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지만 그렇게 찾아간 숲 속은 우리 생각보다 봄이 더디게 찾아옵니다. 아니, 봄은 진즉에 찾아와 겨우내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이곳저곳에서 새싹이 삐죽삐죽 움을 틔울 준비를 끝냈지만, 아직 대지 색깔이 봄빛으로 바뀌지 않았기에 둔한 우리 눈엔 그리 느껴지나 봅니다. 향긋한 봄내음에 설레는 마음을 안고 마을을 지나고 들을 지나 산자락에 접어들면 개울가 비탈면이나 양지바른 언덕, 아니면 논둑 위에서 앙증스러운 자태로 연보랏빛 꽃을 피워 부지런한 산행을 맞이하는 우리 꽃이 있습니다. 바로 현호색입니다.
현호색은 우리나라 구석구석 어디에서나 잘 자라는 여러해살이풀입니다. 도심과 조금 떨어진 한적한 시골 풍경에서는 어김없이 나타날뿐더러, 심심산골을 헤매다 보면 문득 눈앞에 나타나 유난히 반가운 꽃이기도 하지요. 현호색을 처음 봤다면 두 가지 이유 중 하나 때문입니다. 땅 위에서 피는 잔잔한 꽃에게 도통 관심이 없거나, 너무 늦게 봄 산행을 시작하는 게으름 때문이지요. 현호색은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몸을 녹이면 가장 먼저 싹을 틔우고 곧바로 꽃을 피워낸 뒤 한 달가량 있다 열매를 맺으니 말입니다.
현호색을 만나 보면 알겠지만 먼저 매우 독특한 꽃 모양이 눈에 띕니다. 손가락 두 마디쯤 길이로 옆으로 길게 뻗은 보랏빛 꽃의 한쪽 끝이 요염한 여인의 벌어진 입술처럼 위아래로 갈라져 벌어집니다. 꽃이 약간 들리면서 반대쪽 끝으로 가면 뭉툭하게 오므라져 있지요. 꿀주머니가 들어 있는 이 부분을 흔히 ‘거’라고 부릅니다.
현호색과를 총칭하는 속명 코리달리스(Corydalis)는 종달새라는 뜻의 희랍어에서 유래했는데, 꽃의 이러한 특징이 종달새 머리 깃과 닮았기 때문입니다. 정말 꽃이 활짝 핀 현호색은 숲 속에서 조금씩 다른 색깔과 모습으로 앉아서 노래하는 종달새 같아요.
현호색 뿌리를 거두면 그 중간에 괴경이란 덩이줄기가 달려 나옵니다. 괴경은 현호색의 중요한 특징 가운데 하나인데, 이른 봄 밥상에 올라와 입맛을 돋우는 달래처럼 생겼지만 2배쯤 큽니다. 1년 내내 어두운 땅속에서 지냈다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표면이 하얗고, 껍질을 벗기면 속은 노란색입니다. 이를 말려 쓰는 약재 이름도 현호색이랍니다.
정말 재미있는 사실은 올망졸망 모인 현호색을 자세히 살펴보면 전부 그 모양이 다르다는 겁니다. 봄 햇살이 잘 드는 숲가에서 다채롭게 피어난 현호색을 구경하노라면 어느새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오를 듯싶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