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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식 감독과 출연진이 보여준 제작보고회 분위기도 그랬다. 성인용 기구를 사용해봤다느니, 신음소리가 실감 났다느니 같은 말이 오고 갔으니 ‘워킹걸’의 ‘워크(work)’가 과연 뭘 의미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다. 그러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워킹걸’은 조여정, 클라라라는 두 배우에 대한 선입관에서 시작해 그 편견을 깨는 데 도달하는 작품이다. 일(워킹)과 여성(걸)을 고민하는 영화, 하지만 너무 심각하지 않게, 재밌고 발랄하게 풀어낸 영화가 바로 ‘워킹걸’이다.
영화는 대조적인 두 여자의 등장으로 시작한다. 아동용 완구회사 마케팅 과장인 백보희(조여정 분)는 일에 미친 워커홀릭이다. 남편과의 잠자리, 딸아이와의 스킨십도 잊은 지 오래. 그에게 가정은 재충전을 위한 휴식처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딸 하유의 육아는 도우미 아주머니와 친정어머니에게 맡기고 남편이 모처럼 마련한 이벤트를 즐길 여력도 없다. 직장에서 더 좋은 아이디어를 내고, 더 높은 자리로 승진하는 것, 그것이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이자 쾌락이기 때문이다.
한편 보희와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마주치는 이웃 여자는 딱 봐도 보희와 딴판이다. 두 여성 캐릭터의 특징은 입고 나오는 옷으로 차별화되는데, 보희 옷장이 검은색 슈트와 하얀색 블라우스로 꽉 채워져 있는 반면, 이웃 여자는 늘 몸을 거의 다 드러내는 국적불명 의상을 입는다. 매일 집 앞에서 마주치는 남자도 외국인부터 늘씬한 모델까지 각양각색이다.
어느 날 보희는 중요한 프레젠테이션을 망치고 해고를 당한다. 이웃집 그 여자, 오난희(클라라 분)에게 가야 할 택배가 보희에게 잘못 온 바람에 새로운 완구를 소개하는 자리가 섹스토이 전시회가 돼버린 것이다. 해고된 후 재취업하려 애썼지만 업계에 퍼진 악명 탓에 실패한다. 마침내 보희는 섹스토이도 ‘장난감’이란 발상의 전환을 하기에 이르고, 어른들의 장난감으로 재기하겠노라며 잔뼈 굵은 마케팅 실력을 뽐낸다. 그 과정에서 ‘나가요’라 멸시하던 난희를 이해하고, 진지한 사업 파트너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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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보희 직업이 교사나 회사원 같은 평범한 것이었다면 이 영화는 빤했을지 모른다. 하지만 성이라는 금기의 소재를 결합시킴으로써 오래된 고민은 은밀하고도 새로운 웃음으로 거듭났다. 과연 일과 가정 중 무엇이 소중한가라는 질문에 영화는 그 나름의 답을 건네는데, 마지막으로 내려진 최종 대답은 꽤나 영악해서 흥미롭다. 결국, 일도 가정도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듯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