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2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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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허약한 자생력 보여준 민주공화당 18년

  • 김학준 단국대 석좌교수

    입력2020-11-02 08: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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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용호
민주공화당 18년, 1962-1980년:
패권정당운동 실패의 원인과 결과(아카넷, 2020)
본문·참고문헌목록·색인 357쪽

    김용호 민주공화당 18년, 1962-1980년: 패권정당운동 실패의 원인과 결과(아카넷, 2020) 본문·참고문헌목록·색인 357쪽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참으로 많은 정당들이 명멸했다. 그것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존속했던 정당은 박정희 대통령이 이끌던 민주공화당이었다. 1961년의 5·16 군사정변 직후인 1962년에 창당돼 1979년의 10·26정변 직후인 1980년에 소멸됐으니 그 수명이 18년이었는데, 이것은 한국의 정당사에 있어서 최장수의 기록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사실은 역설적으로 한국에서 정당이 국민 속에 뿌리내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는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자료이기도 하다. 

    이러한 민주공화당에 대한 본격적인 학술서가 한 권도 출판된 일이 없었다는 사실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한국 정치학계에는 정당을 전공한 학자들이 많았음을 고려할 때 더욱 그러하다. 위에 적시한 이 책은 그러한 공백을 메운 최초의 사례라는 점만으로도 주목을 받기에 충분하다. 

    저자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 정치학과에서 이정식(李庭植) 교수의 지도를 받으며 비교정치 및 한국정치를 전공하는 가운데 민주공화당을 분석한 논문으로 1989년에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외무부 외교안보연구원 교수와 한림대 교수를 거쳐 인하대 교수로 정년퇴임하고 현재 경희대 특임교수로 봉직하고 있다. 그 사이 한국정치학회 회장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저자는 이 30년이 넘는 기간에, 자신의 학위논문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버리지 않고 여러 차례 수정 보완한 뒤 마침내 한 권의 단행본으로 출판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저자는 이제까지 세상에 알려지지 않았던 많은 비공개 공식문서를 발굴할 수 있었다. 창당준비대회 회의록, 창당대회 회의록, 당헌 관련 자료, 당무회의 기록, 사무총장 인수인계 관련 자료, 시·도 사무국장회의 자료, 그리고 당내 도시문제연구소 자료 등이 그 대표적 사례다. 1973년 3월에 실시된 제9대 국회 총선 때 민주공화당 후보들이 저지른 ‘선거법위반사건에 대한 당내 조사보고서’ 및 ‘당보 발간을 위한 독립적인 출판사 설립계획’과 같은 희귀자료를 찾아낸 것도 돋보인다. 특히 민주공화당의 사전 조직체인 것으로 구전되던 ‘재건동지회’에 관한 1차 자료를 찾아내 그 실체를 밝힌 것은 이 주제에 대한 저자의 한 작은 기여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민주공화당의 공식출판물들에 위와 같은 자료들을 더해 참고자료로 삼으면서, 정당에 관한 국내외 정치학자들의 연구, 특히 민주공화당에 관한 논문들을 두루 살피며 이 책을 썼다. 그러했기에, 저자는 책의 내용을 풍성하게 만들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은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저자가 민주공화당 18년을 분석함에 있어서 활용한 방법론은 ‘비교역사적 접근법(comparative history approach)’이었다. 이 방법론은 둘 이상의 각기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서 발생한 정치적 현상이나 사건을 비교 분석하여 원인이나 결과를 설명하려는 것인데, 거기에는 ‘차이법’과 ‘일치법’이 있다. 차이법은 서로 다른 정치적 결과를 낳은 원인들을 여러 가지로 추정한 후 서로 다른 결과를 낳은 원인만을 찾아내는 방법이며, 일치법은 똑같은 정치 현상이나 결과를 보여준 여러 사례들을 비교 분석하여 공통된 원인을 발견하는 방법이다. 저자는 주로 차이법을 활용했다. 

    이러한 방법론을 활용한 데 이어 저자는 그 비교의 기준이 되는 개념으로 ‘패권정당(hegemonic party)’을 채택했다. 이 개념은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가 1973년에 출판한 자신의 저서 ‘정당들과 정당체제들: 분석의 틀’에서 창안한 것이다. 

    그러면 패권정당은 어떤 정당인가? 사르토리는 멕시코의 제도혁명당(IPR)을 그 사례로 지적했다. 이 당은 1929년에 칼레스 장군이 멕시코혁명정신에 따라 창당한 국민혁명당(PRN)을 그의 후계자 카르데나스 장군이 1934년에 전임자 칼레스를 추방한 뒤 ‘멕시코혁명의 신화 속에 공무원, 군대, 농민, 노동자를 망라해’ 새롭게 개편시켜 출범시킨 것이다. 

    따라서 서구 민주국가에서 볼 수 있는 경쟁적인 정당체제 속에서 출범한 민주정당은 결코 아니었다. 그러나 이 당은 정기적인 선거에서 정상적인 방법과 비정상적인 방법을 모두 동원해 장기간에 걸쳐 전체 유권자들 가운데 절대다수의 지지를 획득하는 데 성공해 1985년까지 70여 년 가까운 세월에 걸쳐 장기집권할 수 있었다. 이와 비슷한 사례가 싱가포르의 인민행동당으로, 1968년 이래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집권하고 있다. 

    저자의 연구는 사르토리를 넘어섰다. 패권정당을 지향했던 사례들에 파키스탄의 아유브 칸 장군이 창당했던 파키스탄이슬람연맹, 브라질의 국민혁명동맹(ARENA), 대만의 중국국민당, 그리고 한국의 민주공화당을 추가하면서 그 정당들이 모두 제도혁명당과는 달리 패권정당으로 자리를 잡지 못한 원인을 규명한 것이다. 

    그러면 제도혁명당이 패권정당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이었나? 첫째, 멕시코에서는 서구식 민주주의의 전통이 취약해 권위주의정권의 존속이 용이했고, 둘째, 제도혁명당은 모든 선출직의 단임제를 채택해 한 지도자의 장기집권과 지배적 파벌의 출현을 방지할 수 있었다. 셋째, 카르데나스는 토지개혁을 실시하는 등 대중주의 리더십을 발휘해 농민의 강력한 지지를 확보할 수 있었고, 넷째, 당 스스로 통치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다. 

    저자의 결론은 제도혁명당은 패권정당으로 존속하는 데 성공했으나 민주공화당은 패권정당으로 존속하는 데 실패해 ‘유동적 지배정당(fluid dominaqnt party)’으로 머무르는 데 그쳤다는 것이었다. 그러면 민주공화당이 실패한 원인은 무엇이었나? 저자는 민주공화당을 제도혁명당과 대비시키는 가운데 다음 네 가지를 지적했다. 

    첫째, 한국의 경우에는 서구민주주의의 전통이 상대적으로 훨씬 강해 권위주의체제에 대한 저항이 지속됐다. 둘째, 민주공화당의 경우에는 파벌싸움이 심했으며, 셋째 박 대통령이 대중주의적 리더십보다는 ‘총통형’ 리더십에 의존했고, 특히 그의 초기 지지기반이었던 농민이 공업화의 진전에 따라 국정과제의 우선순위에서 밀리면서 그에 대한 지지를 감소시켰다. 넷째, 민주공화당에 대한 대통령의 견제가 커서, 특히 유신체제의 출범 이후 더욱 그러해, 독자적 역량을 축적할 수 없었다. 종합적으로, 저자는 해답을 박정희 대통령에서 찾았다. 박 대통령이 자신의 장기집권을 위해 민주공화당을 패권정당으로 발전시키는 길 대신에 궁정쿠데타의 길을 택해 기본적으로 힘으로 유지되는 유신체제를 출범시킨 것이 그 원인이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패권정당 이론의 관점에서 민주공화당의 흥망사를 분석한 것이지만, 전반적으로 1960~70년대 민주공화당과 집권세력 내부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 야당의 행태와 여야관계, 그리고 박정희체제에 대한 저항운동 등을 비롯한 한국정치의 많은 사건과 특성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크게 넓혀주었다. 

    저자는 또 민주공화당의 공과를 함께 살피면서, “적어도 근대화, 산업화에 대한 민주공화당의 공로는 인정해야 할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정당발전에 끼친 폐해를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고 논평했다. 후자와 관련해, 저자는 “민주공화당을 만든 정치세력이 본질적으로 권위주의세력으로서, 그들이 추구하는 정치적 목표가 근본적으로 비경쟁적 정치제도의 수립이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러했기에 “민주공화당은 정치사회와 시민사회를 연결시켜주는 자생력을 가진 정당이 되기에는 매우 허약했다”고 지적했다. 

    박 대통령 집권 18년을 조망할 수 있는 책들이 적지 않게 출판됐다. 그러나 정치학의 시각에서 비교사적으로 접근한 책으로는 이것이 유일하다고 생각한다. 박 대통령과 그의 시대를 이해함에 있어서 필수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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