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종로구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2011년 1월 30일까지 열리는 ‘감응(感應), 정기용 건축 : 풍토, 풍경과의 대화’전을 보는 내내 ‘닮았다’는 말이 제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동아일보 옛 사옥인 일민미술관과 건축가 정기용 교수(65·성균관대 건축대학원 석좌교수)가 평생 남긴 스케치, 모형, 사진은 물론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까지 고스란히 닮아 있었거든요. 그 닮음은 바로 ‘건축물은 아름다운 피조물이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펼쳐지는 곳’이라는 점이죠. 정 교수는 2008년 펴낸 에세이집 ‘사람 건축 도시’에서 “건축은 근사한 형태를 만드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삶을 섬세하게 조작하는 일이다. 즉 건축가 역시 건물을 설계하는 사람이 아닌 삶을 설계하는 사람”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제주 ‘기적의 도서관’ 스케치(위)와 사진.
정 교수는 건축가로서 참 별난 인생을 살았어요. 서울대 미대(응용미술)와 대학원(도예)을 졸업하고 프랑스 유학을 떠나 실내 인테리어와 건축, 도시계획을 전공했고, 프랑스 정부 공인 건축사 자격을 취득했죠. 그는 건축뿐 아니라 철학, 사회학, 교육학 등 인문학에 심취한 학자이기도 했어요. 건축에 대한 그의 가치관은 이런 삶의 궤적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지요.
이번 전시에는 정 교수가 청년 시절부터 최근까지 설계 작업을 위해 작성한 노트 60여 권과 스케치 및 드로잉 100여 점, 건물 모형 20여 점, 사진 80여 점, 도서 및 수집품 100여 점, 그리고 그의 작업 과정과 인터뷰를 담은 다큐멘터리와 단편 애니메이션이 선보입니다. 1층부터 3층까지 이어지는 전시실에 빼곡히 정리된, 그의 손때 묻은 자료를 훑어보고 나니 마음이 따뜻해졌어요. 인간과 삶에 대한 한 건축가의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죠. ‘감응이 바로 이거구나’ 싶네요. 월요일 휴관, 무료. 02-2020-2060