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통일의 상징인 브란덴부르크 문. [랑에운트 죄네 홈페이지]
‘Made in France, Made in Italy’는 라벨만으로도 명품 대접을 받는다. 명품시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세계적 컨설팅 회사 딜로이트의 보고서(2019 명품 글로벌 파워)에 따르면 상위 100개의 명품 회사(본사 소재지 기준) 중 매출액을 기준으로 봤을 때 국가별 점유율은 1위 프랑스(23.5%), 2위 미국(19.5%), 3위 이탈리아(14.0%), 4위 스위스(12.3%), 5위 영국(8.4%)이다.
브랜드로 봐도 프랑스는 강세다. 시장 분석기관 스타티스타(Statista)가 지난 7월 발표한 ‘2020 상위 10개 명품 브랜드’에 따르면 1위 루이비통. 2위 샤넬, 3위 에르메스, 4위 구찌, 5위 롤렉스, 6위 까르띠에, 7위 디올, 8위 생로랑, 9위 버버리, 10위 프라다였다. 이중 프랑스 브랜드가 6개(루이비통, 샤넬, 에르메스, 까르띠에, 디올, 생로랑)다.
국가별 점유율 순위로 프랑스 다음으로는 미국도 있지만, 이탈리아나 스위스 브랜드가 강세를 보이고 있다. 유럽 선진국이라도 프랑스, 이탈리아, 스위스의 벽을 넘어서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스위스가 점령하고 있는 고급 시계 시장에서 세계를 놀라게 한 브랜드가 있다. 바로 독일의 ‘랑에운트 죄네’(A. Lange & Sohne)다.
독일에서 탄생한 명품 시계
1902년 제작된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no. 42500. [랑에운트 죄네 홈페이지]
두 형제에 의해 많은 기술적 발전이 이뤄졌다. 리처드 랑에는 ‘시계 스프링용 금속 합금’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다. 베릴륨을 소량 함유하여, 밸런스 스프링의 탄력성을 개선한 것이었다. 그의 발견에서 나온 니바록스 합금 스프링은 지금도 고급 시계 제작에 널리 쓰이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때에도 랑에는 명성을 더욱 떨쳐 나갔다. 랑에의 정교한 기술력은 세계 경제대공황기 많은 경쟁사들이 문을 닫을 때 회사를 지탱 시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위기가 찾아왔다. 바로 제2차 세계대전이었다. 1945년, 독일의 패전이 짙어질 무렵, 랑에의 시계 공방은 폭격으로 파괴되고 만다. 이어 1948년에는 소련에 의해 점령당하면서 랑에운트 죄네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말았다.
잿더미에서 솟아오른 불사조
1994년 컬렉션을 선보인 드레스덴 궁. [랑에운트 죄네 홈페이지]
1994년 랑에운트 죄네는 드레스덴 궁에서 브랜드의 첫 번째 손목시계로 4가지 컬렉션을 선보였다. 랑에1, 삭소니아, 아르카데, 투르비옹 푸르 르 메리테 등이었다. 손목시계 컬렉션은 대성공을 거뒀다. 갑자가 땅에서 치솟은 것 같지만, 사실은 145년전 이미 탄생했던 랑에운트 죄네는 단기간에 전 세계의 시계 매니아들을 열광시켰다. 독일 시계의 자존심이라 불릴 만큼, 가장 높은 평가를 받는 시계 브랜드로 성장했다.
그랜드 컴플리케이션 모델
랑에 1. [랑에운트 죄네]
결국 그는 답을 찾았다. 그가 찾은 답은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가장 이목을 끈 것은 시간, 달력, 보조장치 기능을 서로 시계 바늘이 겹치지 않도록 비대칭으로 배치한 다이얼(문자, 눈금판)이었다. 이런 비대칭 다이얼과 큰 크기로 제작된 랑에1 컬렉션은 브랜드의 대표 컬렉션이 됐다.
2013년 출시된 모델 그랜드 컴플리케이션은 ‘세계 최고의 시계를 다시 한번 만들겠다’는 발터 랑에의 비전이 정점에 달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 시계에는 7가지 컴플리케이션(시간과 날짜 외에 다양한 기능)을 탑재했다. 크고 작은 스트라이크, 미닛 리피터, 퍼페츄얼 캘린더(일/월/요일/연도 등에 윤년까지 정확히 계산해 날짜를 알려주는 기능), 라트라팡테 플라이백 크로노그래프(스톱 워치) 기능 등을 갖추고 있다. 조립과 조정 과정이 매우 복잡해서 1년에 단 한 개씩만 제작할 수 있다고 한다.
‘Homage to F. A. Lange’ 에디션, 1815 라트라팡테 허니골드. [랑에운트 죄네]
전 세계의 셀렙들도 랑에운트 죄네를 애용하고 있다.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 미국의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 영국 가수 에드 시런 등이 랑에를 찬 모습을 대중에게 선보인 적이 있다. 이들이 착용한 시계는 각각 투르보그래프 푸르 르 메리테(푸틴 대통령), 리차드 랑에 푸르 르 메리테(빌 클린턴 전 대통령), 랑에 1(브래드 피트), 자이트베르크(에드 시런) 등이었다. 모든 컬렉션은 홈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고급 시계가 스위스가 아닌 독일 작센주에서 랑에운트 죄네의 이름으로 생산되는 것이 처음에는 비현실적인 목표처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이 됐다. 한때 명품세계에서 존립 조차 하지 못했던, 아예 소멸됐던 존재였지만 랑에운트 죄네는 불사조처럼 부활해 자신이 원래 백조였음을 알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