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85

..

책 읽기 만보

팩트는 가짜뉴스를 이기지 못한다

  • reporterImage

    최진렬 기자

    display@donga.com

    입력2021-04-23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변화는 어떻게 촉발되는가
    캐스 R. 선스타인 지음/ 박세연 옮김/ 열린책들/ 472쪽/ 2만2000원

    “당신이 민주당 지지자라면 자녀가 공화당 지지자와 결혼하는 것을 허락할 수 있는가.”

    1960년 미국에서 실시한 설문조사 내용이다. 결과는 공화당 지지자 중 5%, 민주당 지지자 중 4%가 자녀가 정치적 성향이 다른 상대와 결혼한다면 ‘불쾌할 것’이라고 응답했다. 50년 후 동일한 조사를 하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공화당과 민주당 지지자 각각 49%와 33%가 반대 의사를 밝혔다. 단순히 미국인들의 적대성이 늘어났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다른 인종 간 결혼에 대해서는 개방적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미국 사회의 핵심 문제로 당파주의 심화를 꼽는다. 당파주의에 빠진 사람은 지지 정당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상대 당에 깊은 적개심을 드러낸다. 책이 출간된 시기는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임기 중인 2019년이다. 가짜뉴스, 필터버블 등 각종 문제로 정당 지지자 간 갈등이 무르익은 때였다. 트럼프를 겨냥하기라도 하듯, 행동경제학 서적 ‘넛지’로 유명한 저자는 당파주의를 완화할 수 있는 ‘부드러운 개입’을 찾아 나선다.

    통념과 달리 ‘팩트’는 당파주의를 가라앉히지 못했다. 오히려 반대에 가깝다. 저자는 일련의 실험을 보여준 후 “강력한 정치적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은 객관적 사실에 직면해서도 기존 입장을 수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과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더욱 멀어졌다”고 지적했다. 가짜뉴스와의 지난한 전쟁이 실패한 까닭을 보여주는 한 단면이다.



    해법은 다소 논쟁적이다. 첫째, 당파주의가 약해지는 대통령 임기 초반 정책 집행을 서두른다. 둘째, 주어진 기간에 해결책이 제시되지 않으면 특정 법안의 효력이 자동으로 발의되도록 ‘사전 조치 전략’을 수행한다. 셋째, 정부 기관 내 기술 관료의 힘을 강화한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해법도, 반대로 갸웃거리게 하는 해법도 있을 것이다. 책을 읽고 주변 사람들과 토론해보는 것은 어떨까.



    최진렬 기자

    최진렬 기자

    안녕하세요. 주간동아 최진렬 기자입니다. 산업계 이슈를 취재하고 있습니다.

    45년 흘렀어도 현재진행형인 ‘12·12 사태’

    비상계엄으로 명예·자존심 손상된 707특임단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