 출신 총리가 이런 정책을 들고 나왔으니 이는 단순히 정책적 변화가 아닌, 국가경영 패러다임의 일대 변화라고 할 만하다.
독일식 경제모델의 후퇴는 과거 독일의 영화산업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영화산업이 걸어온 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만 해도 독일 영화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예를 들어 1926년 작으로 2000년의 사회를 음울하게 묘사한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는 SF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작품이다. 감독인 프리츠 랑이 영화에서 시도한 여러 기법들은 이후 영화의 기본기법이 됐다. 미국 영화가 상품화, 산업화의 길을 걸으며 영화산업의 한 축을 형성했을 때 독일 영화는 랑 같은 감독이 작가주의적 전통으로 다른 한 축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현재 유럽에서 자국 영화산업이 가장 위축된 나라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미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으로 압도적인데 그중 특히 높은 곳이 독일이다. 그건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미군의 점령으로 미국 문화의 영향을 가장 철저하게 받았던 탓이 크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 후유증과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나치즘의 붕괴로 사회 전체가 혼란과 침체에 빠져 있었다. 해방 후 한국에서처럼 독일인들에게도 문화적 공백은 컸다. 그 틈을 재빨리 비집고 들어온 게 미국의 TV 드라마와 영화다. 저질 포르노와 할리우드 오락물이 범람하면서 독일 영화 특유의 자산과 전통은 사라져버렸다.
‘저항’이 없진 않았다. 60년대 ‘뉴 저먼 시네마’는 잃어버린 독일 영화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감독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양철북’의 폴커 슐렌도르프,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벤더스 등이 ‘탈(脫)할리우드’ 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맏형격인 파스빈더의 사망과 함께 운동은 급격히 쇠퇴했고 감독들은 대부분 외국으로 무대를 옮겨버렸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빔 벤더스도 고국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파리 텍사스’(사진) 등 그의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는 젊은 날 ‘뉴 저먼 시네마’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미국 텍사스주의 한 지명을 따온 ‘파리 텍사스’라는 영화의 제목은 자신의 ‘현주소(미국, 텍사스)’와 ‘고향(유럽, 파리)’ 사이에서 부유하는 독일 전후세대의 혼란스런 내면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에 이어 ‘아메리칸 스타일’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세계를 노도처럼 휩쓸고 있는 21세기. 복지국가의 모델이자 ‘유럽형’의 맹주였던 독일이 그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처지가 벤더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외국인에게 이 정도이니 자국인을 위한 혜택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아프거나 일자리를 잃었다 해도, 또 늙어서도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는 나라가 독일이다. 실업·노후연금제도 등은 사회복지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우리나라 사람들이 보기에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잘 돼 있다.
그런데 이런 독일의 ‘선진적’ 사회보장 시스템이 요즘 맹공격을 당하고 있다. 독일 경제가 흔들리면서 ‘통일 비용’과 함께 ‘방만한 사회복지 비용’이 경제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는 것이다.
슈뢰더 독일 총리가 내건 ‘아젠다 20’이란 장기 정책 프로젝트는 연금·노동시장 개혁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 있다. 개혁의 골자는 독일식(유럽형) 경제모델의 후퇴, 미국식 자유경쟁 모델의 수용으로 요약된다. 경쟁보다는 ‘약자 보호’를 이념으로 하는 사회민주당 출신 총리가 이런 정책을 들고 나왔으니 이는 단순히 정책적 변화가 아닌, 국가경영 패러다임의 일대 변화라고 할 만하다.
독일식 경제모델의 후퇴는 과거 독일의 영화산업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독일 영화산업이 걸어온 길도 그와 마찬가지였다. 1920년대만 해도 독일 영화는 황금기를 구가했다. 예를 들어 1926년 작으로 2000년의 사회를 음울하게 묘사한 무성영화 ‘메트로폴리스’는 SF영화의 원조로 꼽히는 작품이다. 감독인 프리츠 랑이 영화에서 시도한 여러 기법들은 이후 영화의 기본기법이 됐다. 미국 영화가 상품화, 산업화의 길을 걸으며 영화산업의 한 축을 형성했을 때 독일 영화는 랑 같은 감독이 작가주의적 전통으로 다른 한 축을 형성했던 것이다.
그러나 독일은 현재 유럽에서 자국 영화산업이 가장 위축된 나라다. 유럽연합(EU) 회원국에서 미국 영화의 시장 점유율은 70% 이상으로 압도적인데 그중 특히 높은 곳이 독일이다. 그건 무엇보다 2차 세계대전 패전국인 독일이 미군의 점령으로 미국 문화의 영향을 가장 철저하게 받았던 탓이 크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패전 후유증과 절대권력을 행사했던 나치즘의 붕괴로 사회 전체가 혼란과 침체에 빠져 있었다. 해방 후 한국에서처럼 독일인들에게도 문화적 공백은 컸다. 그 틈을 재빨리 비집고 들어온 게 미국의 TV 드라마와 영화다. 저질 포르노와 할리우드 오락물이 범람하면서 독일 영화 특유의 자산과 전통은 사라져버렸다.
‘저항’이 없진 않았다. 60년대 ‘뉴 저먼 시네마’는 잃어버린 독일 영화의 전통을 복원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불안은 영혼을 잠식한다’를 감독한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양철북’의 폴커 슐렌도르프, ‘베를린 천사의 시’의 빔 벤더스 등이 ‘탈(脫)할리우드’ 운동을 시도했다. 그러나 맏형격인 파스빈더의 사망과 함께 운동은 급격히 쇠퇴했고 감독들은 대부분 외국으로 무대를 옮겨버렸다.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빔 벤더스도 고국을 두고 미국으로 건너가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파리 텍사스’(사진) 등 그의 작품의 독특한 분위기는 젊은 날 ‘뉴 저먼 시네마’의 흔적을 보여준다. 이를테면 미국 텍사스주의 한 지명을 따온 ‘파리 텍사스’라는 영화의 제목은 자신의 ‘현주소(미국, 텍사스)’와 ‘고향(유럽, 파리)’ 사이에서 부유하는 독일 전후세대의 혼란스런 내면을 상징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세기에 이어 ‘아메리칸 스타일’이 글로벌 스탠더드로 세계를 노도처럼 휩쓸고 있는 21세기. 복지국가의 모델이자 ‘유럽형’의 맹주였던 독일이 그 파도를 이기지 못하고 흔들리고 있는 지금의 처지가 벤더스의 그것과 별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