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미의 153이란 볼펜이 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써봤을 가장 흔한 볼펜이다. 잃어버려도 굳이 찾으려 애쓰지 않는다고 할 정도로 싼값이다. 1963년 15원이던 이 볼펜은 지금도 300원이면 산다. 볼펜을 한 다스로 사면 가격은 200원대로 낮아지고, 온라인으로 대량구매하면 100원대까지 떨어진다. 하지만 이 볼펜의 프리미엄 모델은 좀 다르다. 2013년에 나온 50주년 기념 153 볼펜은 2만 원에 출시됐는데, 출시 1시간 만에 매진됐다. 갖고 싶어 하는 사람에 비해 공급량은 적다 보니 한때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에서 14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기에 더더욱 탐난다. 모나미는 2014년에 1만5000원짜리 프리미엄 볼펜 ‘153 ID’를 출시해 6개월 만에 10만 자루를 팔았다. 두 번째 프리미엄 볼펜인 ‘153 리스펙트’도 출시했는데, 자루당 가격이 3만5000원이다. 물론 프리미엄 볼펜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소재이고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다. 그럼에도 비싼 외국 문구 브랜드의 프리미엄 볼펜이 아니라 200~300원짜리 153 볼펜의 프리미엄 버전을 탐하는 건 문구에 대한 자부심, 일명 전형적인 ‘문구부심’의 일환이다. 누구나 가진 153 볼펜이지만 프리미엄 153은 누구나 갖지 못했다는 흔한 듯 특별한 가치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값싼 대체재가 있다는 건 매력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더 구매하고 싶게 하는 유혹이 된다.
펜, 단순한 필기도구 아냐
몽블랑, 워터맨 등 전통적인 만년필과 볼펜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 또는 최근 2030 여성 사이에서 많이 뜬 라미 제품은 이미 한두 자루씩은 다들 가졌다. 점점 펜을 쓸 기회가 줄어들 것 같지만 놀랍게도 만년필과 고급 볼펜은 잘 팔린다. 오히려 손으로 쓰는 일이 줄다 보니 이왕 쓸 때 좀 더 좋은 펜으로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 덕에 디지털 시대이자 스마트폰 전성시대임에도 몽블랑의 매출은 성장세다. 모나미 프리미엄 볼펜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뜨겁다.
우리에게 펜은 그냥 필기도구가 아니라, 손의 촉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내는 특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그러니 펜에 대해 사치를 부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문구부심’을 가진 이가 의외로 많다. 요즘에는 뭐든 자부심을 가지는 대상에 ‘부심’이란 말을 붙이는 게 장난스러운 표현법이다. 살짝 비꼬는 투로도 사용하지만, 물건이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젠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 됐다. 문구부심 외에도 펜부심, 자동차에 대한 차부심, 대학생 사이에 있다는 스펙부심, 무더운 날씨로 유명한 대구에서 가진다는 더위부심, 해병대에 있다는 해병부심, 여기다가 식스팩이 있는 사람이 가진다는 복근부심까지, 우리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다들 자부심을 갖는다.
이런 부심 가운데 문구부심만큼 소소한 부심도 없다. 직장인이건 학생이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문구의 경우 좀 더 좋은 것에 끌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것을 가졌을 때는 뿌듯함과 자부심도 생긴다. 보통 문구부심은 만년필과 다이어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쓸 수 있는 펜과 써야 할 노트라는 건 문구를 대하는 우리 태도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좋은 펜을 쓴다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좋은 펜이 있으면 기분이 좋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명필이 아니기에, 설령 악필이라도 조금은 보완될까 하는 기대로 펜과 붓을 가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펜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글씨 못 쓰는 사람 없고, 글씨 쓰는 걸 싫어하는 이도 없더라.
바늘 가면 실이 따라가듯, 펜이 가면 노트도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줄 하나 없이 깨끗한 흰색 노트를 좋아한다. 아이디어를 그리고 메모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A4 용지에 낙서하듯 메모하는 것도 즐기는데 이면지가 이런 용도로는 제격이다. 백지에 뭔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아크릴 칠판도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다. 매직을 들고 칠판에 이것저것 적었다. 심지어 가로세로 각 2m가 넘는 대형 유리창도 칠판처럼 쓴다. 적어도 내 처지에선 생각이 손끝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전형적인 대학노트도 좋아하고, 노란색에 빨간 줄이 그어진 노트도 좋아한다.
그나마 유일하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다이어리다. 가죽이나 하드커버로 된 예쁜 다이어리에 뭔가 정리하는 일에서 졸업한 지 꽤 됐다. 물론 여전히 다어어리부심을 가진 이는 많다. 매년 연말이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다이어리 값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계속 마신다. 요즘에는 다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고 소소한 일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블로그에 기록하기에 굳이 종이로 된 다이어리가 필요한가 싶지만 의외로 다이어리에 탐닉하는 이도 많다.
몰스킨 노트도 탐닉 대상이다. 200년 이상 된 프랑스 브랜드 몰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예술가나 명사도 즐겨 쓴 수첩이다. 고흐가 몰스킨 수첩에 스케치를 했을 것이고, 헤밍웨이가 소설 아이디어나 초고를 썼을 것이다. 나도 몰스킨에 생각을 낙서하듯 옮겨 적는 걸 좋아하는데, 왠지 여기에 뭔가를 쓰면 생각이 좀 더 잘 나는 듯도 하다. 가죽 하드커버에 질 좋은 미색 종이와 고무 밴드, 그리고 적당히 묵직한 무게감은 몰스킨을 사랑할 충분한 조건이다. 세계적인 도시별로 나와 있는 몰스킨을 각 도시의 서점에 가서 하나씩 사 모으는 사람도 꽤 있다. 로디아 노트나 수첩도 즐겨 찾는 이가 많다.
기록에 가치 둘 때 나오는 ‘문구부심’
다이어리나 노트에 대한 관심은 그에 걸맞은 펜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다이어리나 노트에 뭘 쓰기 위해서라도 색깔별로 펜을 갖추고 만년필과 연필, 각종 볼펜도 그득하게 모아둔다. 문구홀릭이라 불러도 될 만큼 문구부심을 가진 이가 의외로 많다는 건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뭔가를 기록하는 데 가치를 두는 이가 많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글자가 존재하는 가장 큰 미덕은 그 글자를 통해 생각을 기록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문구에서 펜과 노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무수한 연필과 샤프, 볼펜, 만년필을 뒤로하고, 필통부터 문진, 편지봉투를 뜯을 때 쓰는 우아한 페이퍼 나이프, 발명가 이름인 호치키스로도 불리는 스테이플러, 포스트잇, 명함꽂이나 명함보관 박스, 앨범, 가죽으로 된 데스크매트까지 책상 위를 채우는 문구의 행렬은 길고도 길다. 이걸 다 쓸까 싶지만, 문구홀릭이자 문구부심자는 그런 걱정 따위는 안 한다.
개인적으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핫트랙스를 경계한다. 책 사러 갔다가 코너를 돌아 핫트랙스에 가면 뭐든 사서 손에 들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다. 텐바이텐이나 밀리미터밀리그람도 경계 공간인 건 마찬가지. 팬시한 문구들의 강한 유혹은 계속되니까. 세련되고 특이한 문구가 가득한 곳에서 빈손으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물론 아주 오래된 문구의 우아함과 단순한 듯한 투박함도 좋아한다. 문구에 대한 탐닉은 사치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사치가 아닐까 싶다. 큰돈이 들어가지 않아도 꽤나 큰 매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리미티드 에디션은 돈이 있어도 구할 수 없기에 더더욱 탐난다. 모나미는 2014년에 1만5000원짜리 프리미엄 볼펜 ‘153 ID’를 출시해 6개월 만에 10만 자루를 팔았다. 두 번째 프리미엄 볼펜인 ‘153 리스펙트’도 출시했는데, 자루당 가격이 3만5000원이다. 물론 프리미엄 볼펜은 훨씬 더 고급스러운 소재이고 브랜드를 가진 제품이다. 그럼에도 비싼 외국 문구 브랜드의 프리미엄 볼펜이 아니라 200~300원짜리 153 볼펜의 프리미엄 버전을 탐하는 건 문구에 대한 자부심, 일명 전형적인 ‘문구부심’의 일환이다. 누구나 가진 153 볼펜이지만 프리미엄 153은 누구나 갖지 못했다는 흔한 듯 특별한 가치에 주목하는 것. 그리고 값싼 대체재가 있다는 건 매력적인 프리미엄 제품을 더 구매하고 싶게 하는 유혹이 된다.
펜, 단순한 필기도구 아냐
몽블랑, 워터맨 등 전통적인 만년필과 볼펜 프리미엄 브랜드 제품 또는 최근 2030 여성 사이에서 많이 뜬 라미 제품은 이미 한두 자루씩은 다들 가졌다. 점점 펜을 쓸 기회가 줄어들 것 같지만 놀랍게도 만년필과 고급 볼펜은 잘 팔린다. 오히려 손으로 쓰는 일이 줄다 보니 이왕 쓸 때 좀 더 좋은 펜으로 쓰고 싶은 욕구가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 덕에 디지털 시대이자 스마트폰 전성시대임에도 몽블랑의 매출은 성장세다. 모나미 프리미엄 볼펜에 대한 관심도 여전히 뜨겁다.
우리에게 펜은 그냥 필기도구가 아니라, 손의 촉감을 통해 자신의 이야기를 종이에 옮겨 내는 특별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그러니 펜에 대해 사치를 부리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일 수밖에 없다.
‘문구부심’을 가진 이가 의외로 많다. 요즘에는 뭐든 자부심을 가지는 대상에 ‘부심’이란 말을 붙이는 게 장난스러운 표현법이다. 살짝 비꼬는 투로도 사용하지만, 물건이나 자신의 상황에 대한 당당함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젠 보편적으로 쓰는 말이 됐다. 문구부심 외에도 펜부심, 자동차에 대한 차부심, 대학생 사이에 있다는 스펙부심, 무더운 날씨로 유명한 대구에서 가진다는 더위부심, 해병대에 있다는 해병부심, 여기다가 식스팩이 있는 사람이 가진다는 복근부심까지, 우리는 자신 있고 당당하게 드러내고자 하는 것에 다들 자부심을 갖는다.
이런 부심 가운데 문구부심만큼 소소한 부심도 없다. 직장인이건 학생이건 일상에서 자주 쓰는 문구의 경우 좀 더 좋은 것에 끌리고, 자신만의 특별한 것을 가졌을 때는 뿌듯함과 자부심도 생긴다. 보통 문구부심은 만년필과 다이어리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쓸 수 있는 펜과 써야 할 노트라는 건 문구를 대하는 우리 태도의 처음이자 끝이기 때문이다. 좋은 펜을 쓴다고 좋은 글을 쓸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왠지 좋은 펜이 있으면 기분이 좋다. 명필은 붓을 가리지 않는다고 했지만 우리는 명필이 아니기에, 설령 악필이라도 조금은 보완될까 하는 기대로 펜과 붓을 가리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펜을 좋아하는 사람치고 글씨 못 쓰는 사람 없고, 글씨 쓰는 걸 싫어하는 이도 없더라.
바늘 가면 실이 따라가듯, 펜이 가면 노트도 따라간다. 개인적으로 줄 하나 없이 깨끗한 흰색 노트를 좋아한다. 아이디어를 그리고 메모하기에 이보다 더 좋은 게 없다. A4 용지에 낙서하듯 메모하는 것도 즐기는데 이면지가 이런 용도로는 제격이다. 백지에 뭔가 쓰는 걸 좋아하다 보니 아크릴 칠판도 오래전부터 집에 있었다. 매직을 들고 칠판에 이것저것 적었다. 심지어 가로세로 각 2m가 넘는 대형 유리창도 칠판처럼 쓴다. 적어도 내 처지에선 생각이 손끝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닌 듯하다. 전형적인 대학노트도 좋아하고, 노란색에 빨간 줄이 그어진 노트도 좋아한다.
그나마 유일하게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다이어리다. 가죽이나 하드커버로 된 예쁜 다이어리에 뭔가 정리하는 일에서 졸업한 지 꽤 됐다. 물론 여전히 다어어리부심을 가진 이는 많다. 매년 연말이면 스타벅스 다이어리를 갖겠다는 일념으로 다이어리 값보다 훨씬 비싼 돈을 주고 커피를 계속 마신다. 요즘에는 다들 스마트폰으로 일정을 관리하고 소소한 일상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페이스북이나 인터넷 블로그에 기록하기에 굳이 종이로 된 다이어리가 필요한가 싶지만 의외로 다이어리에 탐닉하는 이도 많다.
몰스킨 노트도 탐닉 대상이다. 200년 이상 된 프랑스 브랜드 몰스킨은 빈센트 반 고흐, 파블로 피카소, 어니스트 헤밍웨이 등 예술가나 명사도 즐겨 쓴 수첩이다. 고흐가 몰스킨 수첩에 스케치를 했을 것이고, 헤밍웨이가 소설 아이디어나 초고를 썼을 것이다. 나도 몰스킨에 생각을 낙서하듯 옮겨 적는 걸 좋아하는데, 왠지 여기에 뭔가를 쓰면 생각이 좀 더 잘 나는 듯도 하다. 가죽 하드커버에 질 좋은 미색 종이와 고무 밴드, 그리고 적당히 묵직한 무게감은 몰스킨을 사랑할 충분한 조건이다. 세계적인 도시별로 나와 있는 몰스킨을 각 도시의 서점에 가서 하나씩 사 모으는 사람도 꽤 있다. 로디아 노트나 수첩도 즐겨 찾는 이가 많다.
기록에 가치 둘 때 나오는 ‘문구부심’
다이어리나 노트에 대한 관심은 그에 걸맞은 펜에 대한 관심으로도 이어진다. 다이어리나 노트에 뭘 쓰기 위해서라도 색깔별로 펜을 갖추고 만년필과 연필, 각종 볼펜도 그득하게 모아둔다. 문구홀릭이라 불러도 될 만큼 문구부심을 가진 이가 의외로 많다는 건 솔직히 기분 좋은 일이다. 그만큼 뭔가를 기록하는 데 가치를 두는 이가 많다는 증거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글자가 존재하는 가장 큰 미덕은 그 글자를 통해 생각을 기록하는 게 아닐까 싶다.
문구에서 펜과 노트는 시작에 불과하다. 무수한 연필과 샤프, 볼펜, 만년필을 뒤로하고, 필통부터 문진, 편지봉투를 뜯을 때 쓰는 우아한 페이퍼 나이프, 발명가 이름인 호치키스로도 불리는 스테이플러, 포스트잇, 명함꽂이나 명함보관 박스, 앨범, 가죽으로 된 데스크매트까지 책상 위를 채우는 문구의 행렬은 길고도 길다. 이걸 다 쓸까 싶지만, 문구홀릭이자 문구부심자는 그런 걱정 따위는 안 한다.
개인적으로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의 핫트랙스를 경계한다. 책 사러 갔다가 코너를 돌아 핫트랙스에 가면 뭐든 사서 손에 들고 나와야 할 것 같아서다. 텐바이텐이나 밀리미터밀리그람도 경계 공간인 건 마찬가지. 팬시한 문구들의 강한 유혹은 계속되니까. 세련되고 특이한 문구가 가득한 곳에서 빈손으로 빠져나오기란 쉽지 않다. 물론 아주 오래된 문구의 우아함과 단순한 듯한 투박함도 좋아한다. 문구에 대한 탐닉은 사치 중에서도 가장 지적이고 우아한 사치가 아닐까 싶다. 큰돈이 들어가지 않아도 꽤나 큰 매력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