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의 ‘야설(野說)’은 격주 화요일 오후 ‘주간동아’ 온라인 채널에 게재됩니다. 제도 정치권 밖(野)에서 바라 본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서민 교수의 날카로운 입담(說)으로 풀어냅니다. <편집자주>
서민 단국대 의대 교수.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며 문재인 대통령(이하 문통)이 한 말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윤 총장은 문통이 법무장관 후보로 지명한 조국 교수에 대해 대대적인 수사를 시작한다. 권력을 두려워하지 않는 윤 총장의 성정이 이 수사의 주된 이유였지만, 여기엔 문통에 대한 믿음도 일정 부분 작용했으리라. 그 뒤 벌어진 일은 우리가 아는 그대로다. 문통은 '검찰총장 따위'가 감히 자신의 인사권을 침해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고, 그의 충실한 부하와 지지자들은 윤 총장을 자리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갖은 공작을 벌이는 듯한 인상을 줬다.
2019년 7월 25일, 윤석열 신임 검찰총장에게 임명장을 수여하는 문재인 대통령. [동아DB]
추미애식 ‘윽박지르기’
추미애 법무부장관. [동아DB]
‘조폭‘ 영화를 보면 보스가 원하는 결과를 내지 못한 부하를 닦달하는 장면이 나온다. 밧줄에 거꾸로 매달고, 산으로 끌고 가 묻어버리는 시늉을 하기도 한다. 겁에 질린 부하가 절규한다. “한 번만 기회를 주십시오. 이번에는 꼭 처리하겠습니다.” 추 장관이 이와 비슷한 일을 당하기라도 한 것일까? 윤 총장에 대한 추 장관의 괴롭힘은 한층 더 심해졌다. 2020년 10월 19일, 추 장관은 급기야 라임 사건과 윤 총장의 장모, 부인에 대한 고소, 고발 건에 대해 또다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다. 전자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후자에 대해 지휘권을 발동한 것은 정말이지 어이가 없다. 윤 총장은 애초부터 가족 관련 수사에 개입하거나 보고를 받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기간 사건의 실체와 진상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국민이 수사의 공정성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는 게 추 장관이 지휘권을 발동한 이유라지만, 애초에 이 사건을 맡은 곳은 추 장관의 심복 이성윤 검사장이 이끌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그렇다면 이 지검장을 문책하는 게 올바른 절차건만, 왜 가만히 있는 총장을 들볶는 것일까? 이것 역시 ‘이렇게까지 했는데 안 물러날테냐?’는 추미애식 윽박지르기 초식이리라. 놀랍게도 윤 총장은 이번에도 사표를 내는 대신 지휘를 수용하겠다고 했는데, 고위직 공무원인 검찰총장이 가엾게 느껴지는 건 머리털 나고 처음이다. 청와대는 10월 20일 대변인을 통해 “수사 지휘는 불가피한 것”이라며 추 장관 손을 또 한번 들어줬다.
‘살아 있는 권력’ 운운은 ‘좋은 사람 코스프레’였나
윤석열 검찰총장. [동아DB]
한가롭기 그지없는 문통을 보면, 그에게 법질서의 총체적 파괴는 관심 밖인 모양이다. 이런 선택적 무관심이 비겁한 이유는 검찰총장의 임면권이 대통령인 문통에게 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일말의 양심이 있다면 자기 부하들을 시켜서 윤 총장을 물러날 때까지 괴롭히는 대신, ‘살아있는 권력’ 운운한 건 좋은 사람 코스프레였을 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윤 총장을 해임했어야 한다. 하지만 문통은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로 인해 자신에 대한 지지율이 떨어지는 게 두렵고, 임기가 제도적으로 보장된 검찰총장을 강제로 끌어내린 나쁜 대통령으로 남는 것은 더 싫기 때문이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민정수석이던 시절, 문통은 높은 도덕성의 상징이었다. 그 당시 문통은 부정한 청탁을 받지 않기 위해 친구를 만나지 않았고, 동창회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단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김정숙 여사에게도 백화점 출입을 금하기까지 했다니, 실로 대단하다. SBS 힐링캠프에 소개된 다음 일화도 감동적이다. 김 여사가 아파트를 마련하기 위해 주택청약저축을 들었는데 뒤늦게 그 사실을 안 문통이 ‘주택청약저축은 집이 없는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우리 가족은 집이 있으니 해당되지 않는다’며 해약하라고 했다나. 그래서 ‘이명박 정권이 그의 비위를 캐려고 이를 잡듯이 뒤졌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는 얘기가 널리 회자하기도 했다. 그래서 난 문통이 2년여 동안 나라를 거덜 내고 미래까지 결딴내는 광경을 보면서도 그 지지자들과 싸우기는 했을지언정, 그에 대한 지지를 거두지 않았다. 비록 문통이 무능하긴 하지만, 최소한 도덕적인 사람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라 믿었으니까.
하지만 조국 사태는 문통이 자신의 민낯을 만천하에 드러낸 계기였다. 이왕 들킨 것, 막 나가기로 한 것일까. 그 뒤 1년여 동안 문통이 보여준 브레이크 없는 질주는 이전까지 악의 화신으로 불리던 이명박, 박근혜마저 평범한 사람으로 보이게 만들 지경이다. 2016년 말, 국민이 박근혜 전 대통령을 권좌에서 끌어내린 건 그의 도덕성이 더 이상 대통령의 직무를 수행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다. 도덕성이 파탄난 대통령의 운명이 어떻게 되는지, 또 어디로 가게 될지, 우리 국민은 똑똑히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